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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사회가 만든 '기준', 꼭 있어야 할까?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매드 맥스’, ‘더 퍼지’ 등과 같이 법이 붕괴된 사회를 그린 영화를 보면 혼란과 갈등, 폭력의 일상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홉스와 로크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법과 정부가 없는 자연 상태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할 법과 질서, 도덕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법과 질서를 아무렇게나 만들 수는 없다.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줄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

 

과거에는 그 기준의 역할을 신, 자연, 이성, 왕 등이 담당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만 그것을 근거로 법이나 질서 등이 작동될 수 있었다. 이는 고대로부터 인간이 만든 실정법의 보편적인 기준을 마련하려고 했던 자연법 사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도 사회가 만든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 기준이 단순히 법, 규칙, 도덕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고 욕망하는 기준은 사회가 만든 기준에 철저히 얽매여 있다.

 

물론 이러한 기준들은 결코 명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에 암묵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렇게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스며들어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하는 힘을 ‘미시 권력’으로 표현한다. 과거의 왕처럼 명시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암묵적으로 사회의 기준과 권력에 순응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니체는 이러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반대한다. 기준 자체에 반대하기보다는 그 기준을 정당화하는 보편적인 기반에 반대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어떠한 진리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따르는 것은 노예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망치의 철학을 말한다. 기존의 전통, 선입견, 기준, 편견 등을 망치로 부수는 것이다. 물론 부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망치는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이다. 우리 각자는 파괴를 통해 새로운 기준을 창조해야 한다. 그것이 주인의 삶이다.

 

이러한 사상은 극단적 상대주의로 나아갈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으나, 니체는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했다. 타자의 노예가 되는 것에 저항하고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인간, 즉 ‘초인’을 상상했던 것이다.

 

오늘 수업에서 아이들은 법과 처벌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 소설 ‘마크’를 읽었다. 교재를 읽고 난 뒤에 승우가 질문을 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꼭 있어야 하는 거예요?"

 

승우는 도대체 기준이 뭐길래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논쟁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히려 기준 때문에 사회가 더 혼란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승우의 설명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승우의 질문으로 토론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교사: 승우의 말처럼 정말 기준이라는 것이 꼭 필요할까?

유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려면 기준이 필요해요.

교사: 왜?

유진: 기준이 없으면 헷갈리잖아요.

교사: 예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수진: 옷을 하나 고르기 위해서도 기준이 있어야 해요. 예쁘다는 것의 기준이요.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고를 수 있죠.

지성: 맞아요. 기준이 없으면 선택을 못해요.

예성: 아무거나 선택하면 되지 뭐.

주윤: 그럼 나중에 후회하는 거야.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아름: 영화가 재밌는지를 평가할 때에는 기준이 있어야 돼요.

민성: 법도 하나의 기준이에요.

주윤: 맞아.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기준 같은 거지.

 

삶의 매 순간은 선택이며 모든 선택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설프지만, 이 점을 명확하게 짚어냈다. 굳이 기준의 의미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이 대화를 통해 아이들은 이미 선택과 판단, 기준의 관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잘 보면, 개인적 기준과 사회적 기준이 구분되지 않고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기준과 법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함께 논의되고 있었다.

 

오늘 토론은 개인적 기준보다는 사회적 기준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론의 방향을 살짝 바꾸기로 했다.

 

교사: 우리가 있는 학교에서도 기준이 필요할까?

수진: 학교에서 학생들을 평가할 때에도 기준이 필요해요.

승우: 맞아요. 기준 없이 평가하면 불공정하니까요.

지성: 선생님 마음대로 평가하면 분명 불만이 생길 거예요.

교사: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구나.

수진: 맞아요.

아름: 근데 기준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교사: 왜 그렇게 생각해?

아름: 음... 잘 생기고 예쁜 외모 때문에 못생긴 사람들은 상처를 받잖아요.

준이: 그게 외모의 기준이 있어서 그렇다는 거야?

