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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더하기-박상윤] 교사를 공격하는 교실, 더 이상 교육이라 부를 수 있나

 

더에듀 |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접하며, 더 이상 ‘교권 침해’라는 말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충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사를 밀쳐 뇌진탕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과연 ‘침해’인가. 아니면 명백한 ‘범죄’인가.

 

이 질문을 피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게 된다.

 

학교는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 일부 교실은 교사가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교사가 두려움을 느끼는 교실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불가능하다. 교실의 질서가 무너지면 배움도 무너진다. 교사가 안전하지 않은 학교는 이미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가. 이 문제를 단순한 개별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 지난 십수 년간 누적되어 온 교육 정책과 담론의 흐름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학생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교사의 생활지도권과 훈육 권한이 지속해서 약화했고, 학교의 규칙과 질서를 세우는 일마저 ‘권위주의’로 치부되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그 결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리만 강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규칙을 어겨도 실질적인 제재가 어렵고, 교사의 지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학생은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자유인가, 아니면 무질서인가.

 

최근 논의되는 ‘학생부 기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대한 교권 침해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지도 권한은 제한해 놓고, 사후에 기록만 남기는 방식으로는 교육 질서를 회복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학교 안에서 폭력과 중대한 교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이고 명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다. 피해 교사를 보호하고, 가해 학생에 대해서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규칙과 책임 위에 서 있는 공동체라는 점을 다시 분명히 하는 일이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사와 다수 학생의 안전을 희생하면서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원칙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학교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교실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교육의 기본을 회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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