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학문의 세계는 끊임없이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평생 배우는 전문직이자 평생학습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자가 이런 연구를 계속 접하면 좋겠지만, 매일의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독자를 위해 주말 취미가 논문인 객원기자, 주취논객이 격주로 흥미롭고, 재미있고, 때로는 도발적인 시사점이 있는 연구를 주관적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 |
지난 두 회차1에서 통합교육의 효과성 여부와 개별 지도의 필수 인력이 장애 요인이 될 가능성을 살펴본 데 이어, 마지막으로 통합교육이 들어온 일반 교실에서 이뤄지는 개별화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취논객] ⑫통합교육이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7367 / [주취논객] ⑬통합교육의 선결 조건, 쉽지 않은 특수교육 보조 인력 문제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7468
통합교육이나 특수교육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앞선 두 회차는 필자의 전공과 관심사에 국한된 조금 덜 흥미로운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특수교육에서 출발했지만, 특수교육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니 좀 더 흥미롭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수교육에서 나왔지만, 현대 교육의 기본이 된 ‘편의 제공’
흔히 ‘편의 제공(accommodation)’으로 번역되는 특수교육 용어는 북미나 유럽에서는 일반 교사들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아직 통합교육 확대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 교실에서는 그렇게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장애 학생의 학습을 돕기 위해서 환경이나 학습 방법과 내용을 조정해 준다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다 보니 ‘조정’으로 직역되기도 한다. 특히 적합화(modification) 또는 수정으로 번역되는 교육과정 또는 교육과정 내 성취 목표 자체의 변경과 비교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글씨를 쓰기 힘든 학생에게 크롬북으로 작문을 하게 해준다거나, ADHD 학생에게 신체 휴식 시간을 허용하거나, 글을 읽기 힘들면 영상이나 음성 녹화로 내용을 파악하게 한다든지, 실행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 과제를 쪼개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하는 등의 조치들이다.
이렇듯 원래는 장애 학생을 위한 개념이지만, 일반 교실이 언제든 통합 교실이 되는 상황에서 편의 제공을 바탕에 둔 보편적 학습 설계가 유행하면서, 이 개념은 장애 학생뿐만 아니라 자국어 학습자든, 다문화 학생이든 확장해서 적용하게 됐다.
학교 수업에서 쓰는 언어를 모르는 다문화 학생에게 사전이나 번역기 사용을 하게 해준다거나, 대중 앞에 서는 것에 긴장이 지나친 학생에게는 교사에게 일대일로 설명하는 걸로 발표를 대신하게 해주거나, 시간이 제한된 과제에 불안을 느끼는 학생에게 시간을 여유롭게 준다든지.
확장된 개념을 들어보니 그렇게 낯선 개념도 아니다. 학생의 학습을 가로막는 요소가 있다면 이를 제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지원을 해줘 학습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개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냥 요즘 교육의 흐름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도움을 주는 것일까 성장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일까
그런데 원론적으로 다른 장애 요인을 제거하고 학습에 집중하게 한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만, 편의 제공이 꼭 그렇게 좋기만 하지는 않다는 주장은 전부터도 교직 사회 일각에 있었다.
필자가 교생일 때 지도 교사는 난독증과 난필증을 가진 학생에게 평소 학습에는 크롬북을 허용하면서도, 그날의 학습 성찰을 쓸 때는 꼭 공책에 수기로 필기하도록 했다.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어디서든 자기 글씨로 서류를 작성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최소한의 연습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산화가 많이 진행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캐나다는 아직도 수기 서류가 기본인 경우가 많으니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장을 생각해 보면 편의를 제공하면 학생들에게 성장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라, 그 적절한 선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사가 자폐학생에게 전체 학급 대상 발표를 일대일 설명으로 대신하도록 권고해도 오히려 발표를 권하는 교사도 있다. 할 수 있다면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소수 교사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사실은 심리학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컬럼비아대 사범대 뉴스레터에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스턴 글로브지 칼럼이 실렸다.
벤 로베트(Ben Lovett) 컬럼비아대 교육심리학 교수와 알렉스 조던(Alex Jordan) 하버드대 의대 강사가 쓴 칼럼으로 ‘학교가 학생의 불안을 조정하면서 조장한다(Schools Are Accommodating Student Anxiety — and Making It Worse)’는 제목의 칼럼이다.
물론 오늘 이 칼럼 자체를 살펴보려는 건 아니다. 아무리 가끔 정책 보고서를 읽는다고 하지만, 칼럼을 읽고 만다면 ‘주취논객’의 취지에서 너무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인용 보도를 하는 게 쉬울 것이다.
