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운전을 해서 학교로 왔고, 습관처럼 커피를 타 마셨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들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정작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삶은 무수한 사건의 연속이지만, 종종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나고 나면 일주일, 한 달, 일 년은 순식간에 삭제되고 이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때때로 시끌벅적한 연말에 문득 느껴지는 허탈감은 이 때문이 아닐까?
나의 일상은 반드시 해야 하고 필요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 때문일까?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성찰하는 삶을 외치며 다음과 같이 일괄했다.
“이것 보세요! 당신은 아테나이인이요. 당신의 도시는 가장 위대하며, 지혜롭고 강력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오. 하거늘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획득하려고 안달하면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1)
1) 천병희 역(숲, 2016), 소크라테스의 변론, p.44
우리는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때때로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더라도 일부러 모른 채 하기도 한다. 나의 일상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인을 넘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중요함의 기준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치열하게 사유하고 질문을 던지며 토론해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여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적어도 공교육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철학함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수업에서 아이들은 『마크』를 함께 읽으며 ‘중요함’이라는 주제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텍스트의 대해 다양한 질문을 제안했는데, ‘중요함’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윤이가 처음 질문을 조금 수정해서 제안했다.
주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유를 대며 토론을 하고 있는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을 판단하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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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그건 상황마다 달라질 것 같아요. 교사: 그게 무슨 말일까? 유진: 그렇지 않을까요? 밥 먹을 때는 반찬이 제일 중요하고... 예성: 게임을 할 때는 캐릭터가 제일 중요해요. 교사: 다른 사람들도 예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 아름: 연애할 때는 외모가 제일 중요해요. 준이: 아냐. 연애할 때는 성격이 제일 중요해. 민성: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는 외모가 중요할 수 있지만, 지속되려면 성격이 더 중요하지. 교사: 너희들은 벌써 그런 것까지 아니? 아름: 샘보다 우리가 연애는 더 많이 했었을 수도 있어요. <다 같이 웃는다> 주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건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 다른 거 아냐? 승우: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거네. |
“중요한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전문 철학자들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너무나 추상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질문으로 토론을 한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토론을 진행해야 하지?, 아이들이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교사로서의 직업병이었다.
하지만 유진이가 그런 걱정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쉽게 정리해 버렸다. “밥을 먹을 때는 반찬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이 너무나 참신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그렇지. 맞아. 밥을 먹을 때는 반찬이 제일 중요하지. 신기하게도 철학적 토론의 맥락 속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발언과 문장은 너무나 색다르게 다가온다. 성인들의 무겁고 복잡한 질문들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상황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중요한 것이 다양하다는 의견으로 나아갔다. 중요한 것의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금 질문을 제안했다. ‘정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이 붙는 순간, 아이들은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별 의도가 없었지만, 아이들은 교사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노하우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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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정말 세상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없을까? 승우: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 다른 것 아닐까요? 교사: 그럼 너희들은 생명과 돈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름: 당연히 생명이죠. 지성: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교사: 그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대신에 돈을 택했다면 어떨 것 같아? 유진: 인간도 아니죠. 뭐. 준이: 잠깐...앞에서 우리가 말한 대로라면 비난할 수 없지. 그 사람은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깐. 수진: 그럼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건가요? 교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주윤: 덜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의 기준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판단을 내리기 어렵잖아요. |
요즘 아이들과 토론할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인 상대주의와 상황주의이다. 연대와 공공선의 가치가 사라진 새로운 세대를 마주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과거에는 단단한 국가 중심의 가치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교실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그 문제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반례를 제시해 보기로 결정했다. 생명과 돈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중요함의 기준을 개인의 취향으로 판단 내려도 될까? 당연히 아이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다시금 토론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종종 철학적 토론을 참관한 교사들은 토론에 진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컷 토론을 하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오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아이들의 생각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풍부해졌을 것이다. 생각의 변화, 진전에 대한 감각을 분명히 체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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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우리가 보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까? 지성: 예를 들면 돈이나 생명, 성적 같은 거요. 승우: 시간도 중요하고 친구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름: 저는 제 꿈이 중요해요. 행복도 중요하고요. 교사: 그런데 앞에서 우리가 말한 것처럼 돈과 생명이 경쟁을 하면 어떻게 하지? 준이: 생명이 더 중요하죠. 수진: 왜? 민성: 돈을 또 벌면 되지만, 생명은 한번 없어지면 끝이잖아요. 교사: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이 뭘까? 유진: 희소성 같은 건가? 주윤: 맞아. 희소성. 적을수록 더 중요할 수밖에 없지. 교사: 또 다른 기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준이: 중요한 것을 판단할 때의 기준이요? 교사: 맞아. 아름: 많은 사람이 인정해 주는 거요. 그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승우: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거요. 저한테는 그게 중요한 것의 기준이에요. |
중요하다는 것의 보편적인 기준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보편’이라는 말은 철학적으로 참 무거운 말이다. 때때로 폭력으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고유성을 말살하는 독재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한 ‘보편’이라는 말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함께 발 딛고 걸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과 기준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광풍 속에서 여전히 ‘보편과 본질’이라는 지향점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 아닐까? 중요한 것의 보편적 기준으로 유진이는 희소성이라는 말을 했고, 아름이라는 타인의 인정을 말했다. 하지만 승우는 여전히 개인의 주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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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 아닐까요?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잖아요. 솔직히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다 행복해지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교사: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는 거지? 수진: 전 그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본인은 조금 불행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독립 운동가 같은 사람들... 승우: 행복를 느끼는 방식도 사람마다 달라요. 돈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고, 관계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교사: 그럼 사람들은 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살고 있을까? 아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도 아직 저한테 뭐가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거든요. 승우: 저도 그래요. 주윤: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을 낭비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교사: 그럼 지금 나한테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성: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요. 준이: 전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아름: 책보다는 다른 사람들 하고 이야기해 보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민성: 근데 선생님한테는 중요한 것이 뭐예요? 교사: 나? 지금 이렇게 너희들하고 수업하는 이 순간이지. 주윤: 오~~ 그럼 종 쳐도 나가지 말고 교실에 있어요. 좀... 교사: 아니야...그건 아니야... |
아이들은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넘어갔지만, 그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과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중요하다는 것의 보편적인 기준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설픈 합의보다는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퇴적되어 삶의 지층을 만들어 갈수록 그 삶 만들어 내는 궤적은 더욱 풍요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아이들은 오늘 토론을 통해 우리 삶 속 어딘가에는 분명 중요한 그 무언가가 자신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