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논객] ⑦학대는 하는데 소리도 지르지 않는 육아?

  • 등록 2025.06.04 13: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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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학문의 세계는 끊임없이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평생 배우는 전문직이자 평생학습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자가 이런 연구를 계속 접하면 좋겠지만, 매일의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독자를 위해 미가 문인 원기자, 주취논객이 격주로 흥미롭고, 재미있고, 때로는 도발적인 시사점이 있는 연구를 주관적 칼럼을 통해 소개한다. 

 

 

맥락과 다양한 자료를 알아보지 않고 한 가지에 꽂혀 미화하다 보면 생기는 다른 나라 교육에 대한 오해는 핀란드에 그치지 않는다.

 

3년 전쯤에 우리말로 번역한 미국의 한 육아 도서가 번역되면서 온라인 채널들을 통한 홍보가 이뤄졌다.


‘평화로운 육아’를 말하는 책과 ‘폭력’을 말하는 산증인들


부모가 절대로 소리 지르지 않는 이누이트의 육아법에서 우리가 육아를 잘못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처음 들었던 생각이 바로 제목 그대로의 감상이었다.

 

캐나다에서 원주민 장로가 직접 해주는 원주민 교육 강의와 원주민 학교에 직접 근무를 했던 선배 교사들의 이야기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원주민 문화가 ‘평화롭다’는 건 순전히 외지인의 환상에 의존한 이야기다. 실제로는 많은 폭력이 가정과 부족 공동체에서 일어난다.

 

한 선배 교사는 영어 교사로 파견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첫 퇴근 후 집 문에 찍힌 도끼를 만나야 했다.

 

물론 현대의 원주민 문화에는 식민 역사와 인종 차별의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배경은 알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책의 저자가 시간여행을 해서 그들 문화를 경험한 것도 아니니까, 사실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은 들 수밖에 없다.

 

혹시나 필자가 잘못 알고 있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모든 자료는 필자가 알고 있는 사실과 일치했다.


이누이트 자치구의 불리한 아동기 경험 조사


오늘은 그래서 실제 이누이트 원주민의 현실을 비춰주는 논문 하나를 읽어볼까 한다.  

 

안 줄리 라프르네이 두가(Anne-Julie Lafrenaye-Dugas) 캐나다 퀘벡주 라발대 교수가 2023년에 캐나다 공중 보건 저널(Canadi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게재한 ‘누나빅 지역 이누이트의 불리한 아동기 경험 유형: 유형 기술 및 사회경제적 특성, 지원, 지역사회 참여 지표와의 연관성 분석(Profiles of childhood adversities in Inuit from Nunavik: description and associations with indicators of socioeconomic characteristics, support, and community involvement)’이다.

 

캐나다 퀘벡주 북부에 있는 이누이트 자치구인 누나빅 지역 주민 1만 4000여 명 중 11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10가지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조사했다.

 

여기서 불리한 아동기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은 아동의 발달이나 전인적 성장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성폭력, 신체·심리적 학대, 방임을 비롯해 가구 내 중대 스트레스 요인 경험도 포함한다.

 

가구 내 중대 스트레스 요인은 가정 내 폭력 목격이나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자살, 정신 질환, 약물 오남용, 징역 등을 말한다.

 

 

설문조사는 누나빅 자치구의 2017년도 보건 조사 자료를 활용했다. 누나빅 인구를 대표하기 위해 비비례 층화 복원추출한 표집을 사용하기 위해 1674명의 응답자를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 조사에 참여하지 않거나, 불리한 아동기 경험에 대한 응답이 없거나 6개 이하인 응답자, 이누이트가 아닌 응답자,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에 대한 응답이 없는 응답자를 제외하고 1109명을 대상으로 했다.

 

캐나다 내 원주민 관련 연구의 민감성 때문에 연구 윤리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이누이트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검증했다.

 

연구에서 살핀 불리한 아동기 경험은 △성적인 폭력 △학대(심리적, 신체적) △방임(신체적, 심리적) △가구 스트레스 요인(부모 이혼·별거 목격, 어머니 대상 가정 폭력 목격, 약물 오남용자와 거주, 정신질환 또는 자살 시도자와 거주, 징역 경험이 있는 자와 거주) 등 4개 영역으로 분류한 10가지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과거 강제로 아동을 가족으로부터 분리하고 학대가 일어나기도 했던 원주민 기숙학교 재학 여부, 사회경제적 지표, 지원에 대한 인식, 사회활동 참여, 전통적 활동 실천 등의 요인들과 관련해 살폈다.


실제로는 세 명 중 한 명 학대 경험


분석 결과 응답자 넷 중 세 명(77.6%)은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했다. 경험한 불리한 아동기 경험의 유형은 평균 2.6개였다. 여성(2.8)이 남성(2.3)보다 많은 불리한 경험을 했고, 저연령 응답자(2.9)가 고연령 응답자(1.7)보다 많은 불리한 경험을 했다. 응답자 연령은 50세를 기준으로 구분했다. 

 

성적인 폭력과 신체적 방임을 제외하면 저연령에서 뚜렷하게 많은 불리한 경험을 했다. 남녀의 평균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성적인 폭력, 약물 오남용자와 거주, 정신 질환 또는 자살 시도자와 거주에서만 나타났다.

