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매년 새로운 교육정책이 제안되고 반영된다. 아이들을 위함이라는 명분이 붙지만 학교현장에 적합한 것인지에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사회적 이슈에 따라 급조된 정책들은 도대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더에듀>는 ‘중등교사노동조합’ 조합원 교사들의 의견을 듣는 연재 ‘중등교사 발언대’를 통해, 현장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
사교육비 절감 해법으로 학교 시험 기출문제의 전면 공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논지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기출문제가 학원이나 유료 사이트를 통해서만 유통되는 현실은 분명 불공정하며, 정보 격차가 입시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교실 현실과 만나는 지점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다. 기출문제의 전면 공개가 교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교사들은 이미 촘촘한 출제 매뉴얼과 지침 속에서 평가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전년도 기출문제를 참고하지 말라’는 요구는 교과의 핵심 내용, 교육과정상 반복 출제가 당연한 개념조차 출제를 망설이게 만든다.
동일 단원의 핵심 개념은 해마다 다시 묻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기출이 공개되는 순간 ‘유사문항’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원과 시비의 대상이 된다. 결국 교사는 핵심을 묻기보다 문제 삼기 어려운 문항을 찾게 되고, 동시에 변별을 요구받으면서 일부 문항은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지엽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출제 역량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험문제 하나하나가 민원과 소송의 표적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기출문제가 전면 공개되면 문항 하나하나에 대한 검증과 문제 제기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필평가 출제 시기가 되면 교사들이 느끼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이나 정교한 채점 기준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갈등의 본질을 간과한 주장이다. 지금의 민원은 평가의 개선을 위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책임을 묻기 위한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령 교사가 정당성을 인정받더라도,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이르는 분쟁 과정은 교사에게 심각한 정신적 부담을 남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이미 처벌로 작동하는 구조이다.
변별을 우선하는 입시 체제가 유지되는 한, 기출문제 공개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 평가가 입시에 종속된 구조에서 공개된 기출문제는 사교육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더 정교한 사교육 상품으로 재가공될 가능성이 크다. 공개는 확대하지만 경쟁의 강도는 낮아지지 않는다.
이 모든 현상의 뿌리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학벌에 따라 양극화된 노동시장,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어려운 사회 구조이다. 시험 한 문제에 인생의 궤적이 달라질 수 있는 현실에서, 그 책임과 위험을 교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담론은 공교육을 위한 해법이라기보다 교실의 현실을 외면한 채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에 가깝다.
기출문제 공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려는 방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 평가를 둘러싼 민원과 소송으로부터 교육활동을 지켜낼 장치 없이, 그리고 시험 한 문제에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는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기출 공개만을 확대하는 것은 교사에게 갑옷 없이 전장에 나서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교육비를 줄이고자 한다면, 기출문제가 아니라 시험 한 문제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