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썹쌤일기] ⑰시험도, 시연도 없이 하는 채용

  • 등록 2025.10.11 17: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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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저는 갈원중 교감인 채귀연입니다. 오늘 면접은 다섯 가지 질문에 한 명씩 차례를 돌아가며 모두 각 3분씩 답을 할 겁니다. 한 질문에 답을 다 하고 나면 약간의 토의 시간을 제공할 거에요.” 

 

“저는 박미선입니다. 구릉초 교장이랑 교육국장을 하고 지금은 퇴직했어요. 그러면 일단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겸, 교실 현장을 표현한 한 단어를 골라서 포스트잇에 쓰시고, 돌아가면서 고른 단어와 이유를 나눠봅시다.”

 

“저는 ‘안전’을 골랐습니다.”

 

이번 주중에 있었던 회암교육청 면접의 시작 장면이다. 이번 주는 아직 환절기 전이고 학기 초라 아직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주초에는 받았어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정규 보결 교사 채용 면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보결 수업 이야기 대신 채용과 면접 과정에 대한 일기를 써볼까 한다.

 

보통 정규 보결 교사 공채는 봄에 많이 이뤄지는데, 올해 회암교육청은 봄에 중등 보결 공채가 없었다. 대신 프랑스어와 기술 실기 교사만 선발했다. 이곳 회암교육청에서 가장 수급이 어려운 교과들이다.


정규 교사 채용은 내부 채용 중심


회암교육청뿐만 아니라 온타리오주에서 제일 수급이 어려운 과목은 프랑스어다. 캐나다가 이중언어 국가라고 해도 온타리오주에서는 오타와를 포함해 퀘벡주와 맞닿은 동부 경계 지역 외에는 영어권에서 영어만 쓰면서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이라 조금은 읽고 알아도 수업을 이끌 만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흔치 않고 이중언어가 유창하게 되는 사람은 다른 직업 선택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학교급에 따라 다소 갈리는데, 중등에서는 대체로 실기 교사 채용이 어렵다. 해당 업종에서 3년간 관련 자격을 소지하고 일한 경력도 있고, 교사 교육도 온전히 받아야 실기 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년간 자동차 정비사로 일한 다음에 교대를 2년 다녀야 자동차 정비 실기 교사가 될 수 있는 경로라 선택하기 쉬운 진로는 아니다.

 

해외에는 보통의 영어권 국가처럼 수학과 물리가 부족한 것처럼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기 교사 채용은 앞서 말한 경로 때문에 국제 교사를 대상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그다음으로 대도시권에서 수요가 높고 국제 교사 공급도 유인도 많은 수학과 물리로 홍보하기 때문이다.

 

초등에서는 타 교과는 전공별로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전담으로 운영하는 프랑스어와 음악 교사만 구인이 더 어렵다.

 

내가 이렇게 수급이 안 되는 과목을 꼽은 이유는 이 과목들을 제외하고는 수업 환경이 악명 높은 일부 대도시 교육청과 명절 때가 아니면 나올 수도 없는 벽지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육청에서 공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규 교사로 일하려면 먼저 정규 보결 교사 명단에 올라간 뒤에 내부 채용 공고를 보고 그 자리에 응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5년 전만 해도 보결 교사 연공서열에 따른 우대 제도가 있었다. 근속 기간 5년이 넘는 보결 교사에게 정규 채용 우선권을 주는 제도였다. 지금은 이 제도가 폐지됐지만, 결국 경력 교사에게 정규 채용 기회를 얼마나 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간제 교사에게 임용 가점을 주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우리나라와 큰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아무튼 그래서 일단 정규 교사로 일하기 위해서, 앞서 말한 특정 교과나 특정 교육청이 아니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단계가 정규 보결 교사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올해 회암교육청은 중등 채용이 특정 교과만 이뤄지고 보결 공채가 없었다.  


중등이지만 초등인 중학교


다행히 그럼에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갈수록 아이들 다루는 게 어려워지는 초등에는 원하는 만큼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춘기 공채를 했는데도 9월에 추가 채용 공고가 있었다.

 

이 또한 이곳의 문화인데, 학기가 시작하고 2주간 정도까지는 인사이동이 이뤄진다. 모든 과정이 느려 학생들이 전학 절차가 늦어지지만, 그에 비해 학급 규모 조정은 느슨하지 않다. 때문에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학급 조정이 이뤄지고 그에 따른 인력 수요가 확정되고 추가 채용과 인사 이동이 이뤄진다.

 

이번에도 중등 채용은 없었지만, 지원하기로 했다. 초등 자격이 없는데도 가능한 이유는 중학교에 해당하는 이곳의 7~8학년의 특성 때문이다.

 

7~8학년은 교육과정상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전기 중등교육으로 분류된다. 사실 10학년까지가 전기 중등교육이고, 11~12학년만 후기 중등교육이다. 그런데 학교 행정 체계상으로는 초등으로 분류된다.

 

보결 교사도 초등 인사와 급여 담당이 관리하고, 급여도 초등 기준으로 지급된다. 그래서 초등이지만, 7~8학년은 중학교 교사 자격으로 가르칠 수 있어 지원했다.

 

행정상 초등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온타리오주에서는 초등학교에 8학년까지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떄문이다. 별도로 7~8학년만 있는 학교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수업 시간의 길이도 초등에 가깝고, 일부 교과는 교과 교사와 교환 수업을 하지만, 담임 교사와 담임 교실이 있는 초등에 가까운 형태가 대부분이다.

 

건물은 고교와 같은 건물에 있고 교장은 겸임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학교 이름과 교직원, 시간표, 행정실, 교무실 다 별도로 가진 병설 학교 형태로 운영된다.


