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김승호 객원기자 | 학교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무관용 원칙’을 앞세워 쏟아낸 엄벌주의 대책으로 학교의 교육적 기능은 마비되고 ‘사건 처리’만 남는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9월 말 발표된 두 편의 연구 논문은 지난 수십 년간의 학교폭력 정책 변동 과정을 살피면서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대응 방식이 어떻게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 사법적 절차에 종속되어 갔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정책의 창’은 충격적 사건으로 열리고, 결과는 ‘땜질식 처방’
최근 ‘한국교원교육연구’에 게재된 변국희·박균열 연구팀의 ‘사안처리 중심의 학교폭력 정책변동 분석 연구’는 킹던(Kingdon)의 정책흐름모형을 통해 학교폭력 정책이 급변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학교폭력 정책의 변화를 이끄는 ‘정책의 창’은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심각한 사건의 발생과 언론 보도에 의해 예측 불가능하게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5년 고등학생 자살 사건, 2012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2023년 고위공직자 자녀 학폭 논란 및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등이다.
연구팀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여론 대응을 위해 긴급하게 대책을 내놓았다”며 “이는 장기적이고 일관성을 갖기 보다는 단기적이고 땜질식인 사안처리 중심 정책으로 귀결돼 5년 단위로 수립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이 추구하는 예방 및 교육적 기능 강화라는 본래 취지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무관용 원칙’의 제도화...“학교폭력은 ‘사건’이 되다”
같은 달 ‘교육사회학연구’에 게재된 이민정·유성상 연구팀의 ‘학교폭력의 엄벌화 흐름에 대한 비판적 연구: 학교폭력 당사자 정책을 중심으로’는 땜질식 사안처리 중심 정책 흐름이 학교폭력을 ‘교육적 문제’가 아닌 ‘사법적 사건’으로 구성해 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2012년 ‘대구 중학생 사건’ 이후 ‘무관용 원칙’과 ‘엄벌화 조치’가 제도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정책은 학교폭력을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단순화하고, 가해 행위에 대한 응보적 처벌을 정당화했다. 한때 ‘회복적 접근’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2023년 이후 ‘무관용 원칙’이 다시 소환되며 엄벌주의 기조로 회귀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가해학생 즉시 분리, 졸업 후 기록 보존 기간 연장 등 처벌 수위는 계속해서 강화되었다.
학교의 ‘외주화’: 사법화, 의료화 그리고 교사의 소진
두 연구는 공통적으로 이러한 ‘사건 처리’ 중심의 정책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주체와 공간을 학교 ‘밖’으로 이동시키는 ‘외주화’ 현상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종합하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명분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점차 ‘사법화’되면서, 학교는 교육적 중재 대신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하게 됐다. 조치에 불복하는 행정심판과 소송이 급증했고, 이는 변호사들이 개입하는 ‘법시장화’로 이어졌다.
동시에 당사자의 심리적 문제를 강조하며 피해 학생은 치료의 대상으로, 가해 학생은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의료화’가 진행됐다.
결국 학교폭력 사안 조사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과 같은 외부 전문가에게 넘겨졌고,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법적 분쟁의 공포, 학부모의 불신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교사 소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연구팀들은 이 현상을 통해 “‘학교폭력’에서 ‘학교’는 점차 지워지고, ‘폭력’이라는 사건만 남게 된 것”이라고 요약했다.
“교육적 해결을 위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필요”
두 연구는 현재의 사안처리 중심 정책이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손상하고 교육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등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팀들은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공분에 기댄 단기적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학교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교원단체, 학부모 등 비공식적 정책활동가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