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사에게 정치 기본권을 보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 이 문제가 초중등 교육관련 주요쟁점이 되어 있다. 전교조 및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2025년 12월 24일 성탄절 이브에 국회 앞 7일간의 단식투쟁을 마쳤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입법화를 전제로 한 협의체 구성을 약속받은 직후였다.
이승만 정부의 정략: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보안법
OECD 국가 중 유일하게도, 한국의 교사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해 왔을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권력의 계산된 결과였다. 누가 계산을 했는가? 바로 이승만 정부(1948–1960)이다. 당시 이승만의 슬로건은 ‘반공 국가 건설’이었다. 이는 당시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의 국제적 대결구도라는 냉전질서 하에서 미국의 입장에 약삭빠르게 편승한 산물이다.
당시 이승만은, 교사들에 대해 학생에게 영향을 주어 장기적으로 유권자를 형성하기 때문에 ‘통제하지 않으면 체제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즉 좌익·중도이념이 잔존한 집단 또는 잠재적 정치세력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했다. 그리고 교사들을 국가공무원으로 규정하여 비판적 사고의 교육자가 아니라 국가이념의 전달자로 한정했다.
교사들을 제도적으로 묶는 장치는 ‘교사 및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원리와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이다. 이 두 가지는 놀랍게도 해방 후 8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제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교원과 공무원들은 지금도 19세기 냉전과 이승만 민간독재의 유산을 안고 사는 셈이다.
해방 이후 역대 정부의 정치이념적 경향
그러면 이승만 정부의 교사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행태는 왜 단절되지 못했는가? 우리의 짧지 않은 독재의 역사가 그 해답을 말해준다.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위 표의 개념 중 ‘검찰독재’는 수사·기소 권력이 정치과정을 구조적으로 압도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서 썼다. 이는 국내외 학계에서 법의 무기화(lawfare), 독재적 법률주의(autocratic legalism)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를 더 간명하게 검찰독재로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 민주라는 개념에 걸맞은 정권의 기간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현 이재명 정부를 합쳐 약 11년 뿐이다. 민간독재, 군사독재, 검찰독재를 합친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노태우 정부 역시 선거만 민주주의였을 뿐 독재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민주정권에서 당연히 교사들에게 정치기본권을 부여했어야 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계산이 개입한다. 즉 다수결의 원리를 의식해 ‘유권자의 표’를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종종 느끼고 있듯이 ‘다수의견이 정당성의 근거’라는 원리적 주장은 사실 중대한 민주주의의 맹점이기도 하다. 이 다수가 두려움, 편견, 기득권적 안일함에 젖어 있을 경우, 소수의 권리, 장기 개혁, 불편한 진실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철학자 F. 니체는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독립된 이상이기 보다는 “그리스도교적 운동을 계승하는 것”으로 본다.(『선악의 저편』202절). 그리스도교적 운동의 가치는 바로 다수의 평등, 동정(同情), 위험회피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 위험회피의 본능을 제도적으로 충족시키는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독재정권이 만들고 관제언론 및 유튜브가 유포, 재생산하는 편견이 예컨대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 좌우 대립의 결전장이 된다” 등이다. 이러한 편견이 위험회피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러면 정치는 단지 다수의 부담, 갈등, 위험의 회피장치로 전락한다.
해외의 상황 : 스위스와 프랑스
스위스에서는 국회의원이 서류가방을 들고 평소 일하던 직장에서 나와 국회로 간다. 국회 회기가 끝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데 그 모습이 이 나라에서는 이상하지 않다. 교사들도 수업하다가 대체교사에게 맡기고 국회로 간다. 그 배경에는 민병제도(militia)가 있다. 이는 군대로서의 민병제가 진화한 것으로, 민간직업과 공적업무를 병행함으로써 현장감을 그대로 살린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스위스의 정부/의회 공식문서에 이렇게 되어 있다.
