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공부를 꼭 해야 할까?"

  • 등록 2026.01.12 10: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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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공부 못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을까?

 

학교라는 시공간에서 공부는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아이들은 공부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다. 그것은 교사, 친구,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환경에서 작동되는 매커니즘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공부는 하나의 권력이 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언어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신뢰를 받기 마련이고, 학교에서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공부와 성적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내적 구조이자 권력인 것 같다.

 

유럽 대륙 철학에서 포스트-구조주의 사조는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구조와 권력에 저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저항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아는 진공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수많은 문화적, 제도적, 법적,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구조와 담론 속에서 형성된다.

 

완벽하게 자율적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아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권력, 구조, 담론에 저항하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 되고 만다. 자아의 일부가 된 구조와 권력에 저항을 하는 것은 나에 대해 내가 저항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구조주의는 불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저항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한 저항을 멈추는 순간 개개인의 존엄과 유일성은 사라진다. 거대한 구조의 일부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알랭 바디우가 말했듯, 진리는 공고했던 체계와 구조에 구멍을 내고 새로움을 가져오는 행위 그 자체이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한 철학적 토론은 공부와 성적라는 강력한 권력망 위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학생은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 공부는 학교 성적을 통해 증명된다는 담론과 권력에 작은 틈이라도 내보려는 시도였다.

 

유진이가 철학 시간에 토론 질문으로 제안한 것은 ‘꼭 공부를 해야 할까?’였다. 그러한 질문의 배경 속에서는 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는 회한과 자조가 섞여 있었다.

 

민성: 공부를 못해도 성격이 좋으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어요. 학교생활에 큰 문 제가 없어요. 솔직히 공부만 하고 성격이 안 좋은 애들이 더 문제예요.

유진: 졸업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

지성: 모두가 다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어.

주윤: 공부를 잘해야 직장을 구하지. 굶어 죽을래?

아름: 아냐. 공부를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공부 못한다고 굶어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냐?

나: 아름아. 예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승우: 배달이요.

지성: 막노동도 있어요.

주윤: 다 힘든 직업들 뿐이네. 뭐...

준이: 화가나 음악가, 운동선수 같은 것도 있지. 아!! 유튜버도 있어요. 돈도 많이 벌어요.

 

아이들에게 공부는 직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공부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 지속해서 주입된 생각일 것이다.

 

그 때문에 직업 세계의 불안정은 성적 경쟁을 부추기는 내적 동력이 된다. 희소해진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공부와 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퍼진 불안감은 공부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까지도 멈추게 만든다.

 

토론 초반에 보인 아이들의 반응은 단적으로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승우, 지성, 준이는 배달이나 유튜버 등을 예로 들면서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직업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부라는 의미에 대해 좀 더 파고들고 싶었다.

 

나: 이 직업들은 왜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수진: 학교 성적을 보지 않잖아요. 수학이나 영어 같은 것도 필요 없고요.

나: 배달을 하려면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까?

예성: 음...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나: 왜?

예성: 일단 운전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집도 찾을 수 있어야 하니깐. 어느 정도의 공 부는 필요해요.

수진: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은 공부가 필요하죠. 한글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굳이 잘할 필요는 있냐는 거예요. 모두 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유진: 그래도 무언가를 잘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배달을 하려면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까?”라고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공부라는 행위와 학교 성적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를 학교 성적이라는 잣대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해체시키고 싶었다. 그것은 수진이의 말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은 공부가 필요하죠’라는 말이 참 고마웠다. 학교 성적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린 공부의 본질에 대해 토론이 가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특정한 의도를 가진 나의 질문과 도전이 모든 수업 시간에 성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그러한 실패의 틈새를 가득 채워주는 아이들의 새로운 언어들로 인해 나의 실패는 아이들의 성공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준이: 당연히 어떤 일을 잘하려면 노력을 해야지.

예성: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요. 화가가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공부죠.

나: 그러면 공부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주윤: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요.

유진: 저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라는 말이 좋은 것 같아요.

승우: 오!! 멋진 것 같아요.

민성: 그럼 게임에서 레벨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공부야?

예성: 그럼 공부지!!

아름: 예성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거네!

 

주윤이는 공부가 현재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멋진 정의였다. 이제 아이들은 공부를 노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 머릿 속에는 철학자 듀이가 떠올랐다. 듀이는 교육의 목적을 성장이라고 말했다. 교육이라는 단어를 공부로 바꾸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듀이에게 성장은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말한 더 나아지려는 노력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의 방향성이다. 민성이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문제 삼았다. “게임에서 레벨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공부야?”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성장의 방향성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 게임을 잘하는 것도 더 나아지려는 노력일까?

예성: 그럼요. 게임 실력을 높이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프로게이머를 보세 요.

아름: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유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나: 그럼 도둑이 도둑질을 더 잘하게 되는 것도 나아지는 걸까?

지성: 도둑질을 잘하면 결국 감옥에 가잖아요. 나아지는 것이 없어요.

수진: 그렇게 생각하면 게임을 잘해도 프로게이머가 아니면 시간 낭비일 수 있어요.

나: 그럼?

수진: 좋은 방향으로 나아져야 해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승우: 아!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야?

수진: 맞아.

 

더 나아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는 암묵적으로 가치가 개입된다. 더 나아진다는 것은 가치평가가 전제된 명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가진 탁월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듀이는 가능성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수진이의 말처럼 게임을 잘하는 것이 프로게이머가 목표가 아니라면 시간 낭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흥미나 호기심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수진이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전까지 더 나아진다는 말은 개인의 가능성, 역량, 가치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진이는 그것을 공공의 이익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결국 공부는 성장을 위한 것이며, 이는 공공선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나 역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토론의 시작을 생각해 보면 50분 동안 정말 멋진 여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의 막바지에 이르자 아이들은 ‘공부를 꼭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조금 더 발전시켰다.

 

 

수진: 그럼 누구나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예요?

나: 그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잘하는 것의 기준이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주윤: 학교 성적이 아닌 것은 알겠어요. 학교 성적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에요.

민성: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각자 원하는 삶도 다 다르니까요.

유진: 공부를 다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지성: 공부는 삶을 잘살고 있다는 증거 같은 게 아닐까요?

나: 증거?

지성: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공부니까요.

예성: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어떤 공부를 돼? 난 이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갑작스러운 선택이었지만, 내가 공립 대안학교에 오게 된 것은 아이들과 진짜 공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성적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고 싶었다.

 

성적이라는 기표를 삭제시켰을 때, 아이들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에 대해서 참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토론에서 지성이가 나에게 그 답을 준 것 같았다.

 

“공부는 삶을 잘살고 있다는 증거 같은 게 아닐까요?”

 

이 말이 오랫동안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다. 공부는 진부하고 나태하며 반복적인 삶을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교사로 임용된 후 반복된 수업과 행정 업무로 지쳐갈 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어린이철학과의 만남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그 일이 미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직업을 가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이었다.

 

교실 속에서 토론이 진전될수록 공부라는 기표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권력의 그물망은 서서히 해체되고, 비어있는 공간 속으로 새로운 사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 한 번의 토론으로 아이들의 자아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 공부를 둘러싼 권력망이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불가능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리다가 말했듯이 불가능성은 가능성의 조건이자 언젠가 도래할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지치지 않고 아이들과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위해 만나고 토론하는 것이다.

 

박상욱 울산고운중 철학교사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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