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신남호] 교원 정치기본권의 과도기, 교육감 출마자들에게 제안하는 정책

  • 등록 2025.12.31 10: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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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2026년,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 법제화된다는 것은 지난 80년간 이어진 교사들, 나아가 교육의 정치적 예속 상태가 해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지금, 앞으로 5개월 후면 치르게 될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은 시민교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지금도 정치기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교육감 후보들은 정치기본권을 공약에서 아예 제외하거나, 관련 정책이 공약으로 제시할 경우 ‘정치’라는 단어의 사용을 가능한 자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갈팡질팡하는 후보가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학생의 균형 잡힌 시민성 성장과 함께, 궁극적으로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행태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는 시대적 목표를 향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교사의 참정권 보장에서 한국이 예외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육감 후보의 정책적 고민 역시 시대적 요청이다. 다음과 같이 정책을 구상하면 어떨까?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구상해 볼 수 있는 정책들


첫째, 교사가 의회 진출 시 ‘휴직–복귀 제도의 신설’을 공식 요구한다.

 

이는 교사의 참정권 보장 이후를 대비하는 조치이다. 교육감은 교육청 명의로, 혹은 전국교육감협의체를 통해 중앙정부 및 국회에 이를 공식 요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교직에 복귀한 이후 근무평정, 연수, 보직에서 차별이 없도록 한다. 이는 교육감의 인사권 재량 범위에 속한다.

 

아울러 학교가 정치화될지 모른다는 생각, 수업 진도가 끊길 수 있다는 유권자들의 염려를 의식하여 학부모 및 교원단체와 사전 협의를 이어가며 대응할 것을 약속한다. 일찍이 1966년 국제노동기구ㆍ유네스코는 교사의 권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80조. 교사는 일반적으로 시민이 누리는 모든 시민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공직에 출마할 자격이 있어야 한다.

 

81조. 공직 요건에 따라 교사가 교직을 (일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경우, 연수와 연금 지급 목적으로 (본래의) 직업이 유지되어야 하며, 임기 만료 후에는 이전 직책이나 동등한 직위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The ILO/UNESCO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eachers, 1966.10.5.).

 

둘째, 교육활동 종료 후 ‘직무와 무관한 정치적 의견표명 및 활동은 징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한다.

 

교사들이 근무 활동 종료 후 사회적 이슈, 예컨대 인공지능 윤리, 기후생태 보전, 정치적 쟁점, 역사문제 등 고유의 관심사에 따라 의견을 표명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교사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제고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앎을 풍부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유네스코 문서는 이를 분명히 한다.

 

79조. 교사의 사회 및 공공 생활 참여는 교사의 개인 발전, 교육 서비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장려되어야 한다.

(The ILO/UNESCO 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eachers, 1966.10.5.).

 

한국의 입시문화는 교사들로 하여금 ‘교과서 내용 전달자’로만 역할을 하도록 제한해 왔다. 이는 교사가 정치·사회적 판단 주체로 역할을 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다. 사실 ‘정치’는 장벽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요, 삶이 곧 정치로 수렴된다.

 

시민교육은 일단 교사들이 삶과 교육을 원활하게 넘나들 수 있는 환경에서 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자유를 유지하려는 시민들은 권력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으며, 니체는 삶 자체를 ‘권력의지’, 곧 힘의 발현으로 규정한다.

 

삶이 곧 권력(힘)의 장이며, 권력은 곧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그 욕망과 진실은 종종 은폐된다. 12.3 내란의 진정한 의도 역시 이후에 드러나지 않았던가?

