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최근 서울대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인 이혜정 교수의 ‘한일 IB 역사 공동수업이 보여준 미래’라는 기고(서울경제, 2025.11.29.)는 향후 한일 관계와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제시해 주었다.
여기에는 11월 15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IB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 제주 표선고, 일본 나가노 요가다 고교 학생들이 화상으로 역사 공동수업을 진행했던 사례를 전달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사실은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교과서 기술 방식, 강조점, 서술 배경을 직접 비교·질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그간 교실에서 접하지 못했던 ‘타자의 시선’을 생생하게 경험한 것이었다. 짧은 대화와 토론이었지만 그 안에는 정답을 가르치는 역사 수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배움의 형식이 존재했다.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에서 식민지 지배를 축소하거나 모호하게 기술한 대목에 의문을 제기했고, 일본 학생들은 한국의 역사교육이 일제강점기 중심 서술로 협소하게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때로는 감정이 오가는 순간도 있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외교의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교육의 현실이 드러났다. 서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이렇게 다르게 쓰였을까?”, “앞으로 우리 세대는 어떤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과정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상대의 인식 구조와 교육 환경을 이해하는 학습 자체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경험은 단지 한 차례의 교류 수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 현장은 외교나 정치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다르다. 국가가 아닌 ‘학생’이라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말하고 듣는 공간이며, 상대를 설득하거나 포용하는 방식도 훨씬 자연스럽다.
교실 대화가 지닌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른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아이들이 해결한다는 말이 결코 비유만은 아니다. 실제로 여러 학교 현장에서 비슷한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경남의 한 중학교는 일본 시즈오카현의 학교와 3년째 온라인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역사뿐만 아니라 환경·노동·청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공동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르면 위험하다’가 아니라 ‘다름은 탐구의 출발점’이라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또 어느 고교에서는 양국 학생들이 각자 지역의 기억 장소(평화박물관, 전쟁 유적지, 산업근대화 공간 등)를 탐방한 뒤 서로의 시각을 영상으로 교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과거사 논쟁이라는 주제조차 일상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앞으로 한국 교육은 이러한 교류 모델을 단발성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IB 방식의 탐구 중심 수업 모델을 발전시켜 ‘비판적 비교 교육’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동일 주제에 대해 각국의 사료·교과서·언론 보도를 비교하는 활동은 학생들의 인식 폭을 넓히고, 민감한 주제도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할 것이다.
둘째, 학교 간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제도화해야 한다. 현재는 개별 교사나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프로그램이 성립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교육청 또는 국가 차원의 교류 플랫폼이 마련되어야 지속성과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생 주도형 대화 구조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와 연구자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고, 주제 선정·질문 구성·협업 방식 등은 학생 스스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토론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한일 관계는 흔히 정치와 외교의 문제로만 여겨지지만, 미래를 살아갈 이들은 지금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다. 이번 공동수업에서 드러난 것처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질문을 통해 관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청소년들의 태도야말로 미래 외교의 자산이라 할 것이다.
교실 속 50분 대화가 지속되면 학생들이 만들어 갈 10년, 20년 후의 한일 관계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교육의 사명은 지식 전달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이미 조금씩 모습을 바꾸고 있음에 희망을 간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