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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나의 THE교육] 민주시민교육, 헌법을 차용해 교실에 들어온 정치

교육과정을 우회한 민주시민교육 정책, 왜 위험한가

 

더에듀 |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에게만 요구되는 윤리 규범이 아니라, 교사에 앞서 국가 권력이 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이기도 하다.

 

헌법이 교육과정을 중심에 두고,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이를 제도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과정은 정치적 유행과 정권의 가치 선택으로부터 교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헌법적 완충장치이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 계획과 2월 3일 발의된 전남·광주 통합특별법 제70조는, 이 완충장치를 우회한 채 특정 교육을 정책과 입법의 형식으로 학교에 직접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내용 자체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 ‘자율’과 ‘헌법적 가치’라는 언어를 차용해 교실에 들어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교육의 자율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이 예정한 교육의 작동 질서를 전도시킨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특정 정책이 없어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성을 가르치는 일은 교육의 본래 책무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가 선택한 특정 가치와 이념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교육과정을 건너뛴 채 정책과 법으로 주입하는 구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근본에서 흔든다.

 

교육은 정책의 구호나 관념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교육은 교육과정의 언어와, 교육의 핵심 기능인 학습을 통해 실현된다. 학생의 학습경험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 국가사업으로 투입되는 정책은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정책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우회하는 행정과 정치 개입에 불과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 통제 규범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제어하는 헌법 원칙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흔히 교사 개인의 정치적 발언이나 수업 태도를 통제하기 위한 원칙처럼 오해된다. 그러나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그런 협소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교사만을 향한 윤리 규범이 아니라 정치·행정·입법을 포함한 모든 국가 권력이 교육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설계하고 동원하지 말라는 헌법적 자기절제의 원칙이다.

 

교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면, 정치는 그보다 앞서 교육에 개입하지 않을 중립을 지켜야 한다.

 

헌법이 보호하려 한 것은 교사의 침묵이 아니라 ‘교육의 자율적 작동 구조’이다. 교육의 내용과 방향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헌법은 교육을 정치 권력의 직접 작용 영역에서 분리해 두었다. 이것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갖는 본래의 의미다.


그 완충장치가 바로 국가교육과정이다


이 헌법적 중립을 실제 제도로 구현한 장치가 국가교육과정이다. 국가교육과정은 단순한 행정 지침이 아니라 헌법의 교육 원칙을 집행하는 법적 고시 문서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임의로 설계하는 정책 문서가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가 관장해 공포하는 헌법적 성격의 공적 기준이다.

 

학교 교육과정을 건축물에 비유하면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에는 건물의 목적, 구조, 동선, 안전 기준이 모두 담겨 있다.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지면, 설계도를 먼저 고치고 사회적·전문적 검토를 거친 뒤에 공사를 진행한다. 설계도를 거치지 않은 증축은 불법이거나 최소한 위험하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왜,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지는 법적 문서인 교육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된다. 정치와 행정은 이 설계도를 존중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공개적 논의와 전문적 검증을 거쳐 설계도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에 기반한 교육의 작동 방식이다.

 


민주시민교육 정책의 핵심 문제는 ‘교육과정 우회’이다


문제는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이 이 설계도를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정책은 교육과정 개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교원 연수나 자료 개발 정책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의 직접 대상은 학교와 교실, 그리고 학생이다. 민주시민교육은 하나의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설정되었고, 정부는 이를 학교 현장에 체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순간 교육은 교육과정의 언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교육과정이 갖고 있던 목표–내용–방법–평가의 체계는 흐려지고, 그 자리를 정책 목표와 실행 계획, 성과 지표가 대신한다. 교실은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학습 공간이 아니라, 정책 필요에 따라 재배치되는 공간으로 바뀐다. 이것이 교육과정을 우회한 정책 교육이 갖는 구조적 위험이다.

 

특히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교육부 단독 사업을 넘어 헌법 관련 기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의 주요 권력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교육과정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기관의 언어로 기획된 프로그램이 학교와 교실을 직접 대상으로 삼는 순간, 학교는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라 정부 정책 사업의 수행 단위로 재정의된다.