“연방의회는 스위스의 지역사회 봉사 개념으로서 민병제‹militia›에 따른 준전문 의회다. 이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의회 업무 외에도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출처: The Federal Assembly(parliament).
달리 보면, 이들이 현장 직업인들이기 때문에 정치를 본업으로 하는 ‘직업 정치인들’보다 더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위스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프랑스를 보면, 시민들이 교사들에 대해 얼마나 큰 신뢰를 보내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 교원들은) 거의 대부분 국가공무원이지만 이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감안한다면, 교원의 정치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자본가 계급의 지역 유지들 뿐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고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재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재력이 없는, 그러나 특출한 정치적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선출되더라도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었다.” (출처: 전학선 논문, “프랑스 교육제도와 교원의 정치활동의 자유”, 2013, p.77~78).
위 논문을 통해 확인된 프랑스 교원의 의회진출은 한국인에게는 눈을 의심케 한다.
1981년 총선: 491석 중 교원 167석(약 34%)
1997년 총선: 577석 중 교원 150석(약 26%)
2022년 총선(16대 하원)은 이렇다. 프랑스 연구기관(iFRAP)의 분석에 의하면, “2022년 하원의석 총 577석 중 40%가 공공부문 출신이고, 그 중에서 41%는 교원이다.”(자료 제목: Professions des députés : 40% des députés viennent du secteur public).
그렇다면 전체 의석 577석 x 0.40 x 0.41 = 94.6 즉 95명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대단하다. 그 외 나라들에서 이 정도가 아니어도 모두 한국보다 월등히 교원비율이 높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의 실익
그럼 교사 정치기본권이 보장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실익이 있는가?
첫째, 교육정책 결정의 구조변화가 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교육정책은 주로 정치권, 관료, 입시중심의 이해관계자들 즉 일부 상위층 학부모와 사교육 출신자들의 욕망이 주도하고, 교사들이 현장 집행자에 머물고 있다. 정치기본권이 보장되면 교사들이 의회에 진출하거나 정당에 가입해 입시제도·대학서열·사교육 구조를 전면 정치의제로 만들 수 있다. 즉 현실적합성 정책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분으로 억눌렸던 교육내용을 복원할 수 있다.
정치기본권은 민주시민교육, 정치교육, 사회적 쟁점토론이 비로소 기지개를 펴고 학습의 장에 등장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교원의 정치기본권 회복은, 국가보안법과 같은 냉전적 통제 장치를 재검토할 수 있는 사회적·교육적 조건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례로 ‘김구와 이승만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평가를 위한 토론’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못한 음습한 환경에서는, 박근혜 정부 때의 국정교과서 사건, 윤석열 정부의 ‘리박스쿨(이승만·박정희 우상화)’ 사건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사회 및 도덕(윤리) 과목을 개칭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민교육을 하나의 교과로 공교육에 정착시키는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은폐된 이데올로기의 지속성을 막는 장치가 된다.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이념들로, 예컨대 유교적 서열주의, 민족주의, 능력주의 등의 지배력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 실천적 가치들이라 할 수 있는 차별과 배제, 포용의 경계선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 명백해진다.
민족주의 관련 이데올로기의 예로, 2022년 디아스포라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독일에 예멘인들이 9000명이 거주하는데, 독일당국은 이들 중 4150명을 난민으로 인정해 주었다(자료: 2022.12.14. The Yemeni Diaspora).
하지만 한국은 2018년에 예멘인들 중 단 2명에게만 난민지위를 인정함으로써 국격에 맞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고 비난받았다.
이재명 정부는 척박한 정치·시민교육 부재 속에서도 광장에 모인 시민의 응원봉과 함성 그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법이 단기간에 내란을 청산한다면 교육은 장기간에 걸쳐 내란을 방지할 수 있다. 그 확실한 길이 바로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권리는 교사의 이익이 아니라 민주국가의 안전장치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제도화의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