[장세린의 THE교육] 고교학점제의 백년지대계, 어디에 있는가?

  • 등록 2026.03.17 00:00:01
  • 댓글 0
크게보기

 

더에듀 | 모 유통 기업에서 기후변화에 발맞춰 ‘전남 신안 해풍 맞은 바나나’, ‘제주 자몽’ 등 국산 열대·아열대 과일을 출시했다고 한다. 이러다 얼마 안 있어 ‘고랭지 망고’도 보게 되지 않을까 씁쓸하긴 하지만,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오히려 다행이라 볼 수도 있겠다.

 

교육계에서는 가히 ‘지구온난화’ 급의 재해라 볼 수 있는 ‘학령인구 감소’를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교학점제가 설계되어 실행중인 현 상황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기후위기(학령인구 감소)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과 같은 (교육)방식으로는 국가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란 예측이 파다하다. 무언가 대비가 필요하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재해가 정확히 몇 월, 몇 일, 몇 시에 닥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물론 예상값은 있지만 사람은 본디 눈 앞에 펼쳐지지 않으면 내 일처럼 경각심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재해는 대체로 수도권에서 먼 지방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사회 메인 이슈로 자리 잡기도 어렵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교육계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일단 해외에서 기후변화에 적합하다는 종자(고교학점제)를 들여온다. 문제는 여기부터이다. ‘곧’ 기후위기가 닥친다 해도, 지금 당장의 우리나라는 ‘그’ 기후가 아니다. 노지에 씨만 뿌린다고 농사가 성공할 리 만무하니 온실도 짓고, 비료도 바꾸고, 우리 토양에 맞게 종자도 개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떻게 하고 있는가.

 

벼를 심던 논에 망고 씨앗을 뿌리고 농부(교사)들에게 열심히 돌보라 하면서, 곧 우리나라도 열대 기후가 될 테니 조금만 버티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교원단체들은 작년 한 해 동안 고교학점제와 관련하여, 출석률로 이수기준을 설정할 것과 진로선택·융합선택 과목의 절대평가화를 꾸준히 요구했다.

 

진로선택·융합선택 과목 절대평가화는 진영을 막론하고 대체로 찬성하는 편이었으나 이수기준 설정에서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수기준에 출석률과 학업성취율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①학점제의 취지와 ②선행연구물을 근거로 든다. 해외에서 고교학점제를 적용하는 국가들 중 이수기준에 학업성취율을 반영하지 않는 사례는 없다, 즉 이론적 근거와 선례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교학점제를 적용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무학년제로 운영되어 월반·유급 모두 유연하게 이뤄지는 등, 우리나라와 교육환경 전반이 다르다는 사실을 함구한 채 ‘선진 사례’만을 언급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도시위생과 공공질서를 위해 쓰레기투기 1회에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해 효과를 보았다고 해서, 대한민국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고교학점제 폐지론자는 아니다.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①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하는 자체가 ‘학교 규모의 경제’를 전제로 하기에 ‘적정 규모 학교’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 ②기존 학급담임제와 고교학점제를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③유급을 터부시하는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수기준에 학업성취율을 적용할 경우 이미 사법화한 교육현장에서 행정소송 등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것 ④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더라도 결국 진로·적성보다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육환경 전반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실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①‘과목개설을 위한 학교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본질적 문제해결이 아니라 ‘과목개설을 위한 시도교육청별 각개전투’에 장학사들이 소진되고 있으며 ②교사들은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실질적 역량 강화가 아니라 학급 담임으로서 반편성·출석 등의 업무로 소진되고 있으며 ③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기본과목 등 ‘쉬운’ 과목을 많이 개설하면 유급이 ‘줄어들 것(그러나 그간 교육현장에서 단 한 건의 소송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쳐왔던가)’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④진로교육을 제대로 하면 될 것이라던가, 입시에 교육과정이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비현실적인 논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 농사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는데, 우리는 어떤 계획을 고민하고 있는가.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수입 종자인 고교학점제의 현지화를 위해서라도, 진솔한 논의와 과감한 시도가 시작될 때다.

장세린 전북 김제 금구초 교사/ 전 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 te@te.co.kr
Copyright Ⓒ 2024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0명
0%
싫어요
0명
0%

총 0명 참여









대표전화 : 02-850-3300 | 팩스 : 0504-360-3000 | 이메일 : te@te.co.kr CopyrightⒸ 2024-25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