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지난 편에 교과지도교사(1수업 2교사제 포함), 비교과 생활지도교사, 상담교사의 채용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인력이 학교의 주류가 될 때, 학교는 비로소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행정 전문가는 줄이고, 학생지도 전문가는 늘려야 한다. 교육청에 앉아 있는 교육전문직보다 상담교사와 생활지도 교사가 훨씬 더 많이 배치된다면,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교폭력과 기초학력 미달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간략하게 비교해 봐도 우리가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다음은 우리나라와 해외 선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의 인적 구성 비교표다.
영국의 ‘학생 지도 인력’ 구조는 대한민국과 가장 먼 대척점에 있다. 영국의 평교사 비율은 46.5%로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교사 보조(TA), 생활지도 전문가, 상담사 등 40.2%를 차지하는 ‘지원 인력’이 교실 안에 함께 상주한다.
이처럼 영국은 교사 한 명이 고군분투하게 두지 않는다. 40%에 달하는 전문 지원 인력이 교실 최전선에서 아이들의 숨결을 챙긴다. 반면 우리는 그 인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교육전문직’이라는 이름의 행정가들만 늘리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직군 구조를 가졌음에도, 전문직(지도주임)의 정기적 현장 복귀와 유연한 순환을 통해 행정의 동맥경화를 막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교육전문직은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 일본처럼 전문직을 ‘잠시 맡는 업무’로 되돌려놓지 않는 한, 상부 지시 철저 이행, 교사의 건의 묵살을 일삼는 보신 행정의 곰팡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1914년 교사 2명이 배치되어 있는 영국 초등학교의 2학년 학급 모습이다. 이 학교는 나의 네 자녀 중 세 명이 2년 반 동안 다녔으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저학년의 경우 한 학급당 세 명의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했다.
우리는 영국의 초등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만 5세부터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교실에 3명의 교사를 배치하는 것은 행정이 교실을 ‘관리’하는 대신, 교실 속으로 ‘침투’해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내가 기고했던 기사를 읽고 영국에서는 오래전 보조교사 제도가 정착됐는데, 한국에서는 보조교사에 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유학 경험을 통해 내가 목격한 제도를 한국 정부에 건의해 보조교사 제도를 시작하게 되었으나, 최근 들어 일부 ‘교육 수장’들이 IB 등에 집중하고 있어 잘 운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학교 행사의 방송 장비 운용과 행사 진행, 사회 등을 교장이 모두 발로 뛰며 진행하는 것을 영국 유학 시절 네 자녀 중 세 자녀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의 시선으로 목격했다.
교사들은 교장과 장학사를 보필하러 따라다니는 대신, 학생들을 위해 안전과 정숙 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육의 힘은 화려한 정책 보고서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맞추는 그 찰나의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도 이처럼 유연하고 순환적이어야 한다. 현재의 고립된 전문직 직군을 해체하고, 모든 전문직이 정기적으로 교실로 복귀하는 ‘순환근무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행정업무를 하던 이가 다시 아이들의 서툰 글쓰기를 돕고, 수업에 헌신하던 이가 잠시 행정의 자리에 앉아 현장에 필요한 도구를 조달하는 방식, 이것이 바로 혈액이 심장과 온몸을 오가며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율동이다.
고착된 장벽을 허물고 생명의 숲으로
나는 제언한다. 교육전문직의 고정 직군을 폐지하고, 모든 교육행정 인력을 ‘순환하는 교사’의 범위 안에 두어야 한다.
첫째, 전문직 선발 과정에서 ‘승진 점수 계산기’를 치워야 한다. 점수가 아닌,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얻은 ‘생명의 지혜’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 수학 수업처럼, 교사 자신의 교육 철학을 글로 쓰고 실천한 궤적이 전문직 임용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 ‘전문직-교장-교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사다리를 해체해야 한다. 행정 지원은 직위의 상승이 아니라 ‘역할의 분담’이 되어야 한다.
행정을 경험한 교사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행정의 문법을 아는 더 유능한 수업 전문가가 될 것이며, 수업을 진행하러 돌아온 장학사는 더 이상 학교 현장의 현실로부터 괴리된 공허한 보신 행정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학교 문턱을 넘어서는 배움의 공간, 즉 동네 도서관, 각종 방과 후 교육기관 등을 교육청, 지자체, 중앙 정부가 책임지고 구축해야 한다. 현장의 필요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환하는 행정가’만이 각종 방과후 교육기관을 지을 수 있다.
흐르는 생명만이 교실을 구원한다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듀이는 삶을 미래의 고정된 목표를 위해 참아야 하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현재 흐르고 있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가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며, 정지된 것은 죽은 것”이라고 외쳤듯이, 교육전문직이 고정된 권력이 되어 교실 위에 군림할 때 우리 교육은 사멸한다.
그러나 행정과 현장이 벽을 허물고 서로의 자리를 오가며 순환할 때, 교실은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이 우후죽순 돋아나게 될 것이다.
승진 계산기, 계급 상승 사다리를 던져버리고 다시 아이들의 눈동자를 응시하라. 교실이라는 교육의 흙바닥을 밟아라. 교육의 미래는 고립된 회의실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읽고 쓰는 소리로 가득 찬 교실 속에 있다. 순환하는 생명만이 우리 교육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