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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논객] ⑧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 게 자랑일까?

로랑 모트롱(Laurent Mottron) 몬트리올대 교수 연구팀의 ‘과독증: 체계적 고찰, 신경인지 모델링, 그리고 예후’

더에듀 | 학문의 세계는 끊임없이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평생 배우는 전문직이자 평생학습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자가 이런 연구를 계속 접하면 좋겠지만, 매일의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독자를 위해 미가 문인 원기자, 주취논객이 격주로 흥미롭고, 재미있고, 때로는 도발적인 시사점이 있는 연구를 주관적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한 가지 더 생각해 볼까 싶다.

 

사람들은 흔히 자녀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때로는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책 읽는 일이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양질의 책’을 ‘잘 이해하며 읽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밖에 가서 운동하는 게 몸과 눈과 마음의 건강에도 좋다는 건 다들 알겠지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가끔 아이 중에 같은 또래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독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단순히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게 아니라 과독증(Hyperlexia) 혹은 다른 번역으로는 초독서증일 수 있다.


독서가 뇌 발달을 망칠 수도 있다?


흔히 책 중독 혹은 활자 중독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사실 활자 중독은 일상적인 표현이지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반면, 과독증은 50년 넘게 연구하고 있는 개념이다.

 

과독증이 있는 사람은 활자를 읽는 능력 자체는 탁월하지만, 독해력(문자 해독 능력)이 독서량에는 못 미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독서에 대한 심한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15년 전에 한 언론사에서 이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한 적도 있다. 대중적으로 개념을 소개하면서 당시 일던 조기 독서 붐을 막기 위해 유명한 소아과 의사들이 학문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표현들까지 들먹이며 공포를 조장했다. 지금은 그 얘기를 반복하려는 것도 아니다.

 

과도한 조기 독서가 방법에 따라 일시적으로 과독증을 나타나게 만들 수도 있고, 이런 경우 뇌 발달에 불균형이 올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나 중국의 극성 학부모가 아닌 한 과도한 조기 독서를 일부러 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과독증 연구가 진행된 나라에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50년 된 개념, 뇌 판독 기술로 재해석돼 


오늘은 과독증이 무엇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비교적 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 한 편을 살펴보려고 한다. ‘비교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관련 연구가 그렇게 활성화된 분야는 아니다 보니 몇 년 지난 연구라서 그렇다.

 

살펴볼 논문은 자폐인의 인지 과정 연구로 유명한 로랑 모트롱(Laurent Mottron) 몬트리올대 교수 연구팀이 2017년 엘스비어(Elsevier)의 국제 학술지인 ‘신경과학 및 생체행동학 리뷰(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에 게재한 ‘과독증: 체계적 고찰, 신경인지 모델링, 그리고 예후(Hyperlexia: Systematic review, neurocognitive modelling, and outcome)’이다.

 

이 논문을 읽게 된 이유는 과거의 증상 위주 해석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정의를 바탕으로 하되 요즘 기술인 뇌 판독 기술을 활용해서 신경인지적 모델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팀의 관심 영역이자 교사로서 필자의 관심 영역인 자폐 아동을 위한 효과적인 개입 수단을 찾는 데 과독증의 특징을 적용한 연구라 과독증 자체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연구는 아니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를 위해 좀 더 깊이 그리고 현대 과학을 기반으로 과독증의 특징을 살펴봤다는 장점이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글 깨치고 독서에 강한 흥미…알고 보니 발달 장애?


과독증의 관찰 사례는 19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67년에 노만과 마가렛 실버버그 부부에 의해 처음으로 규정됐다.

 

이후 1980년대까지 과독증은 △신경 발달 장애 동반 △전체 지능이나 이해력에 비해 뛰어난 읽기 능력 △직접 교수 없이 이른 읽기 습득 △읽을거리를 향한 강한 지향이라는 네 가지 특징으로 주로 규정됐다.   

