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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죽음과 자살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인간은 죽음을 선취해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닐까?

 

물론 동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섣불리 판단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인간이 창조한 문학, 예술, 철학 등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변방에 위치한다. 아이들에게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였다. 더욱이 자살이라는 주제까지 간다면 논의의 여지가 없어진다.

 

청소년 자살률을 논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빠지지 않는다. 모든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자살예방교육도 한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 결론을 열어놓고 철학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살은 당연히 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취된 결론이 있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주 인용되는 고대 철학자 세네카는 자살을 옹호한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더 이상 존엄하고 덕 있는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때 자살은 허용된다. 물론 이 과정은 심사숙고된 이성적 판단이어야 한다. 그는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살이라는 주제로 철학적 토론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살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잘 사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 만큼 자살이라는 주제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주제에 대해 아이들과 솔직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주제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직접 썼다. 키우던 애완동물이 불치병에 걸려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와중에 아이들끼리 자살에 대한 문제로 토론하는 내용이었다.

 

수업 시간에 이 짧은 이야기를 읽고 질문을 만들어 보게 했다. 늘 그렇듯 내가 원하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안했다.

 

 

민성: 자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주윤: 술을 마시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것일까?

준이: 자살은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것일까?

유진: 청소년의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지성: 청소년기의 약물 중독은 완치될 수 있을까?

수진: 청소년기의 술, 담배를 하면 자신의 꿈을 펴칠 수 없을까?

예성: 대중매체가 생명경시풍조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쓴 이야기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문들도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분명 어떠한 관련성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떤 질문으로 토론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굳이 그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민성: 난 자살이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마음에 들어.

예성: 난 자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까? 라는 질문도 좋은데?

승우: 어차피 주제는 자살이네.

지성: 그러면 이 2개 질문을 합쳐서 ‘자살을 해도 되는가?’라고 하면 어때?

 

이렇게 아이들은 좀 더 포괄적인 질문으로 토론은 시작됐다.

 

유진: 어차피 최종적으로 모두 다 죽는 거 아닌가요? 자살도 죽는 거고요.

나: 모두 다 죽는다. 자살도 죽는 거에 포함되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거니?

유진: 네 맞아요.

주윤: 아니에요 자연적으로 죽는 거랑 의도적으로 죽는 것은 달라요

나: 그게 많이 다른가? 어떤 점이 다를까?

수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이 죽는 것과도 다르죠.

승우: 음...예를 들면 어쩔 수 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과 일부러 훔치는 것은 다 르잖아요.

유진: 어쩔 수 없이 남의 물건을 왜 훔쳐? 바보니?

 

유진이의 말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멋쩍게 웃으며 승우가 말했다.

 

승우: 그냥 예를 든 거지.

수진: 그런데 그 예는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의도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지성: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과 자살로 죽은 사람은 같지는 않아요.

승우: 맞아요.

아름: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일부러 포기할 권리는 없어요.

나: 왜?

아름: 부모님이 주신 거니까요. 내가 생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때문이잖아요.

 

아이들은 먼저 자살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자살의 본질적 속성은 죽음이 맞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죽음은 다양한 외연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주윤이는 자연적 죽음과 의도적 죽음으로 구분했다. 아이들은 이미 모호한 개념에 대해 철학적 토론을 진행할 때에는 ‘분류와 구분’이라는 사고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곧이어 이러한 구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 들기’라는 사고 기술도 활용했다. 물론 적절하지 않은 예라는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굉장히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시도 덕분에 의도된 죽음이라는 자살의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죽음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는 말에 대해 생명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자살예방교육의 일반적인 주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공고히 굳어진 생각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아마도 철학적 탐구공동체라는 공간이 주는 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이 시공간에서는 어떠한 생각과 의견도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비난받거나 조롱받지 않는다.

 

 

민성: 생명은 자기 거잖아요. 그러니깐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어요.

유진: 생명에 소유권이 있다고?

예성: 내 육체에 있는 거니까 내 것이지, 아닌가?

준이: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만든 것은 아니지. 신이 주시든, 부모님이 주시든 한 거 아니야?

나: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창조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니?

준이: 맞아요. 그냥 주어진 거죠.

아름: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주어진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삶이 너무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나: 왜 그렇게 생각해?

아름: 그냥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에요. 의무나 숙제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생명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다양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굳이 노직과 같은 철학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에 대한 완벽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생명의 자기소유권은 자살을 찬성하는 근거로 가장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곧이어 아름이는 자신이 원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했다. 각자의 삶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언제든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름이의 말을 들으면서 삶은 의무나 숙제가 아니라는 말이 귓속에 맴돌았다. 얼마나 문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표현인가? 과연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의무는 없는 것일까?

 

 

주윤: 내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에 대한 어떤 책임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승우: 가족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책임 같은 것이 있어야 해요.

아름: 하지만 가족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아요. 내 삶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지성: 자살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힘들었을 것에요. 주변에 사람들이 그 힘듦을 대신 감당해 주지는 못해요.

예성: 저도 지성이 의견에 마음이 더 가요. 음....너무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어요.

수진: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힘들어도 살았잖아.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자살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준이: 우와...이런 질문은 처음이야. 충격적인데!

나: 나의 죽음이 남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지?

수진: 맞아요. 저번에 철학 시간에 배운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어요.

예성: 그래도 삶이 너무 의무처럼 되어 버리면 너무 괴로울 것 같은데...

지성: 벗어날 수 없는 지옥 같은 느낌인가?

 

울산고운중학교 학생들은 주제 선택 및 방과 후 시간을 통해 철학사도 함께 배운다. 생태철학을 통해 아이들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아름이가 너무나 직관적인 질문으로 포현했다. 우리의 부모 역시 매우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삶은 그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는 삶에 대한 어떠한 책임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의 표현대로 지옥 같은 삶을 유지해야만 할까? 나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나: 쉽게 자살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는 거니?

승우: 맞아요.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기는 힘들어요.

지성: 맞아! 맞아!

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진: 자살하려는 마음이 안 생기도록 도와줘야죠.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승우: 주변에서도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나: 요즘 아이들은 왜 자살을 선택한다고 생각해?

유진: 대부분은 학업 스트레스 아니면 친구 관계 아닐까요?

준이: 학교 폭력 같은 것도 있어요.

민성: 여러 지원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상담도 필요하고...

승우: 공부를 못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아름: 맞아. 우리처럼 살아도 행복한 거지.

유진: 야! 우리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거든.

주윤: 대안학교 학생들은 공부 안 한다는 편견부터 고쳐야 돼!

 

모든 생명은 서로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생명에도 책임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정신의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철학의 유산인 자율성과 주체성이라는 개념은 현대 사회를 각개 전투의 시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속에서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는 스스로 거대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 괴물은 개개인의 삶을 황폐하고 외로운 회색빛 도시로 몰아내고 있다.

 

교실에서는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하면 된다 Vs. 하면 안 된다’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자살이라는 쟁점 아래에 숨겨진 생명과 죽음의 의미, 타자에 대한 책임, 소수자의 아픔, 연기적 존재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아와 통합된 진정한 윤리적 신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윤리적 신념은 자아와 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는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과학적 논쟁에 열려 있으면서 상호적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그것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도덕적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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