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필자는 정부장학생으로 영국 워릭대(University of Warwick) 파견유학(수학교육 박사과정, 행정적인 제약상 석사학위 취득) 시절, 수학교육 박사과정 유학생으로서 여러 학교의 수학 수업을 참관하며 1수업2교사 또는 1수업3교사의 실제를 목격하였다. 2012년 귀국 이후 교육부과 교육청, 교사단체, 교육연구기관, 정치권 등에 이를 건의했고, 그 결실로 대통령 선거기간 대선공약으로 채택돼 알려졌으며, 교육정책에 차용되기 시작해 파급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더에듀> 기고는 1수업2교사제에만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방법에 관한 강력한 권고이다. 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백지에 스스로의 생각과 손가락 힘을 통해 교과내용을 완성해 나가는 수업을, ‘디지털 감성’이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의 수업 중요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

“수학교사는 물론 다른 과목 교사들은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30년의 교직 경험으로 최근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된 한 가지는 ‘교사는 학생에게 공부하는 길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은 하나로 정해진 ‘외길’은 아니다. 그러나 한 교실에서 20명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현실, 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구별해야 하는 대한민국 학교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학생들에게 백지를 주고 본인 손으로 수업 활동을 적어 가며 학습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참 좋은 교수 학습 방법 같다.
방금 마친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답 잘 맞추는 평가는 중간·기말·수행·지필로 충분하다. 이 수업 시간의 평가는 시험점수가 낮더라도 성실하게 또박또박 배우는 내용을 적고 풀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학생이 보상받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을 수업에 그리고 교과서에 집중하게 한다. 수업 시간에 손 글씨로 작성한 수업 내용과 과정을 교사에게 제출하고 평가에 반영하면 성취 향상에도 상당히 이바지한다.
올해 1학기 중간고사까지의 결과를 토대로 한 중간평가를 해보았다.
세로축은 중간고사 지필평가 점수이고 100점 만점이다. 가로축은 학생들이 각자 수업 중 수행한 수업 노트이고 10점 만점 기준이다. 수업 시간 매시간 기재한 것들의 평균점으로 곱하기 10을 했다.
가로축에 100점을 넘어서 180점 가까이 기록된 까닭은 아주 우수하게 한 것에는 가산점을 최대 20점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즉, 세로축 중간고사 점수는 만점이 100점이고 가로축 수업 노트 점수는 만점이 100점이지만 더 잘한 학생들의 점수는 최대 200점까지이다.

중간고사 점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상관계수는 0.64로 중간과 강력한 상관의 경계 정도의 수준이다.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는 수치이다.
다만,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어느 것이 원인이 되어 다른 것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느냐는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자료를 종합하면, 중간고사 점수는 40점 미만으로 낮지만, 수업노트 점수는 60점 초과인 학생들이 7명이고, 중간고사 점수는 60점 이하로 낮은 편지만 수업 노트 점수는 100점 이상인 학생들이 3명이 있다.
반면, 수업노트 점수는 40점 이하이나 중간고사 점수는 90점 이상인 학생들이 2명 있다. 22-95와 40-91이다. 수업 중 언행이 과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다.
22-95인 학생은 영어 주 2일, 수학 주 3일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숙제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수업 중 관찰된 상황은 사교육을 많이 받는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대체로 우수하지 않다.

이 학생은 66-16을 기록한 학생이다. 중간고사 16점을 기록한 학생인데, 수업 내용을 기록한 수행평가 결과가 얼마나 우수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제물에 나는 10점 만점에 15점을 주었다. 물론 15점은 조금 과할 수도 있다.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이 저렇게 성실하게 공부하니 격려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교사의 주관적인 판단이 점수로 기록되긴 한다. 그러나 70차시 정도 수업 과정에서 매시간 한 학생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이것 또한 평균점으로 산출하고, 최종 평가점수는 5점 급간으로 나누었고, 한 학기 성적 산출에서 20%를 차지하니 그렇게 과한 편향성을 갖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도하는 모든 학생에게 공고한 모범 수행 학생들의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잘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학생들에게 동료의 과제 수행 정도를 보여주며 동기를 부여한다.

수업 시간마다 생생한 동료 교수학습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교사 한 명으로부터만 배우는 게 아니라 같은 시공간에 있는 다수의 동료로부터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 증거는 아래의 사진과 같다.

