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의 THE교육] 교원 직무 해체하는 '전담 제도 공화국'

  • 등록 2025.12.17 10:48:54
  • 댓글 0
크게보기

전담 제도, 헌법에서 이탈한 학교 통치 수단

 

더에듀 | 이 나라는 요즘 유난히 ‘전담’이라는 말을 사랑한다. 최근 정치권을 둘러싼 내란전담재판부 논쟁을 보며 느낀 기시감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전담재판부’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면, 학교와 교원에 대한 불신 역시 각종 전담제도의 확산으로 반복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의 위치를 이동시켜 문제의 근원을 숨기고, 제도의 실패를 교원의 직무로 떠넘겨 전담이라는 이름 아래 교원의 직무로 둔갑시킨다.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신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와 교원에게 책임을 이식한다. 이 전담 중심의 교원 통치 체제를 나는 ‘전담 제도 공화국’이라 부른다.

 

내란전담재판부에서 말하는 ‘전담’은, 학교에서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전담 제도 공화국’의 기준에서 볼 때 그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전담재판부 운영 방식의 위헌성 논쟁을 별도로 하더라도, 전담재판부의 ‘전담’은 어디까지나 ‘재판’이라는 동일한 직무 범주 안에서 특정 사건 유형을 맡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법원에는 성범죄 전담, 가정폭력 전담, 파산 전담 등 다양한 전담재판부가 존재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법관이 재판이 아닌 업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전담은 사건의 유형을 구분할 뿐이며, 법관의 직무는 언제나 재판으로 유지된다.

 

그럼에도 내란전담재판부는 특정 사건을 전담해 재판 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헌성 논란과 특별재판 금지 원칙 위반 여부가 즉각 제기된다. 이는 법관의 직무가 법률과 헌법에 의해 얼마나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기준을 학교의 전담제도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학교폭력 전담 조사, 학교민원 처리 전담, 학교행정업무 전담 등은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대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교원의 전담 업무들이다.

 

이들 제도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된 이 업무들이 모두 법률로 정해놓은 교원의 특정직무인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폭력은 본질적으로 사법과 치안의 영역이며, 민원 처리와 행정업무는 행정기관의 기능에 속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전담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러한 이질적인 업무들을 학교로 이식시키고, 더 나아가 교원 개인의 직무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다.

 

요컨대 법관의 전담 업무는 사건의 유형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언제나 ‘재판’이라는 동일한 법정 직무 범주 안에서 전문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건 유형별 분화다. 반면 학교의 전담제도는 교원의 법정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행정·사법적 성격의 업무를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교원에게 이식하는 방식이다.

 


학교민원처리법, 학교폭력예방법...“교원 직무 범위 잠식 통치 기술”


교원과 법관은 모두 특정직 공무원이지만, 전담이라는 동일한 용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법이 정한 직무를 보호하는 장치인 반면, 다른 하나는 법정 직무로부터의 이탈을 제도화하는 구조다. 이것이 교원 전담제도의 본질이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학교민원처리법은, 국가 책임을 학교와 교원에게 이식하는 이 구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교원은 민원을 접수·처리하는 행정공무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학교민원’이라는 인위적 개념을 만들어 교원에게 민원 대응 전담팀을 구성하게 하고, 민원처리의 1차 창구 역할을 떠넘겼다. 접수증 발급 권한도, 처분 권한도 없는 교원에게 “왜 민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를 묻고, 그 실패의 책임만 교원 개인에게 귀속시킨다.

 

더 심각한 것은 민원 처리의 법적 책임을 행정기관이 아닌 교원인 교장에게까지 귀속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교장과 교사를 갈라치기할 문제가 아니다. 교장이든 교사든 모두 교원이며, 교원은 법적으로 행정기관의 장이 아니고 민원을 접수·처분·종결할 법적 권한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 주체성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교원 개인이 민원 처리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민원은 본질적으로 행정기관이 법률에 근거해 수행하는 행정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민원 처리법은 이 기본 원칙을 거꾸로 뒤집어, 행정 책임을 교원 개인에게 떠넘기는 전담 통치 구조를 제도화했다.

 

학교폭력 전담 역시 다르지 않다. 폭력 사건은 발생 장소와 무관하게 수사와 판단의 영역이며, 그 권한은 경찰과 검찰, 법관에게 속한다. 그러나 국가는 폭력을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분절하고, 전담이라는 명목 아래 이를 교원에게 맡긴다.

 

그 결과 교원은 교육자가 아니라 폭력 사건을 조사·정리·중재하는 전담 인력으로 기능하게 된다. 수사권도 강제 조사권도 없는 교원에게 “왜 폭력을 막지 못했는가”라는 질문만 반복된다. 이는 법적으로 부여할 수 없는 권한을 ‘전담’이라는 언어를 차용해 마치 권한이 있는 것처럼 외관을 만들고, 결과 책임만을 교원 개인에게 묻는 통치 구조다.