교육과정 밖 ‘정책 교육’이 교실을 바꾸는 방식


이 변화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교실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된다.

 

민주시민교육이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외주화된 정책 사업의 형태로 학교에 투입되는 순간, 교사는 교육과정 문서보다 정책 지침과 운영 계획을 먼저 확인하게 된다.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 운영보다 특정 정책을 달고 재정이 함께 묶여 내려오는 사업이 우선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교실의 자율적 판단은 급격히 위축된다. 정책 패키지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충분한 재정을 앞세워 선택의 여지를 지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업 준비의 기준은 교과 목표가 아니라 정책이 제시한 핵심 가치와 권장 방향으로 이동한다. 교육과정이 아니라 예산이 교실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순간, 그 교육은 더 이상 자율적일 수 없다.

 

특히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에서 가장 심각한 대목은 ‘교수‧학습 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교수‧학습 원칙은 법의 대상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적 판단 영역에 속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는 교육과정의 문제지만,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교사의 전문성에 맡기도록 설계한 것이 헌법과 교육법 체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특정 교수‧학습 원칙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발상은,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 아니라, 교수‧학습의 영역까지 국가 권력이 직접 통제하겠다는 위험한 신호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서 토론 수업을 상상해 보자. 토의토론 수업이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책이 설정한 방향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변한다. 학생의 질문 역시 깊은 성찰의 계기라기보다 ‘적절한 참여인가’, ‘바람직한 태도인가’라는 기준으로 해석된다. 평가의 언어도 학습의 언어가 아니라 정책 이행의 언어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되면 교실은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 정책이 현장에서 구현되는 공간이 된다. 교사는 교육과정의 해석자가 아니라 정책 집행자가 되고, 학생은 사고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정책이 기대하는 특정한 시민상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점검받는 대상이 된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정책 설계는 교육과정에 따라 전문적으로 운영되어 온 학교와 교실의 자율적 판단 능력을 정부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식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범교과 주제를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패키지로 묶는 정치성


이미 국가 교육과정에는 안전·건강교육, 인성교육, 진로교육,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독도교육, 경제·금융교육, 환경·지속가능발전교육 등 10개의 범교과 주제가 포함돼 있다. 이 주제들은 각 교과의 성취기준 코드와 연계되어 관련 학습 주제로 계획·실행되며 교과와 학교 맥락에 따라 수업 시수를 조정해 운영하도록 설계돼 있다.

 

다시 말해 이들 주제는 이미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설계도 안에 제도적으로 포함돼 있으며 교육과정의 언어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민주시민교육 추진 계획은 이러한 서로 다른 범교과 주제들을 모두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다시 묶는다. 이는 단순한 명칭 정리나 체계화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제들을 선별해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각 주제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교육적 목적과 이론적 맥락은 희미해지고 목표는 교육과정의 목표가 아니라 정책 목표로, 내용은 학습 내용이 아니라 정책 메시지로, 평가는 학습의 성찰이 아니라 정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수단으로 순차적으로 전환된다.

 

교실은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학습 공간이 아니라, 정부가 설정한 시민상을 사회화하는 공간으로 재설계된다. 이것이 헌법적 가치로 포장된 가장 정치적인 교육이 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우회 구조는 추상적인 위험이 아니다. 이번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교육부 단독 사업을 넘어, 법무부·법제처·헌법재판연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 체계로 설계되었다. 헌법 관련 기관과 선거관리기관까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에 관여하는 이 구조는,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해야 할 학교를 정책 사업의 직접 대상 공간으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기관의 성격이나 참여 여부 자체가 아니다. 그럴듯한 이름의 국가 권력기관이 결합될수록,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까지 자동으로 보장될 것이라는 착시가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를 정책 명칭에 사용하는 것과,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을 실제로 존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이러한 설계는 ‘헌법적 가치’라는 외피가 씌워질수록, 교육과정이라는 헌법적 완충장치가 더 쉽게 무력화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교육과정 위계와 발달 연속성의 정면 침해


