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사람의 축하가 이어졌다. 이 소설을 계기로 제주 4.3 사건의 진실과 이로 인한 아픔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무엇보다 유의미하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질문은 우리 역사교육에 대한 많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화두와 그 뜻이 맞닿아 있다.
역사교육은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과정이어야
역사교육은 단순히 지난날의 사실을 연도별로 암기하는 과정이 아니어야 한다. 역사교육의 본질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진단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과정이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국가가 정해준 단 하나의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료를 찾고, 논쟁적 사실을 분석하며,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는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교육이 절실하다.
역사 문해력은 정보의 진위와 출처를 확인하고, 저자의 의도와 저술 맥락을 파악하며, 자료 간 비교와 교차 검토를 통해 합리적 판단과 성찰에 이르게 하는 역량으로, 역사학의 연구 과정과 유사한 ‘역사 읽기’와 ‘역사 쓰기’ 속에서 길러진다.
학생들이 제주 4.3과 같은 근현대사의 비극을 역사가의 시선을 통해 주체적으로 마주하며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 우리 역사교육은 살아있는 배움으로 전환되고 ‘역사의 주체’를 바로세울 수 있다. 역사 문해력을 갖춘 학생은 이후 어떠한 사회문제를 접할 때 누군가의 주장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암기 위주의 ‘죽은 지식’과 경직된 제도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간 방대한 분량의 교육과정을 제한된 시간에 전달하는 데 치중하며 몇 가지 구조적 한계를 보여 왔다.
먼저 시험을 위한 암기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나 또한 학생 때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나 많은 제도와 연도를 무조건 현실과 별다른 맥락 없이 줄줄이 외우고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방대한 고대사 위주인 국가 교육과정으로 인해 교실은 시대순 암기와 사건 나열 위주로 운영되며, 역사적 사건이 현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논쟁적 주제에 대한 회피이다. 근현대사 사건 등 민감한 주제들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교실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 배워야 할 갈등을 마주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민주시민으로서의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사가 학생의 특성과 지역의 역사를 반영해 수업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과정 재구성의 자율권이 단단한 국가 교육과정과 한 줄 세우기식 시험으로 인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교육을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릴 수 있는 삶과 연계된 교육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의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역사가’ 교육 통해 역사 문해력 갖춘 학생으로 성장해야
4월은 제주 4.3뿐 아니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날들이 이어지는 ‘잔인한’ 달이다.
4월 9일은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1974년 4월 8일 사형선고 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9일 오전에 8명 전원이 사형당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재심 끝에 전원 무죄로 바로잡혔다. 4월 19일은 많은 학생이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4.19 혁명일이다.
제주 4.3 기념일을 맞아 근현대사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의 장이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제안한다.
첫째, ‘나도 역사가’ 프로젝트를 전면 확대하자. 학생들이 실제 사료를 분석하며 역사가와 같은 방식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 수업과 토론 수업을 통해, 정답이 아닌 ‘타당한 근거’를 찾아가는 사고의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둘째, 민주시민교육 관점의 역사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 역사를 독립된 연대기가 아닌 사회 교과와 연계된 통합교과 수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의 인권, 평화, 민주주의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현재성 탐구를 생활화해야 한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생활 속에 식민지 역사의 잔재가 법, 문화, 언어 등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은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넷째,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권 보장과 평가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가 지역사와 학생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하고, 역사적 추론 능력을 측정하는 서·논술형 평가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중학교 단계부터 실질적인 절대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평가 제도와 고등학교 입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군림에서 지원으로, 교육청은 학교 현장을 돕는 조력자 돼야
역사교육은 과거를 바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제공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교육청은 과거의 지식을 강요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역사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청부터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본청의 권한을 학교 현장으로 이양하여 학교의 자율성을 지원해야 한다. 교사가 교육활동과 학생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백이 있는 학교문화를 지원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교실에서 ‘역사가처럼 생각하기’라는 살아있는 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주 4.3의 아픔과 작별하지 않고 그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은 우리 아이들을 실천적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학교가 탐구하는 교실, 토론이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 될 때 백년지대계의 참뜻은 실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