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현직 정치인이 경선에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곳이 적지 않다. 이런 경선과 단일화를 둘러싼 긴장은 정당정치가 발달한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풍경이기도 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의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와 충북지사 선거에서는 경선 방식과 공천 구도, 통합시장·단체장·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두고 복잡한 셈법과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 태안군수 선거처럼 경쟁하던 예비후보들이 ‘통 큰 연대’를 선언하며 단일화를 선택한 사례도 있고, 부산 영도구청장 선거의 경우 여야 모두 다자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당내 경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브루킹스 보고서
잠시 미국의 대표적 정책연구기관인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자료를 본다. 공동저자로 일레인 카마르크(Elaine C. Kamarck)와 제임스 월너(James Wallner)가 집필한 2018년 보고서 ‘Anticipating trouble: Congressional primaries and incumbent behavior’가 시사하는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보통 현직자는 현직 프리미엄으로 역량이 앞선다는 생각에 따라 ‘경선’의 필요성을 덜 느낀다. 반면, 임기 동안의 실적에 따라 경선을 '실존적 위협(primary threat)'으로 느끼기도 한다. 실제 경선에서 패배하는 비율은 2.8%로 매우 낮지만, 현직자들은 이 드문 사건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현직자는 공익(公益)이나 전체 유권자의 요구보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좁은 지지층’이나 ‘측근 및 이익집단(advocacy groups)’의 요구를 우선시할 수 있다. 일단 경선을 회피하면 다수 유권자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당내 혹은 집단 안팎에서 민주적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미국의 사례
미국의 사례는 브루킹스 보고서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2024년 6월 22일자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토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의 연방 하원은 총 435석이며, 대부분 현직 의원이 재선에 도전한다. 2018년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현직은 약 395명이며 경선에서 4명이 패배했다. 이 비율은 약 1% 수준이다. 2020년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의원은 약 400명 정도다. 경선에서 탈락한 현직은 8명으로 약 2%다. 2022년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현직은 약 390명 내외다. 경선에서 탈락한 현직이 7명으로 그 비율은 1.8%에 그친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정치인의 탈락률이 적은가? 기사에 따르면, 이름 인지도, 선거자금, 지역 조직, 정책 성과에서 도전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J. S. 밀 vs F. 니체
J. S. 밀은 자유론((On Liberty), Batoche Books, Ontario, Canada, 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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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진실된 의견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자주, 그리고 두려움 없이 논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교리로 남을 것이다.”(34p). - “자기 입장만 아는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 그런 사람이 합리적 판단에 충분히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35p). - “만약 [기존의 견해]가 강력하고 진지하게 반박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실제로 반박되지 않는 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편견으로 여길 것이다.”(50p). |
자기 편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반대편의 논거를 정면으로 듣지 않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입장조차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다. 경선은 비판과 논쟁을 통해 자신의 정책과 전문성이 편견이 아닌 정당한 것임을 먼저 같은 진영 안에서 검증받는 과정이다. 또한 경선은, 현직 프리미엄과 계파 공천에 대한 불신이 있을 때 이를 극복하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이롭다.
법적으로 현직이 경선에 불참하고 독자 출마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질적 공리주의자 밀은 자유의 행사가 '사회적 유틸리티(Utility, 공익)'와 결합될 때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반면, F. 니체는 ‘선악의 저편’(독일어판 KSA)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모든 고양은 지금까지 귀족적 사회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귀족 사회는 긴 계층 구조와 인간 사이의 가치 차이를 믿고, 어떤 의미에서는 노예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또 ‘유고 1884/85’(KSA)에서는 “귀족제는 엘리트 집단과 상위 계급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반면 민주주의는 위대한 개인과 엘리트 사회에 대한 불신, 즉 ‘모두가 서로 평등하다’는 신념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니체는 교육이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모두가 평등하다는 환상보다, ‘역량의 차이(Rangordnung)’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경선 후보자인 정치인뿐 아니라 경선관리 단체들까지 귀족적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않을 경우, 그 경선은 객관적 검증능력을 상실하면서 군중심리로 퇴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직의 경선 회피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경선 회피가 결과적으로 진영 전체의 패배로 이어진다면, 그 후유증은 해를 거듭해 지속될 만큼 파괴적일 수 있다.
다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 현직이 경선 대신 본선에서 공개 토론·정책 검증·언론과 시민의 비판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당선 뒤 탁월한 전문성으로 분명한 실적을 쌓는다면, 니체적 관점에서 그 선택이 언제나 용납 불가능한 것이라고만 단정하기도 어렵다.
흥미롭게도 이 두 철학자의 비교작업은, J. C. 이쿠타(Jennie Choi Ikuta)가 2014년 미국 아이비리그, 브라운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Democracy and the Quest for Human Flourishing: A Study of Mill and Nietzsche)에도 등장한다. 이 논문의 시사점은, 민주주의가 인간의 잠재력을 꽃피우는 장이 되려면 밀의 ‘공적 비판’과 니체의 ‘자기 수월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데 있다.
대책은?
민주정치의 본질은 경쟁과 검증에 있다. 하지만 이 경쟁과 검증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전문성이 결여된 후보가 대중성과 인지도만으로 부각되거나, 조직된 소수의 영향력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선에서 오히려 더 촘촘하게 후보의 자질과 정책역량을 검증해 미리 걸러내야 하는 이유이다.
반면, 현직자가 자신의 승리가능성이 명확히 인지될 때만 경선에 나간다면 이는 정치적 계산이 앞선 결과라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존 스튜어트 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정한 전문성은 온실 속 안주가 아니라 비판의 폭풍우 속에서 그 생명력을 증명받아야 한다. 현직의 경선 패배율 2.8%라는 수치는 여전히 현직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현직이 그간 업적에서 취약했다면, 스스로 경선에 나서거나 경선 결과를 존중해 다른 후보에게 본선 티켓을 양보하는 편이, 상대 진영에게 권력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는 공의(公義)에 부합할 뿐 아니라, 니체의 용어로는 ‘증여하는 덕’을 실천하는 주인도덕의 한 형태로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민주정치의 절차적 정당성은 밀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공론화 과정’과 니체의 ‘탁월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