이 정책은 교육과정 위계와도 정합하지 않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초등교육의 목표는 기본 학습 능력과 학습 습관, 그리고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있다. 민주시민의 자질과 소양은 중학교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이를 토대로 한 세계시민교육은 고등학교 단계의 목표로 설정돼 있다. 이러한 구조가 국가 교육과정이 아동의 발달단계를 고려해 법적으로 설계한 학습의 연속성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이 위계와 연속성을 무시한 채, 초등학교 단계부터 특정 가치와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을 정책 사업의 형태로 주입한다. 이는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형해화하는 방식이다. 법으로 고시된 교육과정이 존재함에도, 정권이 선택한 가치를 따로 떼어내 정책으로 설계하는 순간, 교육과정은 교육의 중심 문서가 아니라 형식적 장식물로 전락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 제70조의 본질: ‘자율’이 아닌 법제화된 정책 집행


처음 원안이었던 「가칭 광주전남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정책의 위험성은 2월 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162명이 참여해 발의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70조에서 이미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 조항은 민주시민교육을 ‘교육 운영의 자율성’이라는 장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자율과 거리가 멀다. 교육감에게 민주시민교육의 체계적 실시를 법적 의무로 부과하고, 4년 단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 수립, 정책 심의 기구 설치, 학교 단위 계획 수립까지를 모두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이란 국가 권력이 한 발 물러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특별법이라는 가장 강력한 입법 수단을 통해 국가가 교육 내용의 설계와 집행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다. 교육과정을 우회한 정책이, 역설적으로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법제화되어 교육과정 위에 놓이는 순간, 이는 자율의 확대가 아니라 자율의 해체에 가깝다.


반복되는 구조, 그리고 헌법의 역설


이 구조는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보수 정권은 인성교육을 「인성교육진흥법」으로 끌어올렸다. 진보 정권으로 바뀌자 이름만 달라졌다. 인성교육 대신 민주시민교육이 등장했을 뿐,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교육을 다루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교육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특정 교육을 정책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법과 특례 조항으로 제도화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이냐 민주시민교육이냐가 아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우회해 국가가 선택한 특정 가치와 이념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입하는 구조이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교실은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정권마다 색이 바뀌는 정치적 실험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육이 정책 사업으로 관리되는 순간, 학교는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사업 횟수와 성과 지표로 관리되는 행정 단위로 전락한다. 이는 교육의 실패 이전에, 교육을 행정과 통치의 하위 수단으로 취급해 온 국가 운영 방식의 실패이다.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정책과 전남·광주 통합특별법 제70조(민주시민교육의 진흥에 관한 특례)는,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해야 할 교육 질서를 정책과 입법의 형식으로 우회한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교육의 자율을 확장하는 조치가 아니라, 헌법이 예정한 교육의 작동 질서를 거꾸로 전도시키는 개입이다. 헌법의 이름을 내세운 이러한 정책 방식,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제도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교육은 이벤트가 아니며, 사업 단위로 관리되는 정책 실적도 아니다. 교육의 질은 일회성 프로그램과 외주화된 사업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사의 전문성과 교수·학습의 축적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정책과 교원정책 어디에서도, 교단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이겠다는 국가의 책임 있는 설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교사와 학생은 정부가 핀셋으로 규정한 특정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연수 대상자이자 집행자로만 위치 시키고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말하려면, 교사를 통제할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물러나야 한다. 교육을 정치 이념의 사회화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거두고, 교육과정이라는 헌법적 경계를 존중하며 교육의 설계권을 정치와 행정으로부터 분리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용기이다. 학교의 본질을 지키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학생의 학습경험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 사업 형태로 투입되는 민주시민교육정책은,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정책이 아니라 교육을 우회하는 행정이자 분명한 정치 개입이다.

 

교육과정의 언어로 구현되지 않은 채 외주화된 사업 형태로 교실에 직접 투입되고, 학생의 학습을 바꾸지 못하는 교육정책은 정책일 수는 있어도 교육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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