 

특히 시민교육에서는 삶 자체가 사회 및 도덕 교과서보다 더 뛰어난 교과서이다. 핀란드에서 삶의 지혜를 담은 시민성 가치가 전 교과에 스며들도록 수업 내용을 조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래 내용은 한국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는 조지프 E. 아운 전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 총장이 한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 교육과정과 교수법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정보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비판적 사고나 세련된 의사소통 같은 학생들의 고차원적 정신 능력 개발은 대학교육의 목표 중 하나이지만, 너무 자주 교육내용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대부분의 경우 대학강의는 메타인지 능력을 명시적이고 체계적으로 키우도록 설계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기술을 가르치려 한다 해도, 잘 해내지 못하거나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는 점이다. 2011년 연구 ‘학문적 표류: 대학 캠퍼스에서의 제한된 학습’ 에서 리처드 아럼과 조시파 록사 교수는 조사한 학부생의 최소한 45%가 대학 첫 2년 동안 비판적 사고, 복잡한 추론, 글쓰기 의사소통에서 ‘극히 저조하거나 경험적으로 전무한’ 향상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Joseph E. Aoun, 『Robot-Proof: Higher Educatio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 The MIT Press, 2018).

 

 

위 내용에서 메타인지 능력은 한마디로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단순히 아는 것(지식)이나 잘하는 것(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과정을 인식, 조절, 점검하는 상위능력이다.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은 시험은 통과해도 비판적 사고, 복합 추론 등의 사고능력은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메타인지 능력, 곧 고차적 사고는 개념 및 논리적 훈련과 함께 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사회를 경험할 때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지프 E. 아운 전 노스이스턴대학 총장도 “AI 시대, 학생들 바깥 세상으로 나가라”(2019.4.4. HelloDD.com)라고 한다. 실제 높은 취업률을 보여준 그의 대학운영 원리도 잘 계획된 삶의 현장 체험에 있었다.

 

따라서 교육감 후보들은 기존의 형식적이고 양만 많은 원격연수를 대폭 간소화하고, 인가된 공익적 사회활동을 장려하고 이를 공식 연수로 인정하는 것이 어떨까?

 

교사들은 사회참여적 활동과 경험을 축적할수록 ‘살아있는 수업’이 되며, 학생들은 ‘잠자는 교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교사의 정치시민권은 바로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

 

셋째,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한국적 적용을 약속할 수 있다.

 

시민교육의 시대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한국에서 실천할 적기다.

 

이 협약은 법률도, 조약도 아닌 독일 시민교육의 합의 원칙이다. 따라서 ‘법이 없어서 못한다’는 반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교사 정치기본권이 아직 없더라도 이 협약을 ‘교육의 원칙’으로 채택, 공약할 수 있다. 이 협약의 핵심 원칙만 간단히 정리한다.

 

- 강요 금지 원칙(Überwältigungsverbot)

- 논쟁성 재현의 원칙(Kontroversitätsgebot)

- 학생의 이해관계 및 판단 능력 존중의 원칙(Schülerorientierung)

 

지금껏 학교가 ‘침묵이 곧 중립’이라는 가치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침묵은 기존 가치의 암묵적 재생산’이라고 가치 전환을 선언할 때다. 독일 시민교육의 핵심 역시 ‘민주주의는 교과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든 경험에 참여하기 어려우므로 그 경험을 그대로 교실로 가져온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삶과 경험 자체가 시민성 훈련의 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 역시 교사회 법제화와 함께 학생 대표가 단위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 공식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제도화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부분이다.

 

여기서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여부를 주요 국가와 비교해 보았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보고서, 프랑스 교육법(Code de l’éducation),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학교법(Schulgesetz NRW)을 근거로 정리했다.

 

일례로 미국은 다수의 주(state), 학군(district) 단위로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 참여한다. 경우에 따라 의결권 혹은 자문권이 있다.

 

 

교육감은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에 따른 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매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기본권은 학생들로 하여금 권력의 속성, 정의, 공정 등과 관련된 가치갈등의 극복 능력을 터득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지금까지 학부모 민원을 힘들어했다. 이에 교육감 후보들은 학교 및 지역 단위로 공식적 합의 절차를 거쳐 정치·사회적 토론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문서로 공식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돌리는 관행을 이제는 단절해야 한다.

 

끝으로 이런 슬로건은 어떨까?

 

“침묵과 방관을 넘어 논쟁 가능한 교실로!”

신남호 교육칼럼니스트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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