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신남호] ‘블라인드 채용’으로는 학벌사회를 끝낼 수 없다

  • 등록 2026.01.12 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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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최근 보도에 의하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026년 1월 20일 국회에서 열리는 출신학교 채용차별방지법 제정을 위한 대회에 참여해 기조 강연을 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장관 또한 참석해 격려사를 한다고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료가 이 대회에 참석하는 모습은 학벌이 국가적 문제임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학벌 타파를 위해 국가가 움직이고 있으니 고무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국가교육위원장의 학벌주의 극복 의지가 엿보이나, 문제는 학벌이 형성된 결과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 시스템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학벌주의'의 뿌리


계층유지 욕망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국가 시스템과 견고하게 결합돼 있다는 것, 이것이 일종의 이데올로기화된 학벌주의의 뿌리다.

 

상위계층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올라온 집단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학벌이 능력주의와 결탁한다. 사회학자 베버(M. Weber)식으로 말하면, 지배는 정당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탐구할 때 가장 탁월한 사회학자는 부르디외(P. Bourdieu)이다. 그에 따르면, 학벌은 계층을 유지하는 전략이며, 특권을 능력으로 위장하는 장치다. 그는 소논문 ‘The Forms of Capital’, 1986.)에서 이렇게 적는다.

 

“문화자본이 학력·자격이라는 제도적 형태로 전환된다. (중략) 교육은 상속된 문화자본의 재생산을 승인(sanction)한다. (중략) 문화자본은 자본으로 인식되지 않은 채 ‘정당한 능력’으로 승인된다.”

 

즉, 계급적 우위가 자연적 질서처럼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블라인드 채용, 의식 개선 등의 담론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학벌 형성을 극복할 대안은


교육개혁과 직무역량 검증장치의 제도화, 이 두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함께 묶어 살펴본다.

 

첫째, 대학 간 서열을 고착화시키는 재정, 평가, 정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학벌의 상위층을 확대함으로써 가파른 피라미드 구조를 일정 부분 완화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이 재학 중인 사립대학과 중하위권 대학의 교육역량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책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대학 체계 전반의 질을 높인다는 관점에서 볼 때, 상위층을 두텁게 하는 전략과 중하위층 대학을 상향 조정하는 전략 사이에 과연 우열의 차이가 있는지 묻게 된다.

 

또한 오래 전부터 제기된 것으로, 전 대학을 대상으로 한 특성화 전략, 국공립 대비 비율이 과도한 사립대학의 준공영화도 본격 논의가 있어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확대된 대학교 수 역시 전문적 판단에 따라 구조조정을 단행해 수를 줄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고교 단계에서 입시경쟁을 완화할 경로를 다양하게 분화시킨다.

 

일단 공교육에서 개념, 단편 지식 위주의 학습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는 저서 중 ‘교육에 관하여’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시기에 개념과 추상적 지식을 강요하면 사물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잃게 되며, 이 결핍은 나중에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 개념은 오직 직관적 지각에서 나와야 하며, 지각이 이미 만들어진 개념에 의해 이끌리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경험이 제시되는 올바른 (지식습득의) 순서와 방식이다.”(‘Parerga and Paralipomena’,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한국어 번역본))

 

위 내용은 교육과정을 경험과 현장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이론, 개념을 접하자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문제의식을 확장해, 오랜 숙원인 직업계 고교 및 전문대학을 산업수요에 맞게 맞춤형으로 전문화시키는 것이다. 역량을 갖춰야 학력, 학벌을 타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첨단 AI 디지털 및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공대 출신의 인재가 줄어들고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 전문인력이 한국의 첨단산업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대의 인재 부족과 유출의 1차 원인은 직업·산업 간 보상격차(의료·법조·대기업 vs 공학·중소기업)이며, 대학 서열 중심의 학벌구조는 이 격차를 다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셋째, 공공 및 기업에서 학력과 무관하게 직무역량 인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017년 OECD 자료는 이렇게 적고 있다.

