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소위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고위 공직에 오른 이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지표가 되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처참하다. 지식의 상아탑에서 정의를 논하던 이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것은 고결한 지성이 아니라 추악한 특권 의식의 민낯이었다. 한국 사회의 공정은 이제 형해화(形骸化)된 수사(修辭)로만 남았다. 한 시대의 지성을 자처했던 이들이 뱉어낸 감언이설과 그 뒤에 숨겨진 탐욕의 변칙은 우리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밑바닥부터 갉아먹었다. 이혜훈과 조국, 이 두 이름이 사회에 남긴 흉터는 단순한 정치적 논란을 넘어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오염시킨 지독한 상흔이다. ‘내로남불’의 일상화와 위선의 보편화 조국 전 장관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상흔은 ‘위선의 보편화’이다. 밤낮으로 SNS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설파하던 그 화려한 손가락이, 정작 자신의 가문과 자녀를 위해서는 법망의 빈틈을 파고드는 기교로 변모했을 때 청년 세대가 느낀 박탈감은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지적 성(城)은 결국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특권 의식’의 요새였음이 드러났다.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세월을 보내며 학생, 동료 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 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1월 26일 내일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의 날’이다. 청소년들이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선언한 상징적인 날이다. 그러나 이 축제의 날을 앞두고 들려온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서울시의회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이 행사 장소인 서소문별관 사용을 두고 서울교육청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식이다. 이유를, 의회 옆이라 ‘불편하고’ ‘협치를 무시하는 것’이라 했다니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교육자로서 묻는다. 정치인의 정치적 불편함이 학생들의 권리를 축하하는 자리보다 우선인가? 이번 사태는 단순히 장소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교육 자치와 민주주의가
더에듀 | 올해 6월 교육감 선거가 다가오면서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연구소 출신 전문가, 교원단체와 노조의 중견 활동가, 교사와 교수 출신까지 그 면면은 다양하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깨달아 왔다. 선택의 기준은 후보의 화려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하루’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냐는 것이다. 말뿐인 교육혁신도, 보여주기식 정책 성과도, 이념의 전쟁터가 된 교실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더 이상 정책의 실험 대상자가 아니고 특히 정치적 이념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오직 아이들만을 향한 깊은 사랑과 교육철학을 가진 인물이 첫 번 선택 요인이 되어야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교육감은 지역 교육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 이 권한이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특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현장을 외면하고, 이념적 구호를 앞세워 학교를 실험실로 만들고,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기는커녕 끊임없이 행정 부담만 키워 왔다. 그로 인해 정작 피해를 입은 것은 누구인가? 아이들이고, 교사들이며, 학부모들이다. 이제
더에듀 | 지난 편에 교과지도교사(1수업 2교사제 포함), 비교과 생활지도교사, 상담교사의 채용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인력이 학교의 주류가 될 때, 학교는 비로소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행정 전문가는 줄이고, 학생지도 전문가는 늘려야 한다. 교육청에 앉아 있는 교육전문직보다 상담교사와 생활지도 교사가 훨씬 더 많이 배치된다면,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교폭력과 기초학력 미달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간략하게 비교해 봐도 우리가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다음은 우리나라와 해외 선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의 인적 구성 비교표다. 영국의 ‘학생 지도 인력’ 구조는 대한민국과 가장 먼 대척점에 있다. 영국의 평교사 비율은 46.5%로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교사 보조(TA), 생활지도 전문가, 상담사 등 40.2%를 차지하는 ‘지원 인력’이 교실 안에 함께 상주한다. 이처럼 영국은 교사 한 명이 고군분투하게 두지 않는다. 40%에 달하는 전문 지원 인력이 교실 최전선에서 아이들의 숨결을 챙긴다. 반면 우리는 그 인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교육전문직’이라는 이름의 행정가들만 늘리고 있다. 일
더에듀 | 교육전문직은 장학사나 연구사로, 교감이나 교장으로, 그리고 더 높은 교육청 고위 관료로 전직한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직군에 머무른다. 100%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교육전문직에게 교사 발령을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립된 직군의 함정: 보신행정이라는 질병 행정이 고정적인 직업이 되는 순간, 교육전문직은 ‘지원자’가 아닌 ‘지배자’가 된다. 현장과 유리된 지 오래된, 또는 교육전문직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들의 정책은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온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현장 교사들을 질식시키는 차가운 행정 명령일 뿐이다.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지 않는 전문직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보신’ 연구로 권위를 유지한다.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실적을 부풀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규정이라는 무덤에 매장한다. 그들이 교육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며 익힌 ‘효율성’은 전문직이 된 후 ‘보신의 전문성’으로 진화한다. 이것은 교육계 전체에 동맥경화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질병이 된다. 