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사고력을 길러주고자 한 어린이철학 운동은 미국의 교육학자 매튜 립먼에 의해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어느 날 립먼에게 어린이 경제잡지에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들어 온 적이 있었다. 그 요청에 대해 립먼은 정중히 거절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에게 자본주의적 논리를 세뇌시키는 일에 주의해야 합니다.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길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철학함이 중요한 것은 심사숙고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으면 안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비판적 사고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세뇌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립먼이 어린이철학 운동을 처음 시작할 무렵, 미국에는 각종 상업 광고와 대중매체가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린이의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떨까? 적어도 그 당시보다 더 나아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SNS라는 가상공간과 인공지능(AI)이라는 전무후무한 도구의 등장은 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AI는 아이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온갖 질문에 1초의 망설임 없이 답을 해주고, 각종 과제를 종류에 관계없이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어 주며, 내밀한 상담까지도 거침없이 해내고 있다.
SNS라는 삶의 공간과 AI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휴대폰에는 AI가 나의 검색 기록을 토대로 온갖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정말 매력적이다. 이러한 유혹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오늘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읽은 철학 소설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예성이가 질문했다.
예성: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일까요?
이 질문을 만든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들과 잘 지내려면 유행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종 밈이나 유행어를 모르면 바보가 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더욱이 “옷이나 신발을 하나 사더라도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예뻐 보이는 것을 사는 것이 좋지 않냐”는 것이다.
유행은 이러한 일을 쉽게 해준다고 말했다.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이야기였다.
나는 예성이가 말하는 동안 학기 초에 말도 엉성하던 아이가 1여년의 시간 동안 정말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예성이가 말을 마치자 아이들은 이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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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남들이 사는 것을 무조건 따라 사는 것은 낭비예요. 별로 필요 없는 물건도 막 사고 그러잖아요. 환경도 파괴되고요. 준이: 저는 어느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신 돈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데...문제 없을 것 같아요. 유진: 저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스버킷 챌린지 같은 것도 있잖아요. 유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지성: 맞아요. 요즘 달리기도 유행이잖아요. 운동도 되고 건강에도 좋아요. 나: 너희들은 유행이 뭐라고 생각해? 준이: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거요. 아름: 많은 사람들이 아는 거 아닐까요? 주윤: 많이 사람들이 좋아하고 원해야 해요. 나: 많은 사람이 원해야 하는 거구나. 주윤: 당연하죠. 그래야 유행이 되니까요. |
아이들은 유행이라는 현상이 가진 장단점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단점 찾기는 어린이철학에서 강조하는 사고기술 중 하나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고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성이는 달리기가 유행이 됨에 따라 사람들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이들은 유행이라는 현상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기반한다고 보았다.
나는 이 ‘원한다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우리가 가진 원초적인 욕망은 이 원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원한다. 이 욕망의 근원인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싶었지만,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으려고 했다. 만약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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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유행에 따르게 되는 걸까? 예성: 사회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따라야 해요. 그래야 친구들끼리 이야기도 통하거든요. 수진: 다른 사람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으면 불안하기도 해요. 휴대폰도 그렇잖아요.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지고 있는 나만 없으면 불안해요. 주윤: 무엇보다 유행에 따르기를 원하니까요. 그게 좋아 보이거든요. 나: 그게 왜 좋아 보이는 걸까? 아름: 다들 그것을 원하니깐...유행이 되는거죠. 나: 예를 들어볼 수 있을까? 민성: 연예인이 입는 공항 패션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사진이 SNS에 뜨면 너무 멋지고 예뻐 보이잖아요. 그럼 사고 싶어지거든요. 그러면 유행이 돼요. 선생님은 그런 적 없어요? 나: 있지. 지금 내가 입은 것도 다 유행이라서 산 거야! 아이들: 그건 에바예요! 선생님은 인스타도 안 하잖아요. 옷도 이상한데... - 다 같이 웃는다 - 유진: 사람들이 싫어하면 당연히 유행이 안 돼요. 나: 그렇구나. 그럼 사람들이 원해서 유행이 되는 거야? 아님 유행이 되어서 원하는 거야? 수진: 당연히 원하니깐 유행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유진이 말처럼 유행이 안 되겠죠. 지성: 그런데 솔직히 TV나 SNS 같은 곳에 많이 노출이 되니깐... 승우: 맞아. PPL 같은 것도 있어요. 일부러 유행을 시키려고 하는 거죠. |
아이들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원함’이라는 논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유행이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큰 문제 없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딴지를 걸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원해서 유행이 되는 거야? 아님 유행이 되어서 원하는 거야?”라는 질문으로 아이들의 생각에 파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한 파문이 일으킨 물결이 어떻게 탐구공동체 교실 전체로 퍼질지도 궁금했다.
