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사람들은 ‘전국 일주’, 또는 ‘세계 여행’을 마치 삶의 로망처럼 간직하고 살아간다. 이를 부추기기라도 하듯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구호가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퇴직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 또는 “세계 여행”이라고 주저 없이 답하곤 했다. 이는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행도 일단 많은 기초 지식과 상식, 에티켓 및 즐기는 방법 등에 대한 기초적 배경을 갖춰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육의 필요성을 부여한다. 이에 우리가 쉽게 접하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중에 부담 없이 보고, 즐기되 배움의 교육적 효과를 톡톡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토요일 아침, 조용히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과 함께 익숙한 멘트가 흐른다. “낯선 길 위에 선 여행자, 그가 걷는 곳엔 언제나 이야기가 있다.” 바로 KBS의 장수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그렇게 우리 곁에 스며든다. 겉으로는 단순한 여행 다큐처럼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 시청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공감과 이해의 감각을 길러주는 교육
더에듀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꿈 하나쯤은 품고 산다. 어떤 이는 그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 마침내 손에 쥐고, 어떤 이는 아직도 멀리 보이는 그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뜻하지 않은 바람 앞에 무릎 꿇고, 결국 그 꿈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참된 모습은 결코 한 가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성공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공허일 수 있고, 화려한 성취가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각자의 처지와 가치, 방향이 다르듯 행복의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육십이라는 나이 문턱에 서서, 나는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긴 세월을 살아보니, 결국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원칙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첫째, 나답게 산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굳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숨을 죽일 필요는 없다.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의 모양새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 나의 작은 목소리, 나의 느린 걸음, 나의 색다른 취향까지도 그대로 사랑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
더에듀 | 한 국가의 미래는 어떤 인재를 길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인재 교육의 성과는 시험 성적이나 스펙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최근 이혜훈 지명자를 둘러싼 공적 논의는 정치인의 자질을 넘어, ‘우리 학교 교육이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도덕성과 청렴성은 더 이상 부가적 덕목이 아니라, 인재 교육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도덕성은 지식 위에 세워져야 할 교육의 토대이다. 지식과 기술은 방향을 잃으면 위험한 도구가 된다.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설수록 도덕적 판단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혜훈 지명자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원칙’과 ‘책임’은 학교 교육이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학교는 옳고 그름을 암기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왜 그것이 옳은지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공간이어야 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책임있게 바로잡고 회복하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 도덕성은 복잡한 상황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힘이다. 청렴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청렴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선택과 반복된 경험
더에듀 | 전 세계인의 높은 호응도를 얻고 있는 ‘K컬처’는 전 세계 청소년과 청년들의 일상 언어가 됐다. 문제는 이 거대한 K컬처에 대한 호응과 관심이 단지 ‘소비’에만 머물러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K컬처는 공연장과 플랫폼을 넘어 교실을 비롯한 교육 현장으로 직접 들어와야 한다. 초·중·고등 교육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학습되고 축적될 때, K컬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세계의 문화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실행의 출발점은 초등학교다. 이 단계에서 K컬처는 ‘체험형 문화교육’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한국 동요와 애니메이션, 전통 놀이와 현대 콘텐츠를 연계해 언어·음악·미술 수업 속에 K컬처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야 한다. 특히 해외 학생을 위한 온라인 공동수업이나 교류형 프로젝트를 병행하면, K컬처는 조기 글로벌 시민교육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K컬처 교육이 시험이 아닌 경험, 정답 맞추기가 아닌 지속적인 호기심 유발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중학교 단계에서는 ‘이해와 해석’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 드라마와 영화 속 서사를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국어·사회·도덕
더에듀 |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중장기 과제로 분류되던 통합은 2026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속도전’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대전·충남 통합 역시 유사한 시간표 위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급가속의 배경에는 분명한 정치적 맥락이 존재한다. 현 정부가 제시한 ‘5극 3특 체제’는 수도권 일극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고, 이를 가시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광역 통합 특별시 구상이 호출되었다. 행정통합이 성사할 경우 연간 최대 5조원씩 4년간 최대 2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제시된다. 교육 분야에 대해서는 이 특별법에 따라 통합특별교육교부금 약 1조 30억원이 별도의 특례 재정으로 추가 배분된다. 밀려난 교육 숫자만 놓고 보면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법을 설계할 때 문제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와 설계이다. 이 특별법은 교육자치를 어디에 두고 설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분류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자치가 이 법에서 하나의 독립된 헌법적 권한으로 위치하는지 아니면 일반 행정 체계 속에 편입된 하위 영역