 

이후 과독증은 주로 자폐인의 서번트(savant) 능력 중 하나로 취급됐지만, 2000년대 초까지 주로 사례나 현상에 대한 기술 보고만 있어서 신경인지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십여 년 동안은 발전한 뇌 판독 기술로 신경인지적 해석이 가능해졌고, 이런 연구 결과를 포함한 전반적인 기존 문헌을 분석한 것이 이 연구의 ‘체계적 고찰’ 부분이다.

 

 

그동안 진행된 과독증 연구 중 동료 평가가 이뤄진 96건을 찾았고, 그중 영어가 아닌 경우, 구할 수 없는 논문, 새로운 데이터가 없는 논문, 장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 정보가 부족한 경우를 빼고 61건을 추려 메타 분석을 했다.

 

분석 결과, 전체 인구 중 과독증 비율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중증 발달 장애나 자폐증 인구 중 과독증 인구는 과독증의 정의를 얼마나 엄격하게 했는지에 따라 6~20.7%에 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유연하게 적용한 경우인 ‘읽기나 해독 검사의 표준화 점수가 적어도 해당 지능의 평균 점수에서 표준편차의 두 배 이상 높아야 한다’는 조건과 ‘자기 나이보다 두 살 높은 수준의 읽기나 해독 점수를 기록해야 한다’는 조건을 대부분 충족했다.

 

두 조건을 충족 못 한 경우는 적어도 한 조건을 충족하고 임상적 진단이 따라야 했으니 꽤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고 봐야 한다.  


비정상적 독서량 “꼭 과독증은 아니지만, 연관성은 높아”


물론 비정상적인 독서량과 독서에 대한 흥미가 꼭 발달 장애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과는 다분히 과독증의 정의 자체와 연관이 있다.

 

연구를 읽어보면 현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포함된 아스퍼거 증후군 아동의 경우, 오히려 전체 발달 장애 아동보다 훨씬 낮은 비율을 보였는데, 이들은 이해력이나 지능도 해독력만큼 높아 과독증의 정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자폐증이나 발달 장애로 한정하지 않고 자폐증의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는 경우로 보기도 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이런 특징과 별개로 보고된 사례도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과독증에 대한 연구 논문이 아닌 언어 치료사, 심리학자, 소아과 의사들의 일반 저서나 블로그에서는 과독증을 I, II, III 형으로 분류하면서 II형만 자폐 연관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유형 분류는 자폐증에 대한 엄정한 학문적 기준 위에 성립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III형의 경우 자폐증과 같은 증세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고 하기 때문인데, 자폐 연구에서는 이는 오진이거나 자폐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한 것이지 자폐증이 없어졌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언급된 ‘유사 자폐’라는 표현도 이와 비슷한 개념인데 유사 자폐라는 진단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전형적인 아동이 해당하는 I형이 존재하는데, 주관적 개별 사례 보고 외에는 비율도 실질적 근거도 미미하다.

 

이번 연구에서도 자폐가 아닌 사례가 있다고 해도 사례 연구 중 63.41%가 자폐증과 연관됐다고 명시돼 있었다. 나머지 중에서도 자폐증의 진단 기준 중 세 개 이상 나타난 경우까지 포함하면 84.15%에 달하는 만큼 강한 연관성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읽기는 신경인지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나?


사람이 읽는다는 행위는 뇌를 전반적으로 사용하는 매우 복합적인 행위지만, 현재까지의 연구를 보면 다음의 세 가지 영역이 주로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 특징에 따른 단어의 인식을 지원하는 후두측두피질(occipito-temporal cortex) △자소-음소 변환에 관여하는 두정측두 영역(parieto-temporal region) △단어와 문장의 의미에 접근하는 뇌 좌반구의 측두엽 복측·배측 신경계(ventral and dorsal temporal neural systems of the left hemisphere)이다.