대도시보다 소도시 교육청이 인기 있는 이유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면접장에 갔더니 추가 채용인데도 서른 명이 와 있었다. 아무래도 회암교육청의 특성 때문이리라.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은 교사 집단에게 조용하고 안전한 소도시지만, 동남 온타리오주 거점 도시이자 과거 수도였던 도시라 모든 인프라가 다 있는 군포시만 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도시 교육청은 이민자와 뜨내기 학생이 많은 데다, 가정 환경이 열악한 지역도 많다. 고교생쯤 되면 범죄 조직에 가입한 아이들까지 있고, 주거비도 비싸고, 시끄럽고 복잡하다. 벽지는 생활환경이 열악해 회암교육청은 선호할 만한 곳이다.

 

게다가 관할 지역이 넓어 시골에서 살고 싶으면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천 섬의 시골에서, 맛있는 먹거리와 인프라가 많은 도시에서 살고 싶으면 편리한 도시에서 살면서 근무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매번 보결 교사 채용 때마다 대부분 타 지역 경력 교사가 몰린다. 이번에도 같은 조에서 갓 졸업한 신규 교사는 한 명도 없고, 경력 20년차, 14년차 교사들이 대도시에서 왔다. 그 외에 군포시에 거주하는 비교적 초년생인 사람들도 그래도 다들 2~3년 정도 경력을 가진 교사들이었다.


전문직 집단의 동료 압력이 기능하는 사회


면접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전체적인 채용 과정을 설명하자면, 서류, 면접 그리고 추천인 검증의 세 단계를 거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필기 시험이나 수업 시연은 없다.

 

서류 전형은 두 장 안에 쓰는 이력서와 한 장의 자기소개서가 핵심이다. 특히 자기소개서에는 구구절절 성장 과정이나 성격의 장단점 같은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오직 교사로서 자신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 철학을 교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한 문단 정도 그 외 교직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이 뭐가 있는지만 쓴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점은 회암교육청의 경우, 자기소개서 대신 자기소개 영상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3분 분량의 짧은 영상을 같은 내용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 외 졸업장이나 자격증 등 기본 서류는 요구하지만, 이력서에 쓰는 경력을 증명하는 서류는 요구하지 않는다. 인적 신뢰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서류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발각될 경우 해당 직종에서는 영구히 발조차 못 붙이게 되는 대가가 있기 때문에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회암교육청에서 면접은 조별 집단 면접과 짧은 개별 면접으로 진행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바로 면접 자격이 주어진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질문을 주고 15분간 준비할 시간을 줬다. 이 자리에 도움이 되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질문 하나와 상황별 경험에 관한 질문 네 가지가 나왔다.

 

아무래도 질문 내용이 구체적인 경험을 답하는 것이어서 따로 준비 시간을 준 것이다. 어차피 말을 잘하는 게 관건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경험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물론 의사소통 능력은 면접 과정에서 본다.)

 

면접관은 전직 교장선생님 한 분과 현직 교감선생님이 맡았다. 조별로 치러진 집단 면접은 짧은 아이스브레이킹 질문 후에 같은 조의 응시자가 돌아가면서 질문에 응답한 뒤 추가 토의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별 면접은 앞선 집단 면접에 대한 성찰로 이뤄졌다. 집단 면접을 하는 이유는 동료 교사와의 상호작용과 협력하는 태도를 보기 위해서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정성을 위해 족보를 공유하지 않기로 약속해 밝힐 수가 없지만, 성찰도 그래서 다른 교사들의 답변에 관한 내용 중심으로 이뤄졌다.

 

면접 이후에는 경력에 대한 추천인 검증 과정이 이어진다. 교육청에서 추천인에게 연락해 지원자의 태도, 인성, 전문성에 관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절차이다.

 


인적 신뢰 없는 인적 보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누군가의 추천을 받는 것이 부정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인적 보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청에서는 일반 추천인을 받지 않고 반드시 관리·감독을 했던 사람이나 현직 경력이 전혀 없으면 실습 지도교사 등 경력 추천인으로 받는다. 추천인도 자기 제자나 직원이었다고 아무나 추천인이 돼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한 달 근무했던 군포초 전 교장선생님의 경우, 교사로서 전문성과 근무 태도는 봤으니 흔쾌히 추천인을 해줬지만, 담임 교사 자리는 추천인을 해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직접 물은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이럴 때는 수업 계획과 학급 운영을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옥토중 교감도 추천인을 부탁하자, 수업하는 걸 많이 못 봐서 못 하겠다면서 원하면 일주일 정도 참관을 하고 나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어디에서 행동을 잘못하면 해당 직역에서 계속 일하기 어렵다. 어딜 가든 반드시 추천인 검증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단순히 인적 신뢰가 높을 뿐 아니라 그만큼 동료 집단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얘기이다.

 

이런 직역 내 동료 집단 압력을 보여주는 모습이 또 있는데, 온타리오주 교사협회 정기회보에 교사 징계 사항이 모두 실린다는 점이다. 징계를 받으면 교직 사회에 모두 알려진다는 얘기이다.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전문직으로서 개인 경험과 교직 사회의 인적 보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만큼 객관적 지식을 묻는 시험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수업 시연 역시 추천인 검증에서 시연용 수업이 아닌 실제 수업을 본 사람들에게 확인하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 0.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객관적 시험도 압박이 큰 방식이지만, 평소에 행동을 잘못하면 한 번 잘한 시험 준비로 뒤집을 수 없는 제도가 어쩌면 더 엄정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은 인적 신뢰가 사회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면 우리 사회에는 객관적인 공정함을 우선시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겠다 싶기도 하다.

정은수 객원기자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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