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아프면 쉬셔야죠.”
학교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 말이 이상하게도 현실이라기보다 예의처럼 들릴 때가 많다.
정작 아프다고 쉬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실제로 교사들은 몸이 아플 때도 병원 진료나 휴식보다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담임을 맡고 있으면 더 그렇다. 오늘 아이들은 누가 보지, 학부모 안내는 누가 하지, 수업 자료는 어떻게 넘기지, 혹시 동료 선생님께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병가를 내는 것이 권리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현장에서는 자꾸만 미안한 일이 된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아픈 몸으로 버틴다. 하루쯤은 괜찮겠지, 오늘만 넘기면 되겠지, 이 일만 끝내고 쉬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래서였을까. 부천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일하던 젊은 교사가 독감과 고열 속에서도 쉬지 못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충격과 함께 아주 깊은 낯익음을 느꼈다.
그 선생님의 고통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교실로 가야 한다고 느끼는 그 막막한 마음이 얼마나 익숙한 감정인지, 많은 교사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그래서 더 남의 일 같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어떤 말도 가볍게 꺼낼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을 그저 한 개인의 불운한 비극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종종 교사를 ‘헌신하는 존재’로 말한다. 물론 교육에는 헌신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향한 책임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책임감이 교사의 건강과 생명을 잠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의 실패다. 교사의 선의와 책임감에 기대어 굴러가는 시스템은 언젠가 반드시 사람을 다치게 한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 사실을 너무 아프게 보여줬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B형 독감 확진 이후에도 출근을 이어갔고, 고열 속에서도 즉시 조퇴하지 못한 정황이 확인됐다. 사망 직전의 사직 처리 문제까지 수사 대상이 된 상황은 이 사건이 단지 안타까운 개인사로 끝날 수 없는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왜 아픈 교사가 쉬지 못했는가. 이 물음은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대체인력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병가 사용은 제도보다 눈치에 좌우되며, 감염병 대응 역시 ‘권고’ 수준에 머무는 현실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결국 이는 현장의 헌신으로 덮어온 구조적 취약성이 한 젊은 교사의 생명 앞에서 무너져 내린 사건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생명존중을 가르친다. 몸과 마음을 돌보라고 말하고, 아픈 사람을 배려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현장의 교사는 아파도 쉬기 어렵고, 병가를 내는 순간 다른 누군가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사람처럼 느껴야 한다면, 그 교육은 스스로의 가르침과 충돌하게 된다.
생명존중은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교사의 건강과 생명도 제도적으로 보호될 때 비로소 학교가 가르치는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복지의 주변부가 아니라 교육정책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교사가 인간답게 쉬지 못하는 학교에서 교육의 질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학생의 안전도, 학습권도 결국 교사의 안정적인 근무 여건 위에서 유지된다. 교사의 건강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경쟁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떠받치는 관계라는 사실을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사립유치원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시 묻게 한다. 사립이라는 이유로 병가, 대체인력, 감염병 대응, 인사 처리와 같은 기본 질서가 느슨하게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자율성은 책임 위에서만 정당하다. 최소한의 공적 관리와 감독이 작동하지 않을 때, 그 피해는 교사 개인과 유가족,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사립유치원도 교육기관인 이상, 교사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기준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이제 필요한 것은 추모를 넘어선 제도적 응답이다. 감염병 상황에서 교사의 병가 사용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대체인력 체계는 명목상 제도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즉시 가동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비돼야 한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 역시 권고와 지도에 그치지 않고 책임 있는 점검 체계로 강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 당국은 교사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교육의 부수적 조건이 아니라 공교육 유지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번 일을 떠올릴 때마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가 정말 아이들만 돌보는 곳이어도 되는가. 교사를 돌보지 못하는 학교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가. 생명을 가르치는 공간이 생명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그곳을 과연 교육의 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픈 교사가 쉬지 못하는 곳은 결코 정상적인 교육 현장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안심할 수 없다.
교육의 본질 회복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교사가 아프면 쉴 수 있고, 학교가 그 공백을 제도로 감당할 수 있으며, 누구도 생명을 담보로 책임감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병가를 내는 일이 미안한 교실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우리는 교사의 책임감이 아니라 제도의 책임으로 학교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교실도 지켜진다. 그리고 그래야만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말들이 조금 덜 부끄러워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