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아이에게 “그러면 안 돼”, “이건 잘못된 행동이야”라는 말을 꺼내려다 교사는 입을 닫는다. 지도하려던 순간, ‘혹시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까. 부모가 항의하면 어쩌지. 괜히 내 경력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그 짧은 망설임 끝에 교사는 침묵을 선택한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변화는 교사의 침묵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르치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운다. 지도하는 용기보다 피하는 기술이 앞선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민원과 조사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에서 지도는 교육이 아니라 리스크가 된다. 그 결과, 교실에는 말이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다.
이 침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를 위한 것일까, 학부모를 위한 것일까, 학교를 위한 것일까.
침묵은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사의 말은 아이를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경계를 세우고, 방향을 알려주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있다. 말이 사라진 교실은 질서 없는 자유가 아니라 책임 없는 방치가 된다.
아이들은 단호한 말에서 의외의 안정감을 느낀다. “이건 안 돼”라는 짧은 문장은 벽이 아니라 난간이다. 그 난간이 있기에 아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교육심리학 연구에서도 일관된 규칙과 명확한 경계가 아이의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침묵은 상처를 주지 않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깊은 혼란을 남긴다.
현장의 실태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해마다 증가한다. 교사 소진과 이직 의향 또한 높아진다. 말할 수 없는 교실에서 교사는 점점 사라지고, 아이는 기준 없는 세계에 홀로 남는다.
순자는 “이름이 바르면 말이 서고, 말이 서면 일이 이뤄진다”고 했다. 말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진다.
문제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감정적 체벌의 상처를 반성하며 우리는 사랑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랑만 남기고 단호함을 지웠다. 공감은 미덕이 되었지만, 훈육은 오해받았다. 그 사이 교사의 전문성은 감정 표현으로 축소됐고, 교육적 발화는 위험한 언어가 됐다. 교실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 가장 먼저 금지된 셈이다.
해결의 길은 분명하다. 교사의 말에 정당한 자리를 돌려주는 일이다. 감정의 분출이 아닌 전문적 훈육으로서의 발화를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경고할 수 있어야 하며, 기준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교사를 보호하는 명확한 절차와 신뢰의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책임지는 아이가 자란다.
교육은 사랑의 말과 단호한 말이 함께 설 때 완성된다. 햇볕만으로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바람과 비가 줄기를 단단하게 만든다. 교사의 말도 그렇다. 따뜻함과 엄정함이 함께할 때 아이의 삶은 곧게 선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교육의 포기이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교실에서 누가 말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교사가 말해야 한다. 교사가 입을 열 수 있어야 아이도 귀를 연다. 교사의 말이 살아 있어야 잘못은 바로잡히고, 내일은 준비된다. 침묵이 교실을 지킬 것 같지만, 교실을 살리는 것은 결국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