 

 

논문은 전형적인 아동의 문해와 과독증 자폐 아동의 문해 차이를 이 영역들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살핀 연구들을 분석해 살펴봤지만, 이를 다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꽤 버거운 일이라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결론만 말하면, 앞의 두 가지 기능에서는 과독증 자폐 아동이 전형적인 문해 아동이 사용하는 영역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시각적 정보처리 영역을 사용하고 해당 영역들도 더 활성화됐다.

 

반면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서는 뇌의 활용에서 차이가 덜 나타났는데, 그래도 구체적 단어와 추상적 단어를 읽을 때 사용하는 영역의 활성화가 과독증 자폐 성인의 경우 전형적인 문해 성인보다 차이가 덜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추상적 단어를 읽을 때 더 활성화하는 부분을 과독증 자폐인의 경우 따로 더 활성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기 전에 읽는 아이들


전형적인 문해 아동의 문해 습득 과정과 과독증 자폐 아동의 문해 습득 과정도 기존 문헌 분석을 통해 비교했는데, 과독증 아동은 발화 이전에 문자를 인식하는 경우가 지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전형적인 아동보다 약 2년 일찍 스스로 문자를 습득하는 것이다. 다만, 부모가 이를 실제로 발견하는 것은 읽기 능력이 완연히 발달했을 때다.

 

읽기에 대한 강박적 관심에 대한 보고는 다수가 지속되는 것으로 봤지만, 일부는 감소하거나 덜 강박적으로 변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구어와의 연관성도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과독증을 활용해 구어와 필담의 발달을 촉진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과독증, 태어날 때부터 다른 뇌 기능의 결과


연구진은 이런 분석 결과에서 도출한 세 가지 논의를 이어갔다.

 

첫째, 자폐 진단이 최근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과독증이 자폐인 중에 정확하게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과독증이 대부분 자폐와 연관돼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고 결론 내렸다.

  

둘째, 문해가 능숙한 전형적인 아동과 과독증 아동 간의 인지적 기능에 차이가 있으므로 특정한 자폐증 인지 기능의 모델이 과독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패턴을 탁월하게 인식하는 기능에 중점을 둔 모델 개발을 제안했다.

 

셋째, 문해 발달에서 전형적인 아동은 기존의 구어 능력에 의존하는 반면, 과독증 아동의 경우 그 이전에 발달하고 출판물에 관한 관심이랑 연관된다고 정리하면서, 자폐 아동의 언어 발달을 위해 전형적인 행동 양식을 교육하기보다 문어를 먼저 익히고 그 기반으로 구어를 익히는 등 이런 특정한 관심에 기반을 둔 접근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사실 필자도 몇몇 외국어는 구어를 할 줄 모르면서 문어는 읽기도 한다. 필자가 영어 학습자(English Language Learners) 지도 자격 연수를 받을 때 강사에게 제기했던 의문 중 하나가 바로 반드시 음소 해독이 독해에서 필요한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물론 영어는 구어에서 문어로 이어지는 문자 해독을 배우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전형적인 구어에서 문어 순서의 언어 습득 외의 방법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데 동의를 하게 된다.


타고난 강점일 뿐, 자랑하기보다 겸손하게 감사할 줄 알아야


연구 전체를 살펴보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과독증에 대한 그림을 조금 그릴 수 있게 된다. 그간 과독증 연구를 모아서 분석한 비교적 최신 연구라는 점이 종합적인 이해를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일찍 문자를 스스로 습득하고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 특징이 ‘독서를 사랑하는 지성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과 다른 뇌를 타고났을 가능성이 높은 ‘과독증’의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독증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뛰어나 보이는 점이 사실은 자신이 이뤄낸 가치가 아니라 단지 남과 다르게 타고난 강점일 뿐이라는 점을 안다면 좀 더 겸손하게 감사하며 이를 내세우거나 이를 근거로 남을 무시하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논문을 더 자세히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링크는 아래와 같다.

Hyperlexia: Systematic review, neurocognitive modelling, and out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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