 

“형식적인 자격증은 기술을 완벽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고용주와 공공기관은 학력 증명서와는 별개로 직무 관련 역량을 평가하고 인증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OECD Skills Outlook 2017: Skills and Global Value Chains’)

 

한마디로 학교 졸업장은 능력의 증명서로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사회학자 브라운(P. Brown)이 참여한 논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학위란 직업성취의 실제적 신호로서 기능하는데 취약하다. 그래서 역량 기반 평가와 인증 도구(certification framework)가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 ILO의 2019년 자료 ‘더 친환경적인 미래를 위한 역량(Skills for a Greener Future: A Global View)’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물론 소위 명문대 졸업자라고 하면 논문을 읽을 때 조금 더 기대감을 갖는 등 변별적 역량이 없지 않다. 반면 학교 관리자, 행정가 중에서도 학벌만 믿고 자기계발을 게을리해 내부 시스템의 민주적 작동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전반적으로 정치 입문에서 관공서와 기업, 군대에서 취업 및 승진에 이르기까지 역량평가를 외면하고 출신대학만을 선발기제로 여긴 결과는 어떤가? 사회전체가 무능과 무소신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이 조직 내 장이 되어 권력을 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구조적 취약성과 12.3 비상계엄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생생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결국 학벌주의는 극히 위험한 사회악의 잠재성까지 내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학벌 대신 직무능력 검증으로


그러면 한국에는 직무능력 검증 장치가 없는가?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 그것이다. NCS는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표준화해 교육·훈련·자격·인적자원관리(HRM)에 연계할 수 있는 도구다.

 

그런데 한국의 직무능력 검증도구가 학벌을 충분히 대체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학벌의 상위계층의 과도한 욕망에 대응하는 국가전략의 부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잠깐 독일·프랑스가 직무역량 검증도구의 상황과 위상을 한국과 비교해 본다.

 

 

독일 연방 직업훈련법(Berufsbildungsgesetz = BBiG, 2005.), 프랑스의 국가기구 France compétences: RNCP(국가직업자격목록), RNCP의 운영지침서인 핸드북(Vademecum relatif au RNCP, 2022)의 자료를 근거로 살피면 이렇다.

 

단적으로, 한국의 학벌은 ‘선별 장치’이고, 직무역량은 ‘정당화 장치’로 보조적인 위치로 전락해 있다. 독일·프랑스는 직무자격이 곧 입장권인데, 한국은 학벌이 입장권이다.

 

다음으로 직무능력 검증의 ‘공적 권위’에서 차이가 있다. 독일·프랑스는 자격시험과 역량평가를 법으로 규정하고 독립된 공적 기관이 운영한다. 역량평가 결과가 채용에서 강력한 진입요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NCS·국가자격은 채용 시 참고 사항일 뿐이며, 미보유 시 배제되지도 않는다. 직무능력 검증자료가 학벌과 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은 장시간 수행평가, 현장 기반 실기검증을 소홀히 한다. 그래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검증 비용이 낮은 학벌을 쓰자”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블라인드 채용은 학벌의 ‘표시’를 가릴 수는 있어도, 학벌이 생산·축적·정당화되는 구조를 해체하지는 못한다.

 

영국도 주지하다시피 이른바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과 연구중심 대학 24개의 연합체인 ‘러셀 그룹(Russell Group)’ 중심의 위계 서열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단일한 입시점수 체계로 전국을 줄세우는 맹목적 구조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역량·기술 중심 고용 전환을 연구하는 비영리기관 ‘Opportunity@Work’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연방정부 및 다수 주정부가 학위 없는 숙련인력(STARs = Skilled Through Alternative Routes)에 채용의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주의회협의회(NCSL) 자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 자료 등을 보면, 미국 역시 명문대 프리미엄이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공공부문과 민간 채용시장에서 학위 요건을 완화하고 ‘역량우선(skills-first)’에 따른 채용을 확산시키려는 정책적·시장적 움직임이 관측된다.

 

미국 학계에서는 ‘학문적 근친교배’를 경계하는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동일 대학 박사 출신을 같은 대학 교수로 채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일례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과 연계된 미국의 비영리 노동시장·인력 연구기관 ‘The Burning Glass Institute’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고용주들은 다양한 직무에서 학위 요건을 재설정하고 있으며, 많은 중간 기술 직종과 심지어 일부 고숙련 직종에서도 학사 학위 요건을 폐지하고 있다.”(‘The Emerging Degree Reset’, 2022)

 

한국은 국가관료 집단 다수가 상위 학벌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도 개혁이 지체되는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이제 학벌은 그 수혜자들을 포함하여 국격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이상,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학벌 중심 사회에서 역량 중심 사회를 향하여, 노동시장과 연계한 포괄적 교육개혁, 그리고 인재역량 검증척도의 보완 및 법제화 등이 진지하게 논의될 시점이다.

신남호 교육칼럼니스트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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