아름: 맞아. 만약 기준이 없다면 다들 평등하지 않았을까?

주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성적이라는 기준 때문에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상처 받잖아요.

지성: 그건 자기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민성: 저는 지성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기준이 없으면 다들 노력을 안 할 거예요. 기준이 없으면 평가가 없을 거니까요. 사람들은 평가하지 않으면 노력을 하지 않을 거예요.

주윤: 하지만 우리가 평가받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잖아.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 같아. 평생 평가만 받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그냥 노력하지 말고 다같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준 중 하나는 학교에서 실행하는 평가 기준일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평가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평가 기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에서 평가 기준이 잘못되면 언론에 도배되기도 한다.

 

우리 반 아이들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정한 보편적인 기준 때문에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평가 기준이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평가 기준이 있어야만 누구나 공정한 대우를 받고 열심히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어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교육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윤이는 이러한 생각에 균열을 일으켰다. 나는 마치 주윤이가 새로운 이상을 꿈꾸었떤 아나키스트같이 보였다.

 

우리는 꼭 평가를 받아야 할까? 꼭 서열과 계급을 나눠야 할까? 꼭 경쟁과 노력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준이: 난 기준이 없으면 평화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옳고 그름의 기준까 지 사라지는 거니까.

교사: 기준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아름: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질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옆에 있는 친구를 때려도 처벌할 수가 없잖아요.

민성: 맞아.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이 사라지니까...

승우: 도덕이라는 것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구도 그런 삶을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예성: 생각해 보니 기준이 사라진다고 평등해질 것 같지는 않아요. 힘 있고 비겁한 사람이 더 권력을 차지할 거예요.

지성: 아 그렇네! 기준이 없으면 다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할 거예요.

주윤: 하지만 여전히 앞에서 나온 문제는 풀리지 않아요. 사회가 만든 기준 때문에 차별당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아이들은 다시 기준이 없는 사회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준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이 있더라도 기준이 없는 사회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름이가 제안한 예는 굉장히 파급력이 컸다.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폭력을 처벌한 근거도 사라진다. 승우는 이러한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이라는 족쇄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윤이는 앞에서 자신이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이야기했다. 타인이 만든 기준에 얽매여 있는 삶은 불행할 거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승우: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이 만든 기준에 휘둘 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거예요.

교사: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예를 들어 줄 수 있을까?

승우: 외모나 성적과 관계없이 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삶의 기준은 스릴이에요. 그래서 스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잘 사는 거예요. 저한테는요.

교사: 그럼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삶의 기준을 말해볼까?

아름: 저는 편안한 삶이에요.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예성: 저는 돈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주윤: 저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요.

유진: 그런데 이렇게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까? 누군가는 남에 게 해를 끼쳐도 성공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요.

교사: 맞는 말이야. 기준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윤: 항상 기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전 기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유진: 저도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모두 기준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주윤: 솔직히 기준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지성: 각자가 평화롭게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면 좋긴 하겠다. 누구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고... 비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민성: 그럼 정부와 법원도 필요 없겠네. 근데 그게 안 되니까... ‘좋은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지성: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좋은 기준보다 안 좋은 기준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니체는 각자의 기준을 스스로 창조하는 주인의 삶을 강조했다. 타자의 기준, 잣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지향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때 언급하는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한 기준이 아니다. 이성의 빛에 비추어 심사숙고된 기준을 말한다.

 

교육의 시공간에서 어린이 철학은 각자에게 암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기준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공의 토론에서 검증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에 비판적 시선을 던지면서 자기 수정이 가능하도록 한다.

 

어린이 철학이 아이들에게 좋은 삶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전문 철학자들이 하듯 어려운 개념과 기준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설득하지도 않는다. 단지 각자가 지향하는 좋은 삶의 기준에 대해 반성적으로 검토하면서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고 기술과 성향 및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오늘 토론은 아이들이 왜 철학을 해야 하는지, 철학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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