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이분법'에 갇힌 우리 교육에 필요한 솔로몬의 지혜

  • 등록 2026.01.01 2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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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오늘날 우리의 교육정책은 첨예한 갈림길에 놓여 있고 늘 선택을 요구받는다. 예컨대, 교권 보호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학생 인권을 더 보호할 것인가? 평가를 강화해 학력을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줄여서 경쟁을 완화할 것인가? 돌봄의 책임을 학교에 더 맡길 것인가? 가정과 지역으로 돌릴 것인가?이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면 누구의 이익을 먼저 고려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육은 솔로몬의 지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 속 솔로몬 재판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타협이 아니라 본질을 보는 통찰이었다.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어머니에게 솔로몬왕은 아이를 둘로 나누자는 제안은 잔혹한 선택이 아니라, 진짜로 아이를 살리려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열왕기상』 3장).

 

우리의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인 공정성이나 여론의 압력보다, 아이의 삶을 실제로 살리는 선택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정책은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는 선택이어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교권 보호와 학생 인권의 충돌이다. 교사의 권위를 강화하면 학생 인권이 침해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학생 인권을 앞세우면 교실 질서가 무너진다는 비판이 맞선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조는 모든 조치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고 명시한다. 안정된 교실, 존중받는 교사, 예측 가능한 규칙은 학생의 이익과 분리될 수 없다.

 

솔로몬의 지혜는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의 존엄이 동시에 지켜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명확한 책임 규정, 전문적 중재 체계, 학교 밖 지원 인프라가 함께 설계되지 않는 교권 정책은 결국 아이를 둘로 나누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학력 격차와 평가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가 수준 평가를 강화하면 격차를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과, 평가를 줄여야 교육이 살아난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그러나 솔로몬의 관점은 질문을 바꾼다. 측정의 유무가 아니라, 측정 이후 무엇을 하는가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는 대규모 표준화 시험을 최소화하는 대신, 교사에게 평가 권한을 부여하고 학습 부진이 확인되면 즉각적인 맞춤 지원을 제공한다. 평가는 낙인이 아니라 지원의 출발점이 된다. 아이를 가르는 칼이 아니라, 살리는 신호로 평가를 사용하는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로운 선택인 것이다.

 

돌봄 정책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학교에 돌봄을 더 맡길 것인가, 교육 본연에 집중하게 할 것인가.

 

여기서도 단순한 역할 분담 논쟁은 해법이 아니다. 돌봄 공백을 방치하면 아이가 상처 입고, 학교에 모든 부담을 지우면 교육의 질이 무너진다. 솔로몬의 선택은 책임의 전가가 아니라 책임의 분담이다. 교육청–지자체–복지기관이 연결된 통합 체계 속에서 학교는 교육의 중심을 지키고, 국가는 돌봄의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동서양의 고전에서 지혜를 찾아보자. 동양 고전은 이 통찰을 다른 언어로 반복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는 제도 이전에 사람의 덕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위정편’). 교실에서 규칙만 강화하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질서는 오래가지 않는다. ‘맹자’는 더 분명하다. “백성이 가장 귀하다(民貴)”는 선언은 권력의 정당성을 아이의 삶에 두라는 요구이다(‘진심장구’). 반면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제도와 교육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혼란이 커진다고 경고한다(‘성악편’).

 

세 관점은 다르지만, 공통의 결론은 같다. 관계·존엄·규율의 균형 없이는 교육도 정치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 고전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를 공동체의 조화로 보며, 통치는 지혜를 갖춘 이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는 교육 실패가 곧 정치 실패로 이어진다는 경고와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제도의 반복으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평가와 규칙을 전면 부정하지 않되, 그것이 좋은 삶을 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맥락의 주장이다.

 

이처럼 솔로몬의 지혜는 타협의 기술이 아니라 본질을 향한 용기라 할 수 있다. 결국 아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교육정책의 성공은 여론조사나 속도에 있지 않다. 가장 소외되고 약한 아이의 하루가 실제로 나아졌는가에 있다. 정책 결정의 순간마다 이 질문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를 둘로 나누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이야말로 바로 오늘의 우리 교육이 필요로 하는 진짜 솔로몬의 지혜라 할 것이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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