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학폭 가해자의 대입 탈락,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등록 2025.11.05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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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지난 2023년, 정순신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지명됐지만 아들이 학폭으로 징계를 받고도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 피해자는 우울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은 상태에서 가해자가 버젓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론이 들끓었다.

 

그 이후 각 대학은 의무적으로 학폭 가해 이력을 확인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입시 규정이 바뀌면서 학폭위 조치 수위에 따라서 감점을 하거나 아예 0점을 주는 대학도 생겼다. 이는 단 1, 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입에서 학폭 가해 사실이 있으면 합격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더에듀(2025.11.4.) 의하면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대입에 처음으로 반영된 2025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국립대 6곳에 지원한 학폭 가해자 45명이 불합격했다. 경북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대(8명), 강원대·전북대(각 5명), 경상대(3명), 서울대(2명) 등이었다.

 

그동안 학교를 졸업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가해로 받은 처분이 삭제됐지만, 지난해부터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6∼8호 조치) 등은 졸업 후 4년간 보존하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교육의 역할과 책임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엄중해지게 되었다. 상기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국민에게는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오랜 시간 학교폭력의 문제는 단지 ‘학생들 간의 갈등’으로 축소되거나, ‘미성년자의 실수’로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분명한 메시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정의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교육이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학교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하는 행위이다. 피해 학생은 학습의 기회를 잃고, 정신적 상처를 안은 채 삶의 궤도가 무너진다. 피해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수년이 지나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대학의 불합격 조치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교육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공정성과 정의의 최소한의 선을 세운 의미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세상, 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방향이다.

 

그러나 엄벌주의만이 능사는 아님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교육이 오직 단죄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실패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가해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그가 다시 인간다운 관계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처벌은 사회의 질서를 세우지만, 회복은 인간의 품격을 세운다.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비로소 교육은 완성될 수 있다.

 

일부 교육청은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회복적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피해 공감 교육과 상담,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잘못을 직면하게 하는 과정이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전학 처분을 받은 학생이 1년 동안 상담과 봉사를 병행한 뒤,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학교폭력 예방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을 얻었다”고 말했다. 교육이 손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대학 또한 엄정한 입시 기준을 유지하되, 진정성 있는 반성과 회복의 노력을 보여준 학생에게는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는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세우되, 교육은 다시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정의와 자비, 엄정함과 회복이 함께 서는 교육의 길이다.

 

학교폭력의 뿌리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에만 있지 않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교육 현실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공감’과 ‘존중’은 시험 과목이 아니지만, 인간다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기초라 할 것이다. 교사 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 친구 한 명의 손 내밀기가 한 아이를 폭력의 길에서 돌려세우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번 국립대의 조치는 분명 상징적이다. 그것은 ‘교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정의의 회복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단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회복되고, 가해자가 변화하며, 모두가 함께 다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단단해지게 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변화이며, 배제보다 회복이다. 이것이 최근 학교에서 강조하는 ‘회복적 생활지도’의 본질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강한 처벌’이 아니다. 잘못을 통해 성장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서 교육은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 물음에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엄정함과 회복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육 선진국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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