 

 

논문에서 짚지는 않았지만, 앞선 도서의 주장과 비교해서 살펴보면 젊은 세대에서 심리적 학대는 세 명 중 한 명(35.7%), 신체적 학대는 네 명 중 한 명(26.2%)에 이른다. 소리도 지르지 않는 평화로운 육아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자들은 캐나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를 소개하면서 조사 방법이나 표본 차이로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누이트 사람들이 전체 캐나다인의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불리한 경험을 했다고 봤다.

 

연구는 이어서 연령 집단별로 적은 불리한 아동기 경험, 다중의 불리한 아동기 경험, 가구 스트레스 요인 등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집단으로 분류해 분석을 이어가며 대안까지 모색하고 있지만, 여기서 줄이겠다.


오랜 기간 이어진 차별과 구조적 억압의 영향


이는 이번 연구만의 결과가 아니다. 2018년 그린란드 이누이트를 대상으로 신체적 폭력, 성적인 폭력, 알코올 문제를 살핀 연구에서도 66%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기술했다.

 

캐나다 맥길대 등에서 모인 연구진이 진행한 2013년 연구에서도 캐나다 전체 인구보다 확연히 높은 아동 학대 경험의 비율을 나타냈다.

 

물론 이런 상황에는 이유가 있다. 연구자들은 저연령에서 불리한 아동기 경험이 많은 것은 과거 강제적 동화 정책과 지속된 차별에 따라 세대 간 전이되는 트라우마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다수의 다른 연구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특히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에서 원주민 기숙학교 재학 경험을 한 경우 더 높은 비율로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했다는 점이나 50세 이상 집단이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불리한 아동기 경험을 적게 했다고 해도 특히 세 명 중 한 명이 학대가 많이 일어났던 기숙학교 재학 경험이 있기에 가정 밖에서 더 많은 구조적 트라우마를 겪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렇기에 이 연구가 문제의 도서 저자가 말한 평화로운 전통 육아법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내용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이누이트 내 아동 학대 감소를 위한 여러 교육 자료를 찾아보면 보다 수용적인 전통 육아법에 바탕을 둔 평화로운 육아 방침들이 안내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런 전통문화가 있었다는 것과 그걸 저자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경험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사실 저자가 이누이트 지역에 머문 기간도 그리 길지 않고.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가 소속된 미국 공공 라디오 방송의 정치적 편향성이 특정 사상에 경도된 시각으로 상황을 보도록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타 문화를 바라볼 때는 잘 훈련된 인류학자도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류학의 거장 마가렛 미드다.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인류학자 중 하나인 그의 연구 중 1928년에 출판한 ‘사모아에서의 성장(Coming of Age in Samoa)’이 있다.

 

문화가 심리성적인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모아 청소년들의 삶을 근거로 제시한 책으로 이후 여성의 성적인 해방에 큰 동력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미드가 기술한 내용은 사모아 문화의 현실이 아니었다.

 

데렉 프리드먼이 1983년에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책을 출판했고, 그의 주장에 대한 찬반이 갈렸지만, 이후 미드의 출판 내용이 당시 주류 사모아 문화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우선 소수의 관찰을 바탕으로 할 때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오류는 그 표본이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 표본일 가능성이다.

 

특히나, 소수 문화를 연구할 때 외부 연구자에게 협력하는 사람은 폐쇄적인 소수 공동체의 중심부가 아닌 외부 극단에 있는 사람으로 언어나 행동에서 기존 문화와 다른 태도를 갖고 있기 쉽다.

 

연구자 자신의 문화적 배경이나 기대, 선입관 등도 작용할 수 있고, 기간이 짧다면 언어의 한계도 작용하기 쉽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증명하고자 하는 이론과 가설에 맞는 증거에 주목하기가 쉽다. 실제로 미드의 연구에 대한 여러 비판 중에는 현지 조사 자료와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아름다운 것은 추억이지 과거가 아니다


심지어 이런 오류를 다 극복하더라도, 잘 정리된 전통문화의 관습이 과거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래도 전통문화나 제도라는 건 규범이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런 관습이 필요할 정도의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 교사 자격증 취득을 앞둔 필자가 사료 분석을 가르칠 때 매우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가 현재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말고, 당시의 관점으로 보라는 점이다.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영 잘못된 해석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화의 개념도 인권의 개념은 고대에 없던 관념이다. 고대에서 말하는 ‘평화’와 현대에서 말하는 ‘평화’는 전혀 다르다.

 

요새 우리 교육계에서 논란이 되는 ‘학대’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때리거나 그냥 방치하는 게 학대라는 개념은 30~40년 전만 해도 없던 개념이다. 지금도 미국 일부 주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허리띠로 때리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그러니 폭력이 만연했던 고대 문화에서 평화롭게 지켜본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과 같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한참 잘못 짚어도 잘못 짚은 것이다

 

현대의 인권과 학대의 기준을 과거의 양육에 들이대면 학대가 아닌 문화가 있을까 싶은 게 역사가 말해주는 과거의 초상인데, 식민지 트라우마가 있기 이전 과거라도 혹독한 자연과 싸우고 부족한 자원을 두고 부족 간 전쟁을 하던 시대에 현대인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아름다운 것은 추억이지 과거가 아니다.

 

이번 논문을 더 자세히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링크는 아래와 같다.

Profiles of childhood adversities in Inuit from Nunavik: description and associations with indicators of socioeconomic characteristics, support, and community involvement

정은수 객원기자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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