더에듀 | 아이에게 “그러면 안 돼”, “이건 잘못된 행동이야”라는 말을 꺼내려다 교사는 입을 닫는다. 지도하려던 순간, ‘혹시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까. 부모가 항의하면 어쩌지. 괜히 내 경력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그 짧은 망설임 끝에 교사는 침묵을 선택한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변화는 교사의 침묵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르치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운다. 지도하는 용기보다 피하는 기술이 앞선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민원과 조사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에서 지도는 교육이 아니라 리스크가 된다. 그 결과, 교실에는 말이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다. 이 침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를 위한 것일까, 학부모를 위한 것일까, 학교를 위한 것일까. 침묵은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사의 말은 아이를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경계를 세우고, 방향을 알려주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있다. 말이 사라진 교실은 질서 없는 자유가 아니라 책임 없는 방치가 된다. 아이들은 단호한 말에서 의외의 안정감을 느낀다. “이건 안 돼”라는 짧은 문장은 벽이 아니라 난간이다. 그 난간이 있기에 아이는
더에듀 | 서울은 스스로를 세계도시라 부른다. 그러나 서울의 교실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금세 알 수 있다. 아이들은 10년 넘게 영어를 배우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굳는다. 문장은 아는데 말은 나오지 않는다. 시험에는 강한데, 세상에는 약한 영어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다. 잘못된 교육의 방향이다.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은 오랫동안 ‘평가를 위한 언어’였다. 읽고, 외우고, 찍는 데 최적화된 구조였다. 그 결과, 사교육은 팽창했고 공교육은 책임을 내려놓았다. 언어는 점수가 되었고, 점수는 다시 계층의 벽이 되었다.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영어를 시험 과목이 아니라 ‘일하는 언어’로 만들었다. 모든 공공 영역과 교육의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하고, 동시에 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 등 정체성 언어를 병행했다. 중요한 점은 언어를 문화가 아니라 국가 인재 전략으로 다뤘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금융·물류·콘텐츠·첨단산업의 아시아 허브가 됐다. 인재가 모였고, 기업이 들어왔다. 언어 정책이 국가 경쟁력의 토대가 된 셈이다. 서울은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갖췄지만, 교육은 여
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소위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고위 공직에 오른 이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지표가 되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처참하다. 지식의 상아탑에서 정의를 논하던 이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것은 고결한 지성이 아니라 추악한 특권 의식의 민낯이었다. 한국 사회의 공정은 이제 형해화(形骸化)된 수사(修辭)로만 남았다. 한 시대의 지성을 자처했던 이들이 뱉어낸 감언이설과 그 뒤에 숨겨진 탐욕의 변칙은 우리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밑바닥부터 갉아먹었다. 이혜훈과 조국, 이 두 이름이 사회에 남긴 흉터는 단순한 정치적 논란을 넘어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오염시킨 지독한 상흔이다. ‘내로남불’의 일상화와 위선의 보편화 조국 전 장관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상흔은 ‘위선의 보편화’이다. 밤낮으로 SNS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설파하던 그 화려한 손가락이, 정작 자신의 가문과 자녀를 위해서는 법망의 빈틈을 파고드는 기교로 변모했을 때 청년 세대가 느낀 박탈감은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지적 성(城)은 결국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특권 의식’의 요새였음이 드러났다.
더에듀 | 교육자로 24년의 세월을 보내며 학생, 동료 교사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과학 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홍제남의 진짜교육’을 시작한다. 1월 26일 내일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의 날’이다. 청소년들이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선언한 상징적인 날이다. 그러나 이 축제의 날을 앞두고 들려온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서울시의회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이 행사 장소인 서소문별관 사용을 두고 서울교육청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식이다. 이유를, 의회 옆이라 ‘불편하고’ ‘협치를 무시하는 것’이라 했다니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교육자로서 묻는다. 정치인의 정치적 불편함이 학생들의 권리를 축하하는 자리보다 우선인가? 이번 사태는 단순히 장소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교육 자치와 민주주의가
더에듀 | 올해 6월 교육감 선거가 다가오면서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연구소 출신 전문가, 교원단체와 노조의 중견 활동가, 교사와 교수 출신까지 그 면면은 다양하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깨달아 왔다. 선택의 기준은 후보의 화려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하루’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이냐는 것이다. 말뿐인 교육혁신도, 보여주기식 정책 성과도, 이념의 전쟁터가 된 교실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더 이상 정책의 실험 대상자가 아니고 특히 정치적 이념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오직 아이들만을 향한 깊은 사랑과 교육철학을 가진 인물이 첫 번 선택 요인이 되어야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교육감은 지역 교육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 이 권한이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특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현장을 외면하고, 이념적 구호를 앞세워 학교를 실험실로 만들고,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기는커녕 끊임없이 행정 부담만 키워 왔다. 그로 인해 정작 피해를 입은 것은 누구인가? 아이들이고, 교사들이며, 학부모들이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