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치적 언어가 점점 거칠어지고, 사회는 빠른 편 가르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옳고 그름을 숙고하기보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즉 편 가르기를 먼저 요구받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인류의 보고인 오래된 책 즉, 고전 속에 있다. 동서양의 고전은 모두 혼란스러운 시대에 쓰였고, 그 공통의 질문은 하나였다. ‘권력과 인간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먼저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의 출발을 제도나 힘이 아닌 ‘덕’에서 찾는다. “덕으로 다스리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공자 ‘논어 위정편’)는 말은, 교육이 먼저 인간을 형성해야 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이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한 ‘철인정치’와 맞닿아 있다. 플라톤 역시 정의로운 국가는 지혜와 절제를 갖춘 이들이, 즉 철학자가 통치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두 사상 모두 정치의 타락은 교육의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맹자는 이 논의를 한층 더 급진적으로 밀고 나간다. 그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고 선언하며, 정치의 정당성을 백성의 삶에 둔다고 논했다(맹자 ‘진심장구 하’).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한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권력은 유지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서양은 만난다고 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시선에서는 차이가 드러난다. 맹자는 성선설을 통해 인간에게 선한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고 보았고,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악하므로 예와 법, 교육을 통해 교정해야 한다고 보았다(순자 ‘성악편’).
이 대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와도 닮았다. 플라톤이 이성의 지배를 강조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과 훈련을 통해 덕이 형성된다고 보았다(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는 교육이 단순한 깨우침이 아니라 반복과 실천의 과정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의 고전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공통의 경고를 보낸다. 정의 없는 권력은 폭력이며, 교육 없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전은 완성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기준을 세우는 법을 가르친다. ‘무엇이 인간다운가, 어떤 권력이 정당한가, 교육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학생 스스로 던지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미래 세대에게 고전을 가르친다는 것은 과거의 언어를 외우게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 팽배해 있는 극단의 주장 앞에서 멈춰 서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공자의 덕, 맹자의 존엄, 순자의 규율, 플라톤의 정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은 서로 긴장 속에 있으나, 그 긴장 자체가 민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유의 균형이라 할 것이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우리 교육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여기에 진정으로 고전이 필요하다. 고전은 낡은 책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는 질문의 저장고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고전을 건네는 이유는 그들이 어느 편에 서기 전에 먼저 인간과 사회를 숙고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교육이 이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때, 혼란의 시대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실에 고전 읽기를 생활화해 보자. 요즘은 많은 고전이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편집해 발간해 있다. 이른바 ‘청소년을 위한 고전’, ‘고전은 나의 힘’이라는 책으로 철학 읽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철학은 삶을 사는 지혜의 밑그림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의 두뇌를 가장 빠르게 성장·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철학이다.
고전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배움과 생각의 인과관계를 밝힌 문장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이 문장은 공자가 배움과 생각의 균형을 강조하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깊이 있는 배움은 깊이 있는 생각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공자의 교훈을 잘 나타내고 있다.
2026년에는 우리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고 우리의 교실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을 생활화하자. 이는 아직도 여전한 주입식 교육과 문제풀이 방식의 수업에 생명력을 더해 줄 것이다. 잠자는 학생이 많은 우리의 교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또 그것이 실질적으로 세상을 사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온고지신의 지혜와 ‘삶의 힘’을 기르는 고전 읽기가 더욱 소중하게 인식되고 교실의 교육 방식에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