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손덕제] 고교학점제, 현장 목소리로 완성돼야

  • 등록 2025.11.07 13: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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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최근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고교학점제이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상적인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만 키운다. 지금 고교학점제가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하다. 문제는 ‘최소성취수준보장지도(최성보)’가 도입되면서 학교 현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F학점 제도를 고등학교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가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자율과 책임의 체계 속에서 낙제를 통해 학업 성취를 관리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이수(F학점)에 따른 졸업 불가 구조를 적용하는 것은 현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그 책임은 교사에게 전가되고, 제도의 취지는 왜곡된다.

 

실제 학교에서는 미이수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행평가 비율을 높이거나 시험을 지나치게 쉽게 출제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또 미도달 학생은 3시간 남짓한 보충지도를 받으면 이수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정서적 상담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어 실질적인 학습 회복은 어렵다. 교사들의 90% 이상이 “효과가 없다”고 응답하는 이유이다.

 

 

최성보는 기초학력 부진 학생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교사에게 과도한 행정·지도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더욱이 보충지도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도 없는 구조다. 그 결과, 교사들은 ‘미이수가 나오지 않도록’ 평가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는 제도의 본질이 뒤바뀌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기초학력 지원의 필요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은 고교학점제 내부에서 억지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에 대한 지원은 별도의 국가책무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기초학력지원시스템’처럼 학생 진단–맞춤형 지도–성과 관리가 일관되게 운영되는 체계가 전국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초·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의무적 진단과 책임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은 제도의 완성도가 아니라 현장 적용성에 달려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도 학교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학생의 다양성과 교사의 자율성이 함께 존중받을 때 비로소 고교학점제는 살아 있는 교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금은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 시도교육청 모두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고교학점제가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제도로 발전하길,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학교 현장이 있기를 바란다.

손덕제 국가교육위원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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