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3월의 교무실은 전쟁터이다. 하지만 그 전쟁의 무기는 교재나 수업 자료가 아닌 ‘한글 문서’이다.
매년 반복되는 ‘교수학습 및 평가 운영 계획서’ 작성이 올해도 어김없이 교사들을 덮쳤다. 달라진 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문서내용의 순서와 행정 명칭뿐이다. 양식이 바뀌었다.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열(column) 하나가 추가됐고, 항목 순서가 조금 달라졌으며, 기재 방식에 관한 안내문이 수십 페이지 분량으로 첨부돼 있었다.
현장 교사들은 안다. 이 작업이 실제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최근 3년치 문서만 펼쳐봐도,15쪽 내외의 분량이 주는 압박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해마다 바뀌고, 수정하는 교사는 지친다
이제 최근 3년치를 차례대로 하나씩 비교해 보자.
2024년, 2025년, 2026년 최근 3년의 평가 운영 계획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식의 뼈대인 차례는 바꾸었지만 동일하다.
평가 유형, 반영 비율, 횟수·영역, 평가 방법. 수행평가 세부 계획의 성취기준, 수행 과제, 흐름(단계), 평가요소(배점). 이 구조는 3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차례를 바꾸어 일을 시킨다. 문서편집을 교사의 주업무로 만들 의도인가?
서식을 바꾸면 평가가 나아지는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힌다.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관성 확보,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운영이라는 목표에 이의가 없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성취평가제를 강화하면서 ‘성취도’ 항목이 추가된 배경도 이해한다.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지필평가’를 ‘정기시험’으로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시험의 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수행과제 흐름(단계)’이라는 칸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교사가 과정 중심 평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서식 변경은 평가 개선의 수단이 아니라, 관리되고 있다는 외형을 만들어 내는 행정적 장치에 가깝다.
이 변경을 반영하기 위해 교사는 지난해 작성한 문서를 열고, 달라진 항목을 찾아내고, 수정하고, 교내 검토를 거쳐 다시 제출한다. 가르치는 단원도, 성취기준도, 평가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행정 언어만 교체된 서류를 새로 작성하는 일에 3월 한 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뀐 형식에 맞춰 수정하는 교사는 ‘열 받고 업무 스트레스’ 설상가상
위에 담은 2024년, 2025년, 2026년 최근 3년의 평가 운영 계획서의 서식은 동일하다. 평가 유형, 반영 비율, 횟수·영역, 평가 방법. 수행평가 세부 계획의 성취기준, 수행 과제, 흐름(단계), 평가요소(배점). 이 구조는 3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세부 명칭이다. ‘지필평가’가 ‘정기시험’으로, ‘1차(중간고사)’가 ‘중간시험’으로, ‘2차(기말고사)’가 ‘기말시험’으로 바뀌었다. 2026년 양식에는 ‘성취도’ 열 하나가 추가됐다.
이 변경을 반영하기 위해 교사는 지난해 작성한 문서를 열고, 달라진 항목을 찾아내고, 수정하고, 교내 검토를 거쳐 재제출한다. 내용이 실질적으로 달라졌다면 이 수고가 의미 있다. 하지만 가르치는 단원도, 성취기준도, 평가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행정 언어만 교체된 서류를 다시 작성하는 일에 교사는 3월 한 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위에 제시된 ‘3.평가개요’를 보라. ‘지필평가’는 ‘정기시험’으로, ‘1차(중간고사)는 중간시험’으로, ‘2차(기말고사)는 기말시험’으로 바뀌었다.
학기초 담임업무와 행정업무의 홍수 속에서 교사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교사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에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5.수행평가 세부 계획’도 셀을 넣었다 뺐다. 위아래 셀의 차례를 바꾼다. ‘교육과정성취기준’을 ‘성취기준’으로 ‘수행과제’를 ‘수행과제흐름(단계)’로. ‘AI활용’은 추가됐다.
