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김승호 객원기자 | 해외 한국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배경 학생 상당수가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심각한 학습 부진과 학교 부적응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과 학습에 필수적인 학습 언어와 문해력 부족은 장기적으로 기초 학력 저하와 정체성 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이들을 위한 제2외국어로 ‘한국어(Korean as a Second Language, KSL) 교육과정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지영 숭실대 조교수, 정영찬 인천교육청 장학사, 이규림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연구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최근 KCI 등재 학술지 ‘국제어문’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재외 한국학교 다문화 배경 학생의 언어 적응 실태와 KSL 설계 방향’ 보고서를 게재했다.
보고서엔 베트남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교사 20명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결과가 담겼다. 이 학교는 초등 과정 학생의 약 39%가 다문화 배경 가정이다.
인터뷰 분석 결과, 일부 학생들은 학습 언어와 문해력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수업 참여와 정서·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정규 교과 안에 한국어(KSL) 교육과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체계적인 지원 부족이 확인됐다.
‘0개 국어’ 학생도...심각한 학습 언어·문해력 부족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다문화 배경 학생 상당수가 심각한 언어 결손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봤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주로 베트남어를 사용하다 한국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일상 대화는 가능하더라도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학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학습 언어’와 ‘문해력’이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A교사는 “특정 언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지 못하는 ‘0개 국어’ 상태의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B교사는 복잡한 언어 환경 문제를 언급하며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베트남인인데 영어 유치원에 보낸다. 그 후 한국학교에 오면 이 친구의 주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라며 “그중에는 영어나 베트남어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밝혔다.
또 ‘선생님이가’와 같이 가정에서 잘못 배운 표현이 고착돼 교정이 어렵다는 호소도 나왔다.
학습 부진은 사회·정서 문제까지...“학습된 무기력 보여”
언어 능력 부족은 학습 부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국어 교과 난도가 높아지는 초3 이상부터는 언어 격차가 학습 결손으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참여가 저조했고, 질문에 기계적으로 “네”라고 답하거나 답을 베껴 쓰는 등 ‘학습된 무기력’ 양상을 보였다.
C교사는 “수업 시간에도 지금 수업이 시작됐는지, 또 무슨 활동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기도 하다”며 “수업 시간에 계속 대화를 한다든지, 교과 내용과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언어 장벽은 학습을 넘어 또래 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정체성 혼란, 학습 동기 저하, 자신감 부족 등 사회·정서적 발달 지연으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언어 능력 부족은 친구와의 다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심한 경우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D교사는 “내가 베트남인인지, 한국인인지 (정체성 형성이 안 되니), 어떤 걸 배워야 하는지 자체가 불분명한 친구들이 있다”며 “(이는) 한국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부족하게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KSL 교육 부재 속 교사 개별 노력 ‘역부족’...진단 도구도 없어
문제는 복합적이지만 학교 현장 지원 시스템은 미비했다. 특히 정규 교육과정 내 KSL 프로그램이 없어, 한국어 지원은 전적으로 개별 담임 교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에 교사들은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교과서 지문을 읽는 영상을 제작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30명이 넘어가는 학급 내에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며 한계를 토로했다.
더욱이 한국어 수준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표준화된 평가 도구도 없어, 문제의 조기 발견과 개입이 늦어지는 문제도 갖고 있었다. 교사들은 “결국 학습 결손 누적 위험을 낳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상황에 학교 자체적으로 한국어반 운영 등 노력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명환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교장은 “올해부터 다문화배경 재외동포 학생 중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반’을 재외교육기관 최초로 운영했다”며 “내년에는 초등 신입생들을 위한 ‘입학 전 한국어 집중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방과 후 한국어 기초반’ 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다문화 학생들의 언어 공백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별도 KSL 과정, 소규모 집중반 절실”
해소책으로 정규 교육과정과 별도로 KSL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초등 저학년 단계에서의 조기 개입이 제안됐다. 수업 방식으로는 학생 2~3명 단위의 소규모 집중반 운영을 선호했다.
또 전문 KSL 교사 및 이중언어 교사 확보 필요성과 함께 정규 수업 시간 확보의 어려움을 고려해 방과 후와 주말 그리고 방학을 활용한 집중 프로그램 운영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교육 내용은 학습 언어와 문해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수준별 맞춤형 교재와 학생 친화적인 디지털 콘텐츠의 신속한 개발도 요구했다.
가정 연계 중요성도 강조했다. 교사들은 학부모 대상 한국어 교육, 가정용 보조 교재 제공, 취학 전 KSL 프로그램 도입 등을 제안하며 학교와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함을 역설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재외한국학교의 언어 교육 공백을 보여주는 동시에 KSL 교육체제 도입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며 “연구 결과가 향후 재외 한국학교의 한국어 교육 정책 수립과 교육과정 설계에 유용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명환 교장은 “이번 연구가 우리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과 학교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