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남의 진짜교육] 가정의 달, '교육의 출발점'을 생각하다

  • 등록 2025.05.22 14:50:28
  • 댓글 0
크게보기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세월을 보내며 학생, 동료 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 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3세대, 같은 집 다른 시간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보내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된다.

 

30년대 말에 태어나신 부모님, 60년대 중반생인 우리 부부, 그리고 90년대생인 두 자녀를 보면 딱 한세대씩 차이가 난다. 특히 우리나라의 급격한 압축 성장 때문인지 3세대는 너무나 이질적인 삶을 살아왔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홀로 지내신다. 66년을 함께 살며 7녀 1남을 낳아 기른 인생의 반려자와 영원히 헤어지며, 아버지는 많이 슬퍼하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9살, 17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신 부모님은 딸 일곱을 낳고, 여덟 번째로 아들을 얻으신 후 무척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 중간에 태어난 딸들은 바라던 아들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엄마의 원망과 한탄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1992년 방영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TV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배우 김희애가 연기한 ‘후남이’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이 드라마를 보면서 크게 공감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우리 딸들은 엄마에게 ‘쓸데없는 계집애들’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실제로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이런 대접을 받을 때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우리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낳아서 구박하느냐”라며 두 언니와 함께 작정하고 대든 적도 있었다.

 

아마 그렇게라도 억울함을 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당황하고 화를 내시며, 회초리를 피해 달아나는 세 딸을 쫓아오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을과 자연, 필자를 안아준 손길들


그러나 우리 딸들을 기른 것은 엄마 혼자가 아니었다.

 

다행히 주 양육자 중 또 다른 한 사람인 아버지는 엄마와 딸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셨고,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시 권위적인 아버지들이 주를 이뤘던 사회 분위기에 비춰보면 훨씬 더 진보적인 아버지였다. 가난한 강원도 산골 농부 처지임에도 “땅을 팔고 빚을 내서라도 원하는 데까지 공부를 끝까지 시켜주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중학교만 마치면 딸들은 공장에 보내면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던 당시 상황에서 아버지는 이런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곤 하셨다.

 

필자를 함께 길러준 또 다른 존재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친구 집이나 작은집에 놀러 가면 엄마와 달리 친구 엄마와 작은엄마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시며 정성스럽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셨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엄마에게 받은 구박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우리를 품어주고 키워준 또 다른 존재는 ‘대자연’이었다.

 

농사일이 바쁠 때는 김매기나 고추 따기, 새 쫓기 등으로 종종 농사일을 도와야 했지만, 그래도 시골의 자연은 놀거리 천지였다.

 

친구들과 종일 산과 강으로 ‘싸돌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산에서는 싱아를 비롯한 온갖 식물과 열매를 따 먹으며 하루 종일 놀았고, 여름이면 강에서 피부가 몇 번씩 벗겨질 정도로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그리고 겨울이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썰매를 타고 얼음 위를 썰매로 달리며 얼굴과 손발이 트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우리들의 유년 시절은 어두워서 더 이상 놀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올 만큼, 친구들, 마을의 언니·오빠·동생들과 매일 깔깔거리며 신나게 놀았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이런 기억은 살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 보는 비타민 같은 추억이 되어 주었다.


책과 만남, 그리고 ‘교육의 책임’을 생각하다


이렇게 성장하던 중, 필자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은 전학 온 친구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책과의 만남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서울에서 시골 교회 목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학 온 친구와의 만남이 계기였다.

 

책을 무척 좋아하던 이 친구를 따라 독서의 세계에 점차 빠져들게 되었는데, 사춘기까지 이어진 당시 읽었던 많은 책은 삶의 자세와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여러 인연과 사건, 시간이 쌓여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태어났던 ‘딸’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세 가지 스승으로 ‘대자연’, ‘인연’, ‘사물’을 들었다. 필자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 딱 맞는 이론이다.

 

강원도 산골의 대자연, 부모님과 함께한 마을 사람들과 소중한 친구들과의 인연, 책과 대자연 속의 여러 사물이 한 아이를 함께 길러낸 것이다.

 

교사를 하면서 많은 학생을 만났고, 그중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는 학생도 많았다. 그래서 한 학생을 만나는 과정은 그 학생 한 사람만이 아닌, 그 학생을 둘러싼 온 우주와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학생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이거나 주 보호자이다. 흔히, 교사들이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학생들은 가정생활 및 성장 환경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생의 모든 행동은 거의 성장 환경이나 가정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부모가 자녀를 잘 기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형제가 거의 없고 가족의 형태 또한 너무나 다양해진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루소가 주장한 ‘인간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스승’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또한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한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만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라는 인식을 부모와 더불어 사회도 함께 가질 필요가 있다.

 

세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시대 변화에 맞게, 우리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세 가지 스승인 대자연, 인연, 사물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생태적 교육환경과 체험학습’, ‘주 양육자뿐만이 아닌 세대를 넘어서는 다양한 인연과 관계 형성이 가능한 지역사회 마을공동체 조성’, ‘심각한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지역 내 생활 공간에서 독서 및 조작 활동으로 다양한 사물과의 만남’이 가능한 사회 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공(空)약이 아닌 실(實)행의 교육정책을


2주 앞으로 다가온 6.3일 대선이 끝나면 바로 새 정부가 들어선다.

 

대선후보의 여러 공약 중, 발전적인 교육 공약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약속한 교육 공약을 지켜서 ‘빈 공(空)약’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미래 세대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어야, 초저출산 문제를 포함해 교육으로 인한 여러 심각한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

 

아이들의 성장에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만큼, 이제는 아이들의 성장을 전적으로 가정교육에만 맡겨서도, 맡길 수도 없는 사회구조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와 크게 달라진 사회 환경에 맞게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을,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세상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홍제남 다같이배움연구소 소장 te@te.co.kr
Copyright Ⓒ 2024 더에듀미디어(The Edu Media). All rights reserved.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0명
0%
싫어요
0명
0%

총 0명 참여









대표전화 : 02-850-3300 | 팩스 : 0504-360-3000 | 이메일 : te@te.co.kr CopyrightⒸ 2024 (주)더에듀미디어(The Edu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