끝으로 보게 될 ‘교수학습-평가 방법’은 한 학기 전 과정을 주간 단위로 정리하는 표이다. 역시나 셀을 부분적으로 바꾸고 각 셀에 입력될 사항의 셀의 위치가 바뀌었다. 앞서 언급한 평가 명칭의 변경을 저 방대한 한 학기 분량의 셀에서 하나하나 찾아서 바꾸어야 한다. 또한 지난해에 입력한 것을 올해에는 모두 삭제해야 한다.
교사들은 이 ‘틀 맞추기’를 위해 작년 문서를 열어 일일이 항목을 수정하고, 내부 검토와 재수정을 반복하며 3월 한 달을 보낸다.
‘왜 셀을 옮겨서, 또는 같은 것인데 글자를 바꾸어 입력하게 지시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손가락과 눈과 두뇌를 혹사시키기 위해, 일거리를 일부러 만들기 위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학생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책임져야 할 교사가 정작 문서 편집자로 전락한 셈이다.
이런 일들이 필자의 교직평생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마다 되풀이된다.
문서 행정이 만들어 내는 착시
교육청은 서식 변경을 통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치’를 꾀한다고 하지만, 현장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명칭을 바꾼다고 시험의 질이 높아지거나 교사의 과정 중심 평가 이해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방대한 분량의 계획서는 ‘잘 관리되고 있다’는 행정적 착시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서식을 바꾸면 평가가 실제로 개선되는가? 지필평가를 정기시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시험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수행 과제 흐름(단계)’이라는 칸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교사가 과정 중심 평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현장 교사들이 이 문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교육청은 알고 있는가? 서식을 형식적으로 채우고 제출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작성에 지쳐 정작 수업 준비에 쓸 시간이 줄어든다.
문서 행정은 ‘관리되고 있다’는 착시를 만들어 낸다. 교육청은 서식을 통해 교사의 평가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수업에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그 서류 한 장으로 담기지 않는다. 두꺼운 계획서가 곧 좋은 수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상가상 이 업무를 담당하는 연구부장과 담당교사는 올해 122쪽(아래 그림)을 검토하고 수정 지시하고 재검토하고 재수정 지시하고 재검토하고 다시 재수정 지시하고...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연구부장과 담당교사도 교과수업을 지도하는 교사이다. 학교에서 교과수업 지도를 하는 교사들 모두가 최소한 한 달 동안 서로를 괴롭히며 고생한다. 2학기 초에도 똑같은 소모전이 반복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교육청 교육전문직의 업무지시 공문 발송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교사를 지치게 한다. 수업을 지치게 한다. 교사를 소모 한다. 수업을 소모 한다.
교사의 시간은 유한하다
중학교 수학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급 수와 학생 수를 떠올려 보라. 필자만 하더라도 한 학급을 담임하여 20명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전공 교과지도를 위해 일곱 학급 140명이 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평가한다. 학교폭력 등 특별한 사안 발생 시 업무 스트레스는 급격하게 증가한다.
특히 3월은 수업 연구, 학생 개별 피드백, 학부모 상담, 생활교육, 각종 학교 행사 준비가 일상이다. 그 한복판에 평가 계획서 재작성이 놓여 있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이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수 시간에서 수 일에 이른다.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
교사의 시간은 유한하다. 행정에 쓴 시간은 수업에 쓰지 못한 시간이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말하면서 동시에 반복적인 문서 편집 작업을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선을 위한 제언
비판만 늘어놓는 칼럼은 무책임하다. 제안한다.
과거처럼 핵심 진도와 일정만 담은 간소화된 양식으로의 회귀도 대안이다. 과거 필자가 젊은 교사 시절 했던 것과 같이 대단원 또는 중단원 제목과 예상되는 진도 날짜만 작성하는 1쪽짜리 진도표만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질문은 교육청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이 서류는 교사의 수업을 돕기 위한 것인가? 행정적 관리를 위한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 비용을 치르는 사람은 교사이고, 그 피해는 결국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수학습 및 평가 계획서는 수업의 주인이 교사임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교사를 서류 편집자로 만드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교육 혁신도 현장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행정에 쓴 시간은 수업에 쓰지 못한 시간입니다.”
이 짧은 문장은 현재 우리 교육 행정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를 묻고 있다. 교사를 서류의 늪에서 건져내 학생 곁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