교실 앞에 나와 자신의 풀이 과정을 공개적으로 적어 가는 학생들 사이에도 동료학습이 일어난다. 아래 사진처럼 자연스레 동료들과 소통하며 풀이 과정을 완성해 간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동료들이 발표한 풀이 과정에서 개념이나 표현 등 고쳐야 할 점을 첨삭지도 한다. 전체 학생들은 교사의 첨삭지도를 통해 틀릴 수 있는 지점을 집중 확인하고 배운다.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 시간강사의 영국 대입준비반 자연계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적분 대입 시험 준비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문제풀이 발표를 시킨 후 다른 학생들과 앉아서 질문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질문을 권하고 발표한 학생과 함께 풀이과정을 토론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그 강사는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에 빨간펜으로 첨삭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부를 필요가 있는 학생은 불러서 문제 풀이에 대해 대화하며 지도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이런 첨삭지도가 가능한 교육환경이 조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들은 단순히 자기 책상 위에 놓인 백지에 교과서 내용을 베껴 적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든, 혹은 순수한 학습 동기에서든, 가까이 앉은 친구의 풀이를 곁눈질하거나, 멀리 있는 친구의 활동을 관찰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실 앞 화이트보드에 공개된 동료들의 풀이 과정을 참고하거나, 교사의 강의 설명과 첨삭지도를 통해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동료에게 다가가 질문하거나, 의견을 묻거나, 교사에게 질문하는 등의 다양한 의사소통을 자연스럽게 진행한다. 이러한 수업 활동은 학습 목표에 집중된다.
큰 추동력은 바로 교과서를 ‘교과서답게’ 쓰려는 실천에서 비롯된다. 더 잘 쓰기 위해,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의사소통한다.
교과서를 정독하고 글쓰기 위주로 한 나의 수업 방법은 교수 학습 효과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과다 학습량을 해소와 사교육 문제 해결에 이바지해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습지 중심의 학습자료를 제작해 상당한 분량을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이를 숙제 검사처럼 수행평가에 반영하거나, 지필고사 출제 범위에 반영하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학생들에겐 교과서뿐만 아니라 학습지까지 공부해야 해 공부할 자료 양이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학습지는 교사에 따라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정리한 것부터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구 교육과정의 어려운 내용과 각종 ‘상’ 또는 ‘최상’ 수준의 문제들을 담고 있다.
실제 몇 년 전 한 중학교 수학 교사가 정기 지필고사에 고1 전국 학업성취도평가 문항을 출제했다. 중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풀 수 있기는 하지만 몹시 어려운 문항이었다. 해당 교사는 숫자까지 동일하게 문제를 출제했다. 그 문제는 지역의 일부 수학 학원에서 내신 대비용 난도 높은 문제 풀이 수업에서 이미 다뤘던 것이었다.
나는 교과서 이외 학습자료 사용을 반대한다. 그렇다고 내가 교과서만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교직 30년 중 23년 정도를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는데, 고3 지도 시기에는 개교 이래 수능 수학 1등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 학교에서 두세 명을 1등급이 되게 지도하기도 했다.
수업은 교과서 이외에 단원을 수준별로 수능 기출 문항을 편집해 학습자료로 사용했으며, 학교 시험에는 문항을 변형해 출제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영재학교에서 가르치던 시기에는 다양한 학습자료를 사용했다.
확률 통계를 가르쳤을 때, 국내 여러 출판사 교과서에서 해당 단원들을 편집했으며, 해외 특히 미국 대학 교재에서 해당 단원을 편집했다. 해당 단원의 역사적인 배경지식과 문제가 있는 일종의 교양도서를 편집해 학습자료로도 사용했다. 미적분 단원을 가르칠 때는 미국 대학 교재의 해당 단원들만을 편집해 거의 그대로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에게 상당히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고 자부한다.
영재학교에서 의과대학이나 다른 학과 진학을 위해 수능 준비반을 가르쳤을 땐, 교과서 없이 수능 기출 문항으로만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다양한 지도 방법에 학생들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다. 당시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이런 교육 방법은 거의 없었다.
대입이라는 난관이 있는 현실에서 교과서만을 활용해 가르치는 것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소한 중학교에서는 그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정독하도록 하자. 교과서 내용 안에서 토론하고 사고하도록 수업을 설계하자. 평가 문항을 교과서 바깥에서 가져오지 말자. 그 길이 교사도 살고 학생도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