오늘은 이 칼럼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뒤 관련 연구 몇 건을 너무 깊이는 말고 결론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상황을 피하게 해주면 진짜로 피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하는 역효과
칼럼 필자들의 주장은 앞서 말한 ‘편의 제공이 불안을 심화하고 성장의 기회를 앗는다’는 내용이라 굳이 다시 쓸 필요는 없겠다.
다만, 그 원리를 간단히 설명했는데. 편의 제공, 특히 어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을 제거하는 방식의 편의 제공은 두 가지 부정적이고 위험한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제거한 상황이 정말로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학생이 그 상황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역량이 없다고 느끼게 해 그 상황에 대한 불안이나 회피 의지가 커지게 부추기는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심리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불안에 대한 접근은 인지행동치료, 그중에서도 노출을 통한 치료이다. 걱정했던 상황에서도 상상했던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고, 발표든 시험이든 그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를 겪고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경험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편의 제공 혹은 조정이 정말로 필요한 학생도 있다. 명시적으로 특정한 장애가 있어서 그 상황이 제공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일 때, 그리고 학생이 지닌 어려움이 심리가 아닌 뇌발달이나 신체 자체에 있는 경우 편의 제공이 해당 어려움에 대한 태도의 악화 염려가 없을 때이다.
편의 제공이 필요한 경우에도 앞서 말한 전제가 먼저이다. 편의 제공이 역효과를 보이지 않을 때도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하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가서 살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로베트 교수나 조던 강사 혹은 필자를 비롯한 몇 교사의 개인적 논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2021~2022년 발표된 세 건의 논문을 통해 살펴보자.
학교 현장에선 불안 상황 회피하는 편의 제공 만연
먼저 캐서린 필립스(Katherine Phillips) 템플대 심리학과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미국 불안장애 학회지에 2022년 8월 실은 ‘불안으로 치료 중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 기반 지원과 편의 제공(School-based supports and accommodations among anxious youth in treatment)’ 논문이다.
이 연구는 특정한 접근의 효과성을 검증한 연구는 아니다. 학교에서 불안장애가 있는 청소년에게 미국 학교에서는 어떤 지원이 제공되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봤다.
그 결과 불안장애 학생들은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 ‘회피 촉진형(avoidance-promoting)’ 지원을 많이 받고 있었고, 공포증 학생들은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직면하는 ‘접근 촉진형(approach-promoting)’ 지원을 받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기존 연구를 근거로 들어, 불안장애 학생들은 전문가들이 유익하게 보는 접근 촉진형 접근이 아닌 회피 촉진형 접근의 지원을 제공받는다고 설명한다.
기존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인데 기존에는 학부모, 학생, 교사들의 설문이었다면, 이번에는 전문가 패널의 평가이다. 같은 결과가 나온 만큼 불안장애 학생에게 제공되는 학교 기반 지원의 접근 방식을 재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도 앞선 칼럼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제거하거나 회피하는 편의 제공의 방향은 계속되는 회피와 불안의 유지를 강화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제거해 학습에 도움을 주려는 취지의 행동이 사실은 학생의 장애를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적어도 불안 장애 학생에게는 편의 제공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어 살펴볼 논문은 소피 마르텔(Sophie R. Martel) 연구원 등 예일대 아동 학습 센터에서 2022년 유럽 교육 및 심리학회지에 게재한 ‘학교 기반 편의 제공이 사회적 불안이 있는 청소년의 불안 관련 학교생활 기능 저하를 완화하는가(Do School-Based Accommodations Mitigate Anxiety-Related School Impairment for Socially Anxious Youth?)’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학교생활 기능 저하’라는 다소 낯선 표현을 썼지만, 쉽게 생각하면 불안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다. 실제로 이를 측정하는 데 사용한 검사도 ‘아동 불안 영향 지표’이다. 쉽게 말해 불안이 끼치는 영향을 10가지 항목에 걸쳐 평가한 것인데, 발표, 소리 내어 읽기, 공부에 집중, 제시간에 등교, 다른 아이들과 식사, 성적 부담 등이다.
그러니까 결국 학교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불안 장애가 끼치는 영향을 줄여주는지를 확인해 본 것이다. 여러 검사 결과 간의 선형 회귀 분석을 한 결과 학부모 응답에서는 편의 제공이 학교생활 기능 저하에 효과가 있었고, 학생 응답에서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었다.
효과가 있었다는 말은 편의 제공으로 학교생활 기능이 오히려 저하됐다는 얘기이다. 편의를 제공해도 사회적 불안 증상의 영향, 즉 어려움은 계속됐다는 얘기이다.
