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니?”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널리 회자된 대사로, 단순한 이별의 탄식에 그치지 않는다.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가치의 균열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의 절규이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가치가 무너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이 질문을 거듭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고 있다. 예전만큼 가족을 믿지 않고, 친구를 신뢰하지 않으며, 공동체보다 개인을 앞세운다. 정직함은 순진함으로, 배려는 손해 보는 일로 치부된다.
‘사랑이 변할 수 있니?’라는 질문은 이제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책임감은 왜 사라졌는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잃어버린 가치의 후유증
3년마다 OECD가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시민 의식과 공동체 의식 점수는 평균 이하 내지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특히 ‘타인을 도울 때 행복을 느낀다’는 문항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학생 비율은 2019년 OECD 평균 수준 73%에 훨씬 못 미치는 57% 정도에 그쳤다. 이 수치는 2025년 현재도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단순한 도덕 수업의 부족을 넘어서,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가치 체계’ 자체가 약화하고 있음의 증거가 된다.
또한, 교육부가 2022년에 실시한 전국 초·중·고교 대상 인성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 10명 중 4명이 ‘정직함보다 성공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한때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다수 청소년의 의식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정직’이나 ‘배려’ 같은 기본적인 윤리적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현실은 교육자로서 그 책임을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지식’이 아닌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AI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식은 언제든지 즉석에서 검색할 수 있고,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도 ‘양심’이나 ‘배려’, ‘공감’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가르칠 수는 없다. 결국 인간다움은 오직 인간에게서 배워야 하며, 교육은 이 ‘인간다움’을 전수하는 최후의 보루라 할 것이다.
핀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국가로 평가받지만, 그 비결은 시험 성적이 아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갈등 해결, 감정 표현, 타인 존중 등 ‘가치 중심’의 수업을 받는다. 우리의 실질적인 핵심적 교육 목표인 시험 문제를 잘 푸는 아이보다,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아이를 기르려는 교육 철학이 그 뿌리에 있다.
부모, 교사, 사회 모두가 함께해야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처음으로 ‘가치’를 배운다. 부모가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때 아이는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교사가 학생을 단순히 시험 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의 존엄한 존재로 대할 때 진짜 교육이 시작된다.
사회는 그 가치를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출세와 명예,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간 중심’, ‘사람 우선’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환경이 절실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췄을 때, 우리는 오히려 서로를 더 그리워하고, 마스크 너머의 눈빛 하나에 위로를 느끼며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그 혼란 속에서도 자원봉사에 나선 청년들, 의료진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박수는 우리 안에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가치’가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가치는 가르쳐야 유지된다
가치는 자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랑이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정직함도, 정의도, 공동체 정신도 가르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은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가 아닌,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철학으로서의 교육, 시험 점수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묻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니?’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묻기 전에, 우리 교육자들이 먼저 답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가르치는 진심이다’라고 말이다.
‘미래는 변화만이 상수다’라고 말한 미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처럼, 변화가 세상의 유일한 원리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아름다운 가치는 우리가 깊이 보존하는 것이 교육의 책임이자 사명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