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교권침해 보험금’ 급증의 경고

  • 등록 2026.04.13 19: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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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선생님, 저 교권침해 보험 하나 들어야 할까요?”

 

이 말은 최근 각 학교의 교무실에서 교사들 상호 간에 듣거나 말하는 고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이제 갓 임용된 신규 교사부터 정년을 앞둔 베테랑 교사까지 걸쳐 있다. 어찌하여 교사들의 대화 주제가 수업 혁신이나 학생 상담이 아닌 ‘교권침해 보험’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인가?

 

 

이 서글픈 현상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최근 보험업계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32건이었던 교권침해 보험금 지급 건수는 2025년 168건으로 불과 1년 만에 27%나 급증했다. 교권침해 보험 가입자 수도 2020년 6115명에서 2025년 9316명으로 5년 새 36%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교권보호 5법이 시행되며 제도적 안전망이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여전히 사비를 들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 통계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교권 침해 대상이 저연차 교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교단을 지키며 온갖 풍파를 겪어온 중견 교사들조차 보험금 지급 대상에 대거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교실 붕괴가 특정 개인의 지도력 문제가 아닌 ‘시스템 전체의 침몰’임을 방증한다.

 

특히나 청운의 꿈을 안고 교직에 입문한 ​저연차 교사의 절망은 심각한 상태이다. 열정 하나로 교단에 선 신규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 앞에 무너지고 있다.

 

그뿐이랴. ​산전수전 다 겪은 중견 교사들의 회의도 심상치 않다. “옛날 같으면 꾸중 한 마디로 끝날 일이 이제는 법적 공방이 된다”며 허탈해하는 중견 교사들의 뒷모습은 교직 사회의 사기를 꺾는 결정타가 되었다.

 

교권침해 ​보험 가입 폭증은 말한다. 교사들이 더 이상 국가나 제도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는 ‘신뢰의 파산 선고’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왜 ‘교권보호 5법’은 교실의 비명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며, 사후 처방이다. 교권보호 5법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보험금 지급이 늘어난 이유는, ‘법적 처벌’보다 ‘정서적 소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개 법의 테두리 바깥, 즉 ‘무례함’과 ‘불통’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지했을 때 쏟아지는 폭언, 심야 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학부모의 항의 전화는 법으로 다스리기엔 너무나 일상적이고 집요하다.

 

교사들은 법적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 겪는 인격적 모멸감과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 보험금을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아이들이 마음껏 질문하고, 실수나 실패하며, 때로는 거친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배우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를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로 상정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환경에서는 그 어떤 소기의 교육적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

 

교사가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 형식적 친절만을 베풀고, 학생의 잘못을 보고도 방관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린 오늘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교육은 인간과 인간의 깊은 만남이며, 이 만남의 기초는 상호 간의 신뢰에 기반한다. 하지만 보험금이 오가는 교실은 이미 교육의 기능을 상실한 공허한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획기적으로 바꿀 방법은 무엇인가? 보험을 넘어 ‘공동체 리터러시’로 ​교권 침해 보험금 지급을 줄이고 교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보다 강한 ‘문화적 정화’가 필요하다. ​

 

첫째, 학교 민원 창구의 단일화와 ‘대기 시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로 쏟아지는 민원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의 통합 민원 시스템을 통해 정제된 소통만 허용하고, 감정적인 폭발이 잦아들 수 있는 완충제를 강제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둘째, ‘내 새끼 지상주의’에 물든 학부모 교육의 의무화와 연대이다.

 

교권을 존중하는 것이 곧 내 아이의 학습권을 지키는 일임을 깨닫게 하는 학부모 시민성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와 연계한 ‘격대 교육’과 같이 조부모 세대의 지혜를 빌려 가정 내 인성 교육을 복원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셋째, 교원 치유를 위한 ‘공적 공제 시스템’ 강화이다.

 

교사들이 사보험에 의존하게 두지 말고, 국가가 주도하는 교원 공제회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단순한 보상금을 넘어 심리 상담, 법적 대리인 상주, 치유 휴가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여 교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성경에서 ​부활한 예수가 토마스에게 옆구리 상처를 보여주며 확고한 믿음을 주었듯, 우리 사회도 교사들의 상처 입은 가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증가한 보험금 수치는 교사들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 즉, 일종의 SOS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떤 보험에 가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를 믿을 것인가”로 말이다.

 

교사가 보험 증권을 품에 안고 교단에 서는 비극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 교권은 교사의 권력이 아니라,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이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교육 수장은 바로 이 무너진 신뢰의 방벽을 다시 쌓아 올릴 진정한 교육의 파수꾼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보험금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밝은 미소와 학부모의 따뜻한 지지 속에서 피어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가슴에 새겨야 할 때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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