사회적 불안의 정도와 학교 활 기능 저하가 편의 제공 여부에 영향받는지 분석했을 때는 편의 제공이 될 경우 사회적 불안이 끼치는 영향이 소폭 줄어드는 수치가 나왔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편의 제공이 학교생활 기능 저하를 오히려 늘어나게 하는 효과는 부모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었고, 편의 제공이 사회적 불안의 영향을 줄이는 효과는 사실상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이 연구는 제공하는 편의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개별화 교육 계획이 있는지 여부로 편의 제공을 하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보통 불안 장애 학생에게는 주로 회피형 편의가 제공되는 것을 앞선 연구에서 확인한 만큼 회피형 편의를 제공해도 여전히 어려움은 계속됐다고 볼 수 있겠다.
연구진은 논의에서 특히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불안과 회피를 지속하게 하는지, 학생의 자신감을 저하하고 추가적인 편의 제공 요구로 이어지는지 살펴야 한다고 했다.
회피형 편의 제공하는 교실의 학생이 불안 높아
마지막으로 골다 긴즈버그(Golda Ginsberg) 코네티컷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등이 2021년에 ‘학교 심리학 및 상담사 학회지’에 실은 ‘교실 내 불안 유발 상황에 대한 아동의 회피와 교사의 편의 제공(Child Avoidance of Anxiety-Provoking Situations in the Classroom and Teacher Accommodation)’ 논문을 살펴보자.
연구진은 학생 31명과 교사 31명을 대상으로 몇 가지 설문과 면접, 그리고 별도의 전문가 평가를 진행했다. 회피형 편의 제공은 발표나 시연 상황 위주로 제공됐다.
각 설문과 면접 등의 결과는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교사가 회피형 편의 제공을 많이 하는 교실에는 더 높은 불안 관련 회피 행동을 보이는 학생과 더 심각한 불안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다.
이와 함께 교사의 편의 제공 행동, 학생의 회피 행동, 불안 장애의 심각도가 모두 정적 상관을 보였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상관관계여서 인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선후 관계는 알 수가 없다. 불안이 심한 학생이 있어서 회피형 편의 제공이 높은 것일 수도 있다. 교사가 번아웃이 오거나 지친 경우에 회피형 편의를 더 자주 제공한다는 연구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사의 회피형 편의 제공이 불안 심화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열려 있는 연구 결과이다. 특히, 기존에 부모와 아동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와 일치할 뿐 아니라, 치료 효과도 저하된다는 연구가 있는 만큼 가능성은 높다.
게다가, 경험이 많은 교사일수록 불안에 노출되는 접근을 자주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경험적으로 회피형 편의 제공이 큰 효과를 못 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특히 인지행동치료의 ‘노출’ 전략을 통해 불안과 회피의 감소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교사들에게 불안 감소 연수를 통해 편의 제공을 줄이는 접근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제언한다.
성장은 장애물을 치워줄 때가 아니라 넘어서도록 격려할 때 찾아오는 것
이 정도 살펴봤으면 불안의 요인을 제거하는 회피형 편의 제공은 결국 불안을 가중하고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로베트 교수 혼자의 지론이 아니라 연구의 일관된 결과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이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연구가 이 세 건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최근에 지명도 있는 기관의 연구진이 직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대표적 연구를 선정했을 뿐, 유사한 연구는 그 외에도 많다.
물론, 이 연구 모두 로베트 교수의 주장 자체를 한 연구로 입증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각각 한 부분씩 입증하는 것이 연결되면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학문의 세계는 극적인 어마어마한 하나의 연구로 어떤 결론이 나기보다는 작은 발견 여러 개가 쌓여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그렇게 여러 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지행동치료의 ‘노출’ 접근이 ‘불안 장애’의 정석 대응법이지만, 자폐 학생의 경우 인지행동치료는 일반 학생과 비교하면 꽤 낮은 효과를 보이는데, 자폐 학생의 대표적 중복 장애가 불안 장애기 때문에, 중복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노출 접근을 사용하다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이 로베트 교수도 편의 제공이 필요한 경우도 인정하면서 편의 제공의 조건을 설명했다. 다만, 불안을 낮추고 성장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반적인 방향성은 회피형 편의 제공은 아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로베트 교수와 조던 박사의 칼럼의 한 부분으로 마지막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현대의 온갖 사상과 주장에 눈이 가려질 때가 있을 뿐 사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다.
“아이가 과제가 발표가 두려워 집에 있게 해달라고 조를 때 부모들의 보호 본능이 작동한다. 그런데 아이의 발달을 돕는 일은 종종 일시적인 불편함을 견뎌내고 아이의 가능성에 자신감을 표현하는 일을 요하기도 한다. 그럴 때 주어지는 대가는 단순히 불안의 감소만이 아니라 역량의 성장까지 이어진다.”
이번 칼럼과 논문들을 더 자세히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링크는 아래와 같다.
- Schools Are Accommodating Student Anxiety — and Making It Worse
- School-based supports and accommodations among anxious youth in treatment
- Child Avoidance of Anxiety-Provoking Situations in the Classroom and Teacher Accommod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