철학사에서 욕망 이론은 매우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욕망은 결핍에서 유래한다. 무언가가 결핍되고 부족하기에 욕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과 창조의 원동력으로 다시 주조된다. 아이들이 말하는 욕망 역시 어떤 결핍에 토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행이라는 현상이 욕망을 창조하고, 그러한 욕망은 다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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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유행을 해야 사람들이 돈을 써요. 사람들이 돈을 써야 누군가는 돈을 벌겠죠. 수진: 하지만 밈이나 일베 용어 같은 것도 계속 유행을 하는 것을 보면 꼭 돈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 말은 유행의 목적이 꼭 돈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준이: 맞아. 어떤 생각 같은 것을 퍼뜨리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해. 나: 그런데 그렇게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그게 맞는지, 옳은지에 대해서 말이야. 주윤: 어렵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믿잖아요. 유진: 두쫀쿠가 맛있다고 TV에서 계속 말하면, 그렇게 믿게 되는 것 같아요. 예성: 맞아. 나도 그래. 승우: 난 맛 없던데.. 주윤: 어쨌든 유행 자체는 생각하지 않아. 그냥 스며드는 거야. |
인간의 욕망은 무언가를 생산한다. 그런데 그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방향성을 잃고 전진하는 기관차와 같다.
처음에 아이들은 누군가 돈을 벌기 위해 유행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이어 밈이나 생각 같은 비물질적인 유행도 짚어냈다. 굉장히 섬세한 시각이다. 유행의 범주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된다.
나는 토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질문을 제기했다. 그러한 유행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볼 수는 없을까? 립먼 교수라면 반드시 제기했을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유행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주윤이가 말했던 스며든다는 말이 다른 아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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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TV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믿고 원하도록 만든다는 거지? 그게 우리의 욕망인가? 수진: 우리가 원하는 게 욕망이라면 그렇겠죠. 주윤: 하지만 그건 진짜 나의 욕망이 아니에요. 승우: 그것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어? 주윤: 사회가 만든 욕망이잖아. 그걸 착각하는 걸 수도 있지. 나: 왜 그렇게 생각해? 유진: 원래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TV에서 연예인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맛있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예성: 맞아. 먹방을 보면 먹고 싶어지는 것 같아. 준이: 그게 마케팅이지. 그런 것을 잘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나: 그럼 다른 사람이 의도한 욕망과 나의 진짜 욕망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주윤: 음...그게 구분이 될까요? 유진: 솔직히 진짜 나의 욕망이라는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준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는 게 생존이잖아요.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있을까요? |
준이가 질문을 하자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어 했다. 립먼은 이 지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더 생각하고 싶어 할 때야말로 글을 써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문법이나 글씨, 구두점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더 창조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순간이 중요했다. 그러한 경험이 쌓일 때 글쓰기는 비로소 삶의 도구가 된다.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저항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적 탐구공동체 토론에 이어 쓰는 글을 철학적 글쓰기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글쓰기 외에도 책을 선정해서 일과 시간 이후에 같이 읽어보기로 했다. 기숙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실을 나가면서도 나는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아이들이 만족할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주윤이의 말이 들려온다.
“너무 어려운 책 고르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러니깐. 그 어렵다는 기준이 도대체 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