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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 철학]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내가 처음 어린이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에 나조차도 납득되지 않는 당위나 규범을 전달하는 일에 깊은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린이 철학을 만났다. 항상 철저한 계획에 맞추어서 진행되었던 내 수업은 매 순간 흔들리고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게 되었지만, 적어도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에 남모를 안심이 되었다. 교사를 계속 해도 되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이 철학은 수업뿐만 아니라 나도 변화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기계처럼 출근, 수업, 업무, 퇴근만을 반복하던 나에게 좋은 교육은 무엇인지, 좋은 교사가 무엇인지에 좋은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철학은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그 핵심은 좋은 삶이었다. 철학은 좋은 삶을 위한 보편적인 기준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외쳤다.

 

2000년 넘게 철학은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다루어왔지만, 그 근간은 결국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교실에서 아이들이 제기한 질문도 이와 관련이 깊었다.

 

솔직히 오늘 수업에서 아이들과 이 질문으로 토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준비한 읽기 자료는 안락사에 관련된 것이었다.

 

박찬구 교수의 『우리들의 응용 윤리학』의 한 챕터를 같이 읽었다. 안락사라는 쟁점을 통해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다루어 보고자 했는데, 늘 그렇듯 아이들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아이들은 다양한 질문을 제안했다.

 

 

민성: 안락사와 살인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주윤: 비자발적 안락사도 허용 가능할까?

준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도 될까?

유진: 고통은 꼭 피해야 할 대상일까?

지성: 인간답게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 중에서 아이들은 지성이의 질문에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지성이의 부연 설명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지성: 존엄사는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인간답게 잘 사는 게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이유는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도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어요.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잘 사는 삶일까요?

 

지성이의 문제의식에 다른 아이들도 공감하는 듯 보였다. 결국 지성이의 질문이 토론 질문으로 선정됐다.

 

나는 애초에 죽음이라는 쟁점에 대해 나름 준비를 하고 들어왔기에 내심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의도에 수긍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저항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쁜 마음도 들었다. 아마 과거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사전에 계획한 대로 아이들을 끌고 오려고 애썼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굳이 리좀적 사유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러한 불확실성이 나와 아이들 그리고 수업을 더 성장시킬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진: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게 잘 사는 거 아닐까요?

민성: 큰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요.

승우: 맞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교사: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잘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 우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야 해요.

준이: 행복하면 잘 사는 거죠.

교사: 행복?

예성: 저는 게임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준이: 그럼 그게 잘 사는 거지. 잘 살고 있네!

 

많은 사람은 행복한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행복은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기에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아이들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멀리 나가지 못했다. 큰 어려움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허무주의적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다분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좋은 삶의 기준이라면, 삶의 이상이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탐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이러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주윤이가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주윤: 저는 ‘인간답게’라는 말이 걸려요. 인간다움이라는 게 뭘까요?

유진: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야?

교사: 일단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준이: 음....저는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교사: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준이: 동물은 욕구대로 행동하잖아요. 먹고 싶으면 먹고, 싸고 싶으면 싸고요. 하지만 인간은 달라요.

교사: 어떤 점에서 다를까?

아름: 제가 말할래요. 인간은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요.

주윤: 맞아.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거지. 동물은 본능대로만 행동하고요.

 

철학은 근본적으로 개념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그것이 아마도 일반적인 토론과 철학적 토론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개념은 추상이고, 현실은 구체이다. 철학적 탐구공동체 안에서는 추상과 구체를 오고 가며 토론이 이루어진다. 주윤이는 정확하게 핵심적인 개념에 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것은 ‘인간다움’이었다. 아무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개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아이들의 사유 방향도 달라졌다. 방향보다 깊이가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같다. 철학은 문제를 보는 눈높이를 바꾸어준다.

 

 

준이: 본능대로 행동하는 게 나쁜 거야? 수면욕이나 식욕은 중요하잖아.

주윤: 본능대로 행동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본능으로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거지.

준이: 그게 다른 거야?

주윤: 너는 성욕 때문에 성폭행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준이: 헉! 그건 안 되지. 이제 이해했어.

교사: 그럼 인간답다는 것은 본능과 다르게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건가?

주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성: 그럼 아기는 어때요? 아기는 본능대로만 행동하잖아요. 그럼 인간다운 것이 아닌 건가요?

주윤: 맞아. 아기는 아직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교육이 필요한 거야.

지성: 교육을 통해서 더 인간다워진다는 거야?

주윤: 맞아.

 

주윤이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자, 준이는 반론을 제기했다. 본능대로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본능과 욕구는 수많은 철학자에 의해 억압과 배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져 왔다. 현대 철학은 이러한 억압적 체제에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주윤이는 준이의 반론에 대해 굉장히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능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를 준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주윤이는 예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준이는 흔쾌히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나는 이러한 대화의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 간의 관계도 점점 성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주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름: 근데 저는 그게 너무 빡빡한 것 같아요.

교사: 그게 무슨 의미일까?

아름: 그냥 평생 옳고 그름만 구분하면서 사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준이: 맞아요. 행복도 필요해요. 행복하지 않으면 잘 사는 삶이라고 볼 수 없어요.

승우: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본인만 판단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쉽게 말해서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 사는 거죠.

주윤: 승우 말은 다른 사람의 삶이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 같아요. 본인만 알 수 있는 거죠.

승우: 맞아요. 겉으로 볼 때 잘 못살고 있다고 보여도, 본인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주윤이는 이성적 삶을 인간답게 잘 사는 삶의 기준으로 주장했지만, 준이와 승우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달랐다. 준이는 행복을 배제한 이성적 삶은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승우는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은 개개인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많은 아이가 삶에 대한 어떤 보편적인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윤: 그럼 범죄자도 인간답게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거야?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준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는 만족할 수 있잖아.

아름: 그래도 인간답지는 못해. 짐승 같은 삶이잖아.

교사: 인간답게 잘 사는 삶의 보편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는 없을까?

승우: 없어요. 그건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주윤: 아니에요.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는 누구나 친일파보다 독립운동가의 삶이 더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학교에서 위인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잖아요.

아름: 옳고 그름을 구분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준이: 맞아요. 저도 이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주윤이는 승우의 주관주의적 입장에 대해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주관적 잣대로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윤이가 범죄자의 예시를 들자, 다른 아이들의 눈빛도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어떤 보편적인 기준을 정할 수 없는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주윤이는 보편적인 기준에 대한 어떤 희망을 이야기했고, 아름이와 준이 역시 그러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어떠한 기준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내심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시공간 속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인간다운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못하겠지만, 오늘 10평 남짓한 이 조그만 교실에서 합리주의, 회의주의, 주관주의, 쾌락주의 등과 같은 지성사의 큰 흐름들이 매우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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