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수어, 배려의 언어 아닌 '공용 언어'

  • 등록 2026.02.04 1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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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언제부터인가 방송에 등장한 또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어는 늘 누군가 나와 함께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는 든든한 정서적 동질감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수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다소 산만하고 어색한 감정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시민의식의 발로이자 ‘공존’의 언어로 친근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수어를 배워야겠다는 동료 시민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 교육에서 수어를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지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지난 2월 3일은 ‘한국 수어의 날’이었다. 이날은 단지 수어통역사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일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사유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수어 방송이 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난 상황이나 국가적 위기 때마다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장면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정부 브리핑 화면 한쪽에서 쉼 없이 손을 움직이던 수어통역사의 모습은 단순한 ‘보조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 접근의 평등을 상징하는 장면이었고, 사회가 누구를 시민으로 인정하는가를 보여주는 기준이었다.

 

더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의료진을 향해 손으로 ‘감사합니다’를 표현하던 순간이었다.

 

수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즈음 관리자로 근무하던 소속 학교에서 관내 보건교사들의 비상협의회가 거행되었다.

 

학교장 인사말을 위해 참석한 상황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보건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행위로 특정 제스처(한 손을 활짝 펴고 그 위에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쥔 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동작)를 말 대신 먼저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건교사들의 노고에 대한 진심의 발로로 여겨졌고, 이후 협의회의 목적과 원활한 진행, 상호 간의 신뢰로 이어져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간단한 수어 하나가 전하는 감사의 마음은 언어를 능가하는 연대와 존중의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한때는 궁금증을 동반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왜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수어의 가치를 실감하는가? 왜 수어는 여전히 ‘특별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언어’로만 인식되는가?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어는 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익혀야 할 또 하나의 공용 언어라고 말이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의 수어 교육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동아리 활동이나 체험학습, 혹은 특정 학교의 선도적 시도에 머무르고 있다.

 

초·중·고 교육과정 속에서 모든 학생이 기초적인 수어를 배우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장애 이해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양성과 소통 능력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미래 교육의 방향이다. 수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름’을 불편함이 아닌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다. 소리가 없는 언어도 완전한 언어이며, 표현 방식의 차이가 존엄의 차이가 아님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이는 교과서 몇 줄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시민 의식 교육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어를 제2 언어로 채택하거나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어 교육은 청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비장애 학생의 공감 능력과 소통 역량을 키운다. 우리 사회가 강조해 온 ‘포용 국가’의 가치가 교실에서부터 실현되는 셈이다.

 

수어 방송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수어를 배우고, 거리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손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회. 이는 나눔과 배려의 사회를 넘어, 공존의 사회로 가는 길이다.

 

‘한국 수어의 날’이 일회성 기념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바람직한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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