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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정부의 유일한 일은 '평화를 유지'하는 거야?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울산고운중학교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평화’이다. 그래서 교육과정 상에서 일주일에 2시간은 ‘평화 수업’이라는 과목이 배정되어 있을 정도다.

 

이 시간에는 비폭력 대화, 갈등 해결, 회복적 써클 등과 같은 것을 배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과 태도를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기숙형 대안학교이다 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배운 갈등 해결의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밤늦도록 써클을 열거나 회의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들도 직장에서 가장 힘든 것이 회의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때때로 몇몇 아이들은 교사들이 먼저 나서서 강제로 질서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평화 그 자체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갈등 없이 어떻게 평화를 배울 수 있을까?

 

오늘 아이들과 함께 읽은 철학소설 ‘마크’에서 랜디라는 친구가 이렇게 주장했다.

 

“정부의 유일한 일은 평화를 유지하는 거야!”

 

이 말에 대해 마크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먼저 랜디가 전제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줄게, 그는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어. 첫째,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싸우려 한다. 둘째, 그것은 오직 정부의 강제력만이 막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전제로 삼는다면, 정부가 할 유일한 일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란 결론이 나와.”

 

그러자 토니는 “아니야! 네가 빠뜨리고 있는 세 번째 전제가 있어. 즉 평화만이 중요한 것이란 전제야. 그렇지만 이 세 가지를 전제로 한다면 랜디가 옳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주윤이는 랜디의 결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평화로운 사회가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주윤이의 질문 외에도 아이들은 “왜 사람들은 항상 서로 싸울까?”, “강력한 법만 있으면 평화로운 사회가 될까?”, “평화가 유지되면 좋은 국가일까?” 등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주윤이의 질문으로 토론하고 싶어 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유진이가 대답했다.

 

“학교에서는 평화만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정말 평화롭기만 하면 좋은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아요. 때때로 갈등이나 다툼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이 말에 대해 처음 질문을 제기한 주윤이도 대답했다.

 

“제가 질문을 만든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항상 평화로운 상태만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준이는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싸우는 것보다 낫지.”

 

나는 이 질문을 주윤으로부터 들었을 때, 내심 최근 일어나고 있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등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내 경험상 아이들은 토론 시작부터 이렇게 거시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철학자 리오타르가 말했듯 오늘날은 작은 서사의 시대 아닌가? 물론 아이들의 사유는 그러한 작은 서사에만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삶의 이야기 속에서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아이들은 언젠가 더 넓은 의미의 평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평화로운 사회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민성: ‘무조건’이라는 말이 맘에 들지 않아요. 평화로운 사회가 좋긴 하지만...

나: 왜?

민성: 의미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주윤: 난 오로지 평화만이 중요한 것인지를 묻고 싶었어요. 때때로 갈등과 다툼도 중요하니까요.

 

민성이의 질문은 매우 중요했다.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토론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면 그 이후의 토론은 아마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민성이의 질문으로 인해 주제는 ‘오로지 평화만이 중요한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좀 더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었다. 질문이 명료화되자 곧이어 주윤이가 의견을 제안했다.

 

주윤: 때로는 혁명과 항쟁도 있어야 해요.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잖아요.

아름: 하지만 전쟁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많은 아이들이 죽었어요. 불쌍해요.

수진: 그렇지만 평화롭기만 하면 침략을 당해요. 조선을 보세요.

준이: 갈등과 전쟁은 꼭 필요해요. 병균이 있어야 몸도 건강하잖아요.

 

나: 평화란 무엇인가요?

주윤: 갈등과 싸움이 없는 상태죠.

수진: 맞아요.

민성: 경쟁과 다툼이 없으면 발전이 없어요. 서로의 잘못을 지적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유진: 오류와 잘못을 지적해 줘야 발전이 있어요.

예성: 그게 다툼은 아니잖아.

승우: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야. 누가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데 기분 좋을 순 없잖아. 너도 수업에 늦게 들어온다고 말하면 항상 화를 내잖아.

아름: 그건 고자질이고!

민성: 근데 평화가 가능하긴 해요? 인간은 다 생각과 감정이 다르잖아요.

주윤: 갈등과 다툼이 아예 없는 것은 불가능하지.

 

아이들의 생각은 변증법을 떠올리게 했다. 세상은 옳음과 선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코 고정된 절대적인 옳음과 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옳음과 선을 향해 변화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를 위해 주장이 있다면 반론이 있어야 하고, 멈춤이 있으면 운동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평화보다 성장과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평화는 정적이고 고정된 상태이기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듀이의 말처럼 변화가 없는 정적인 상태는 권태이자 악이다. 그래서 듀이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평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악에 가깝다고 보았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선은 평화라는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혁명과 항쟁을 통해 성취해 내야 할 그 무엇으로 보였다.

 

물론 평화라는 것이 갈등과 다툼이 없는 고정된 상태로만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내심 이러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수진이가 평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했다. 그 순간 수진이의 관점이 내가 고민하는 있는 지점보다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적 토론에서 아이들의 사유가 보이는 역동성을 내가 따라가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수진: 평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해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력한 기준이요.

주윤: 모든 것이 그 기준에 의해 판결 나면 갈등이 없긴 하겠네.

승우: 그건 독재잖아.

아름: 그런 사회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나: 왜?

아름: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불행하죠. 선생님도 그렇지 않아요?

예성: 나도 그렇긴 해.

 

수진이는 갈등과 다툼이 없는 평화가 가능하려면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람들 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기분 나빠하지 않을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은 분명 기분 나빠할 수 있다. 또한 서로 간에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으로 인한 충돌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기준과 권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러한 강력한 기준이 작동하게 되면 개개인의 자유가 훼손되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교실의 분위기는 무조건적인 평화보다는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기우는 듯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력한 기준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가 과연 불가능한지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져보려는 찰나에 승우가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강력한 기준을 통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승우: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나 다툼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폭력이 없는 사회예요.

주윤: 그게 다른가?

승우: 갈등이 서로 생각이 달라서 다투는 거지만, 폭력은 달라요.

지성: 때리고 억압하고 죽이고 뭐 그런 거.

승우: 강제로 남의 생각을 조정하려고 하면 폭력이죠.

예성: 그럼 절대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겠네.

승우: 그렇지.

수진: 그럼 그건 평화가 아니잖아.

유진: 그럼 어떻게 평화가 가능해?

승우: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해야지.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제하면 안 되지.

아름: 그럼 갈등만 하고 해결이 안 되잖아. 불편한데...

민성: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필요하겠네.

주윤: 음... 대화? 토론?

유진: 그거 하다가 싸우면 어떻게?

주윤: 잘 대화해야지.

아름: 아~~ 일단 해보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말이야.

 

아름이의 말에 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떠들기 시작했다. 장난스럽게 서로 다투는 아이들도 보였고, 어떤 친구는 조용히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기도 했다. 승우가 말하기 전에 내가 나섰다면 이렇게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철학적 토론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발언이 아쉽기도 하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조금은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며 그러한 쉼표 속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토론 속에서 생각이 충분히 익으면 곧 멋진 아이디어와 논리로 토론은 심화해 갈 것이다.

 

오늘 토론을 마친 후 내가 강의하는 대학생들에게 이 토론 내용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자기들이 공부하는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인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공동체주의 간의 논쟁을 한 편의 드라마로 보는 듯하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그렇다. 아이들은 이 짧은 대화 속에서 근대 왕권제와 전제주의를 지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로 나아가는 경로를 지나간 것이다.

 

물론 이 토론에 참여한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토론을 통해 보여준 생각의 흔적들은 정치사상적 경로를 단순히 따라간 것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의 과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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