심장에서 나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정화되듯, 전문직 또한 현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러 교실로 돌아와야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더에듀 | 인간의 영혼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행정의 칸막이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지의 햇살을 받고 자라는 나무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직접적인 손길 속에서만 온전한 생명으로 피어난다. 나는 그동안 실천해 온 ‘글쓰기 수학 수업’을 통해 죽어있던 공식을 아이들의 살아있는 언어로 되살리는 과정을 목격해 왔다. 그러나 경이로운 생명의 분출이 일어나는 교실의 뒤편에서, 우리 교육의 골격은 여전히 차가운 행정의 비대증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서류가 지배하는 상부 조직을 걷어내고, 학생과 매일 마주하는 교과지도교사, 생활지도교사, 상담교사 등 아이들과 마주하는 ‘최전선’의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인력구조의 대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 교육 현장은 기이하고도 서글픈 분열의 장이다. 한쪽에는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연필 깎는 소리가 들리는 교실 안 ‘교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숫자와 서류, 그리고 ‘승진 점수’라는 철옹성 속에 갇힌 ‘교육전문직’이 있다. 그 중간지대에는 수업과 학생들을 대면하는 일은 적게 하고 각종 승진 점수와 성과금은 많이 가져가는, 소수의 ‘교육전문직 예비교사’가 있다. 이러한 경계를 보며, 교육전문직
더에듀 | 인공지능 전환(AX, AI Transformation)이 화두인 시대, 교육의 핵심 원리는 ‘개별 맞춤교육’으로 수렴되고 있다. 단지 기술의 발전 때문만은 아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학생의 학습 수준과 특성을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급증하고 있으며, 그 양상 또한 복합적이다. 그간 교육부는 기초학력, 심리 정서, 경제적 지원 등 영역별 지원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에서는 ‘정서적 교실 붕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교사들은 매일의 수업 속에서 지쳐가고 있다. 이제 교사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 더 나아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 ‘시스템의 힘’이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정책이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이다. 교사 혼자가 아닌 학교 내 통합지원팀, 학교를 넘어 지역 전문 기관과 연계해 학생을 지원하겠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교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거나 학교 현실과 괴리가 크다면 지속 가능성
더에듀 | 최근 국제 사회를 돌아보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정의, 대의명분이라는 오래된 가치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국가 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 속에서도 깊숙이 스며들어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교사들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예전의 교사는 모범을 보여주고 정답을 가르치는 존재였다.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과 규범을 ‘선’이라 부르며 공동체가 이를 추앙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 더 나아가 AI 시대에 들어선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 규범과 도덕, 예의와 배려, 소통과 공감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적대적인 관계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공동체 규범으로 개인을 판단하거나 칭찬·비판·정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에듀 | 지혜복 교사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교육청 앞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30여 년간 교단을 지켜온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2027년 2월 정년까지 단 1년뿐이다. 1월 29일로 예정된 부당전보 취소 소송의 선고는 그가 교사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퇴임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법원에서 소송이 받아들여져야 복직의 기회가 열린다. 1년밖에 정년이 남지 않은 지 교사에게 이번 재판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지 교사가 공익제보자로 인정되면 재판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교육청은 공익제보자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해임한 당사자가 지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하면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지 교사는 즉시 복직해 남은 1년을 학교에서 보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근식 서울교육감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서 지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지 교사의 고립된 싸움을 보며 참담한 기시감을 느낀다.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교장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다 강제 전보를 당했던 나의 과거와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장은 ‘전보 내신권’이라는 기계적 행정 원
더에듀 |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울의 정책 시계는 여전히 청년과 생산연령에만 맞춰져 있다. 노년은 ‘돌봄’의 언어로만 호명되고, 교육의 대상에서는 조용히 퇴장당했다.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습인가. 한 번 세상을 위해 모두 타버린 나무는 숯이 되었다. 그러나 숯은 끝이 아니다. 불씨를 품고 있다. 문제는 숯이 아니라, 다시 불을 붙일 바람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 서울의 시니어 세대가 그렇다. 평생교육은 복지가 아니라 도시 전략이다 서울의 시니어 평생교육은 지금까지 문화 강좌·여가 프로그램 수준에 머물러 왔다. 이는 친절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교육이 삶을 다시 설계하지 못할 때, 노년은 고립되고 사회는 비용을 떠안는다. 이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시니어 평생교육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사회 산업 정책이며, 노년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의 생산자다. 서울이 진정한 글로벌 도시라면, 지식·경험·윤리를 축적한 노년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가 해야 할 일: ‘배움의 도시 인프라’ 구축 서울시는 다음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시니어 평생교육을 ‘도시 인프라’로 격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