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현재 아쉽게도 0명에 그치고 있다. 반면, 우리와 자주 비교되어온 이웃나라 일본은 무려 25명이나 된다. 다른 분야까지 합해 30명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케 한다.
근대교육 제도를 도입한 시기를 보면, 한국은 1895년 ‘교육입국조서’, 일본은 1872년 ‘학제령’을 발표한 때부터 시작된다. 한국이 22년 늦었다. 대신 한국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의 성격을 보였고, 일본은 자율적 근대화의 성격을 띠었다. 한국은 또한 해방 후 미군정 및 독재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교육환경을 구축하지 못했다. 이런 요인들이 오늘날 한국의 교육과 연구의 환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그동안 노벨상 수상을 위한 노력이 없지 않았다. 자료에 따르면, 2002년 과학기술부가 비공식적이지만 일본의 RIKEN(이화학연구소)를 본 따 장기적으로 기초연구를 지원하려 했으며, 2011년에 과학기술부 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잠시 K-한류와 노벨상을 비교해 본다.
K-한류가 의미하는 것은?
노벨상을 K-한류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K-한류는 일단 공교육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류의 창의성, 모험심, 실험정신이 학교교육에서는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공교육은 의대와 법대 곧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방식만 변경되었을 뿐 의사와 변호사를 향한 자본주의적 욕망에 과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 좁은 입구를 향해 대학입시가 중시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른바 ‘시험능력주의’가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다. K-한류는 일단 이 흐름에서 벗어나 성공한 사례이다.
노벨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학분야 노벨상은,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기초학문’의 발달이 이뤄지고 그것이 가능한 학문적 생태계가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최초로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탄 것이 학문분야에서 가능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수 있지만, 그녀의 성장은 거의 ‘개인적인 노력’이었지, 교육적 환경이 만들어 주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났으므로 더 감격적이다.
아래 표는 공식화된 논문 등의 자료가 아닌 의견임을 전제로 논의를 위해 K-한류와 노벨상을 비교한 것이다. K-한류는 감성의 힘으로 세계를 사로잡는 단기적 창의성이라면, 노벨상은 이성의 힘으로 한국을 존경케 하는 장기적 창의성이라 할 수 있다.

과학지 Nature가 짚은 한국의 현실
세계적인 과학저널이 짚은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본다.
거의 10년 전인 2016년, Nature는 이렇게 한국을 진단했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정부가 지속해서 높은 R&D예산을 투입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장벽과 관료주의가 장애가 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US 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에 따르면, 2008-2011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의 70%가 미국에 그대로 머물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 한국의 많은 과학자는 정부예산을 기초연구보다 상품생산에 쏟아붓는 무분별한(knee-jerk) 대응을 비판하고 있다.”(Nature, Vol534. 2016.p.20)
여기서 문화적 장벽은 단기실적, 단기성과를 요구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실험의 분위기가 실종된 상태, 그리고 남녀차별 등이다. 2024년에 이 Nature는 특별판 보도자료에서 한국에 대해 또 이렇게 짚었다.
“학생 수 감소, 연구 인력 선택에 있어서 강고한 성차별, 다양한 연구생태계를 방해하는 문화적 요소, 혁신 허브와 매개역할을 하는 일원화된 부처의 부재, 국내외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인센티브의 부족이 한계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인구당 연구원 수가 많고 과학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만, R&D 투자대비(bang for its buck) 학술지 게재의 성과가 높지 않다.”(Nature, 2024.8.21.)

대안: 기초과학 연구역량 강화, 사회적 분배구조의 개선, 교육개혁
노벨상 관련 한국의 부족한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다. 이제는 치밀하고 세부적인 원인을 살피되,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기초연구청(가칭) 또는 국가기초연구위원회 설립할 것을 논의할 수 있다.
이는 과기정통부의 R&D 예산 중 기초·탐구 중심 연구를 완전히 분리하고, 정치적 압력과 단기평가에서 독립된 준독립 행정기관(quasi-independent agency)의 형태를 띠는 것으로 한다.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 독일의 ‘막스플랑크과학진흥회(Max Planck Society) 모델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구자 주도형 장기 지원제를 확대한다.
한 연구자(PI)에게 10년 이상 안정적 자금을 보장하고, 연구 목표 변경도 자율적으로 허용한다. 연구 성과 보고는 5~10년 단위로 최소화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탐구의 실패도 국가의 자산‘이라는 철학을 명문화한다. 연구소와 대학에 이 문구를 간판으로 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셋째, 1~3년 단위의 계약제를 폐기하고 박사 후 연구경로를 안정화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2023년 이공계 박사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박사 후 5년 이내 비정규직 비율이 70% 이상, 3명 중 1명은 연구직을 떠나는 것(퇴직, 이직)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30~40대 젊은 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자기 연구를 해 나갈 수 없는 환경이다. 이것을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교육과 이에 연동한 사회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K-한류는 공교육 밖에서 자라난 ‘민간 창의 교육생태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K-Pop은 연예기획사와 팬 커뮤니티가 주도한다. 드라마와 영화는 방송사, 제작사, 독립영화 네트워크에 예술대학이 일부 참여하는 형태이다. 웹툰·게임·디자인 역시 스타트업 및 플랫폼이 주도한다. 패션·뷰티·크리에이티브 산업 역시 1인 크리에이터, 유튜버, SNS 문화가 기여한 바가 크다. 즉 비제도권 학습을 통한 자기훈련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노벨상은 공교육과 분리할 수 없다. 제도권 내 창의력의 복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학교교육에서 10여년 이상 수학 및 과학 과목의 사고력과 창의력이 바탕을 이루고, 이어서 대학의 기초학문 연구, 그리고 장기적 탐구로 원활하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교육에서, 과학은 실험이 실종된 상태이며, 수학은 사교육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이 사교육은 대체로 학생들을 시험기계처럼 만들어 창의성을 더 저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 한류도 공교육이 손을 놓아선 안 되지만, 노벨상은 더욱 더 공교육이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요즘 논란이 한창인 고교학점제 그리고 입시 및 사교육 등 학교교육을 살리려면 지금까지의 접근과는 달라야 한다. 그것은 사회 불평등 문제에 대해 체념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짚는다.
“사회적 보상의 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며, 고용불안을 줄이는 것이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의 완전한 해소는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선다. 한국이란 한 국가나 정치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적 차별이 보상의 격차로 연결되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대 졸업자, 변호사 자격증, 그리고 명문대 졸업장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다. 이에 복지 확충 혹은 기본소득,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 극복이 중요하다.”(김동춘 교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기사제목: “사회 붕괴 전조로 읽히는 ‘사교육비 역대 최대’”, 2024.10.14.)
순서는 이렇다. 직업 및 학력차별 철폐 → 직업교육 활성화 → 대학입시 경쟁완화 → 공교육 정상화의 진행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때 오래도록 실종된 실험탐구, 토론 및 발표, 수학 및 과학 논문 쓰기가 가능할 것이다. 노벨상은 공교육에 기초한 학문생태계의 결실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사회적 고용불안 그 연장선에서, 노벨상 후보로 성장할 인재들 역시 연구원으로써의 지위 곧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과 같이 ‘정답만 찾는 공교육의 학습환경’은 ‘정답 없는 환경에서 배출되는 노벨상 수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 이 노벨상 수상을 위한 장기 초석을 다질 최종적 책임자요, 그 역할이 가장 기대되는 이는 누구인가? 바로 이재명 대통령,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 같이 현장에서 지혜를 터득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가장 크게 절감할 것으로 기대되는 최교진 교육부장관이 적임자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