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세요.”,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지 말아주세요.”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말들이 훈육을 멈추게 하는 신호가 되고 있다.
‘존중’이라는 말이 마치 모든 지도를 중단시키는 마법의 단어가 된 듯하다. 교사는 단호함을 잃고, 부모는 아이의 모든 행동을 ‘이해’라는 이름으로 덮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정말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일까?
존중과 허용은 다르다. 존중이란 아이의 말과 감정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행동까지 용납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건 옳지 않다’고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진짜 존중은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이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경계를 세워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
“왜 그랬니?”
“화가 나서요.”
그 감정을 이해해주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그다음 말은 분명해야 한다.
“그래도 때리는 건 안 돼.”
이 단호한 한마디가 아이에게 ‘감정과 행동은 다르다’는 세상의 법칙을 가르친다. 감정은 파도처럼 일었다가 가라앉지만, 행동은 그 파도 위에 놓인 배처럼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요즘 사회는 감정을 중심에 둔다. ‘느낌’이 곧 ‘진실’이 되어가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런 교육은 아이로 하여금 ‘내가 불편하면 그게 곧 정의’라고 믿게 만든다. 그래서 불편한 말을 싫어하고, 갈등이 생기면 도망치며, 지적을 받으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여긴다. 그 결과, 협업도, 관계도, 책임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진짜 존중은,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이되 그 마음이 옳고 그름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사랑의 표현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야.”
그 한마디가 아이를 자라게 한다. 자율과 자만의 차이를 알게 하고, 감정과 책임의 무게를 배운다.
존중은 허용이 아니다. 진짜 존중은 아이의 내면에 ‘경계 안의 자유’를 심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