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추석 연휴인 지난 4일 또 한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충남의 어느 중학교 교사였던 고인(41세)은 학교에서 하루에 1만보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유는 방송과 정보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원이 많은 학급의 임시담임까지 맡고 있었다니 숨진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어떠했을지 그려진다. 평소 숨가쁜 업무과중을 호소하였다니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교사와 교원단체들은 그간 계속 목소리를 내왔다. 교사들이 본연의 임무인 교육활동에 충실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행정업무는 줄기는커녕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새 학년도를 시작하기 전에 교사들은 한 해의 업무를 배정받게 되는데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1년 간의 교사 생활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업무분장 시기가 되면 교사들은 매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되도록 힘들지 않은 업무를 맡기를 희망하며, 이때 ‘욕을 좀 먹더라도 잘 버티면 1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교육과정과 수업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할 시기이지만 1년을 결정하는 ‘업무분장’은 피해 갈 수 없는 난관이자 교사들 간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원칙 없이 흔들리는 한국 교사의 정체성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교육이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교육하는 최일선에 있기에 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라고 한다.
교사가 교육연구와 교육활동이 아닌 행정업무에 동원되는 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에 각 교직원의 역할이 구분되어 제시되어 있다.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 <개정 2021. 3. 23., 2023. 9. 27.> ②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이 없는 학교에서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수석교사를 포함한다)가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③수석교사는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④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⑤행정직원 등 직원은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의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를 담당한다. |
③항과 ④항을 보면 교사는 법령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행정직원 등 직원은 학교의 행정사무를 담당한다’라고 교사와 행정직원의 임무가 구분되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생을 교육하는 수업과 담임업무 이외에도 학교의 여러 행정업무를 같이 맡아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교사 발령을 받기 전에 재수생 입시학원에서 지구과학 강사로 7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2000년 뒤늦게 시험을 보고 신규발령을 받아 중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학원강사일 때 주어진 업무는 딱 한 가지 일은 수업이었다. 반면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근무하며 든 생각은 학원강사일 때에 비해 일은 3배가 되고 급여는 그에 반비례하는구나 싶었다. 학교에서는 교과수업과 함께 담임업무, 행정업무까지 3가지 업무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입시학원에도 별도로 담임강사가 있었지만 출결을 챙기는 거 이외에는 업무가 거의 없었다. 당시 담임강사수당은 50만원 정도였고 학교는 6만원이었다.
교사로 근무하기 전까지는 교사가 ‘극한 직업’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루에 수업 몇 시간 하고 방학도 있어서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일하면서 보니 교사들은 화장실조차 편히 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 지도나 급한 업무처리로 쉬는 시간 10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수업 시작종이 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는 급하게 보고할 공문처리나, 숨진 교사의 경우처럼 수업과 무관한 배정업무를 숨 가쁘게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교사가 ‘오히려 수업하는 시간이 마음 편히 학생들과 쉬는 시간처럼 느껴진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런지라 수업연구를 일과 중에 학교에서 하기 쉽지 않다. 방과후에 하거나 퇴근 후 집에서 가사일을 하며 짬짬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2019년 서울 오류중학교 교장일 때 필자 또한 신규 국어교사에게 방송업무를 맡기게 되었는데 “저 방송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쩌지요? 저는 교사 되면 수업 준비해서 아이들과 열심히 수업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일도 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심경을 밝혀서 너무나 민망했다.
그래서 “고치거나 하는 일은 행정직원이 연락해서 업체에서 할 거니 방송반 학생 지도 위주로 해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너무나 궁색했다.
실제로 이 신규교사는 방송을 사용할 일이 생길 때마다 방송반 학생들과 늦게까지 남아 방송점검을 할 수밖에 없어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남아있곤 했다. 노력은 했지만 방송업무를 전담하여 책임지고 처리할 행정직원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의 시작은 과거와의 결별”
지난 7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TALIS 2024: The State of Teaching」에 따르면 한국교사들은 세계 주요국 중 가장 긴 근무시간과 높은 업무강도를 느끼고 직무만족도와 심리적 안정도는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수업 외 업무 비중이 40%에 육박했는데 OECD 평균보다 1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교사노조연맹이 스승의 날에 조사한 설문결과, 최근 1년간 ‘사직을 고민했다’는 응답이 전체의 58%로 ‘고민한 적이 없다’는 응답(26.8%)의 두 배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교사들마저 학교에 남아있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 교육에 희망은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교육감이 바뀌면 늘 교사들의 업무경감을 공약했지만 학교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정책공약 탓인지 오히려 업무는 더 늘어났다.
아이들이 좋아서, 좋은 교육을 하고 싶어서 교사가 되었지만 교사들은 정체성 혼란에 자괴감을 느끼며 이직을 고민하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죽음 후의 순직 인정 요구는 너무나 참담하고 처절한 학교현장의 실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순직 인정이 없도록 순직을 막아야 한다.
교사들이 좋은 교육을 연구하고 실행할 수 있으려면 교사들에게 ‘여백을 제공’해야 한다.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결별에서 시작한다’는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말은 우리나라 교육혁신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레빈은 조직혁신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보다 ‘해동’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교육혁신의 주체가 교사라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검증된 명제이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교사는 절대 교육혁신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국민과 함께 내란을 극복하고 들어선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와 교사출신 최교진 교육부장관에게 거는 기대는 역대 어느 정부일 때보다 크다. 특히 교사출신 교육부장관이기에 학교현장의 구체적인 실태 및 문제점 파악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역대 그 누구보다 잘 찾으리라 희망하고 기대한다.
이번에야말로 과거와의 결별을 먼저 행하는 ‘해동 과정’을 통해 진정한 교육혁신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더 이상 학교의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응답해야 한다.

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