 

행정업무 전담도 마찬가지이다. 행정직 공무원이 전담팀을 구성해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교원이 자신의 법정 직무인 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혁신이다.

 

그러나 현실의 전담제도는 그와 정반대로 작동한다. 행정업무를 교원에게 전담시키고, 그 대가로 교육활동의 일부를 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원으로부터 행정업무를 분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교원의 본업이 아닌 행정업무를 교원에게 이식하는 전담 구조다. 법관의 전담이 재판이라는 동일한 법정 직무 안에서의 전문적 분화라면, 교원의 전담은 교육이라는 법정 직무로부터의 이탈을 구조화하는 전담이다.

 

결국 교원에게 적용되는 전담제도는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국가는 교원이 법에서 정한 직무를 더 잘 수행하도록 전담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의 법정 직무가 아닌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해 전담을 사용하고 있다.

 

전담제도는 교원의 직무를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직무 경계를 해체하는 통치 장치이다. 다시 말해, 교원 전담제도는 전문성 강화를 위한 업무 분화가 아니라, 헌법이 보호하는 특정직 공무원으로서 교원의 직무 범위를 잠식하는 통치 기술로 기능하고 있다.

 


헌법 한계 벗어난 교사의 '전담' 업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방식의 전담제도가 특정직 공무원 가운데 오직 교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직 공무원 중 법률이 정한 직무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전담’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 받는 직군은 교원뿐이다. 법관·검사·경찰·소방 그 누구도 법정 직무 외의 업무를 전담이라는 명목으로 떠안지 않는다. 전담이라는 동일한 언어가 교원에게만 직무 이탈과 책임 전가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특정직 공무원에게는 직무 수행에 따르는 위험을 전제로 한 사전적 보호 규범이 존재하지만, 교육이라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을 수행하는 교원에게만은 그러한 보호 체계가 부재하다. 법관의 재판상 면책, 검사의 기소재량에 따른 형사책임 제한, 경찰·소방의 직무적법성 우선 원칙, 일반직 공무원의 적극행정 면책과 대비될 때, 교원의 직무 판단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공백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 결과 교원은 교육법 체계에 따라 학생이라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가진 대상을 상대로 지도·훈육·평가를 수행했음에도, 법 적용의 단계에 이르면 그 지위가 배제된다.

 

교육법의 주체인 학생은 판단의 순간 일반적 의미의 아동으로 전환되고, 교원의 교육활동 역시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아동을 상대로 한 일반 행위로 치환된다.

 

그 결과 교원의 행위는 아동학대처벌법이나 아동복지법 등 일반 형사법 체계의 기준에 따라 재단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직 공무원으로서 법이 보호해야 할 교원의 전문적 판단은 고려되지 않는 반면, 책임은 일반 시민보다 더 무겁게 부과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야 할 교원의 교육활동이라는 법적 맥락은 삭제되고, 결과만 분리되어 교원 개인의 위법 행위로 환원되는 판단 구조가 고착되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폭력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직무상 행사한 물리력이, 직무 수행의 판단 단계에서는 경찰의 직무행위가 아닌 일반인의 폭력 행위로 전환되어 평가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즉, 경찰이 특정직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한 맥락과 그 법적 지위는 제거된 채, 결과만 분리되어 개인의 위법 행위로 환원되는 판단 방식이다.

 

이는 입법의 공백이나 제도 미비의 문제가 아니다. 전담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가 특정직 공무원 제도의 정합성과 직무보호 원칙을 교원에게만 적용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러한 전담제도 운영 방식은 단순한 제도 운용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한계를 명백히 넘어선 통치 방식이다. 특정직 공무원인 교원에게 법이 정하지 않은 행정·사법·민원 업무를 전담시키는 것은, 직업공무원제의 직무 특정성 원칙을 침해하는 동시에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구조적으로 잠식한다. 이는 법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교원을 통치의 대상으로 취급해 온 편의주의의 결과이다.


내란전담재판부와 교원의 전담 업무


내란전담재판부가 재판이라는 동일한 직무 범주 안에서 특정 사건을 전담하는 것만으로도 위헌 논란의 대상이 된다면, 학교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 비본질적 업무를 전담시키는 현재의 학교 전담제도 역시 같은 기준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반대로 내란전담재판부가 적법하다면, 그 판단 기준은 학교 전담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폭력 전담은 경찰 조직 안에서, 민원과 행정 전담은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이라는 행정기관 내부에서 수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전담제도의 정당성을 가르는 기준은 학교의 특수성도, 교원의 헌신도 아니다. 기준은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특정직 공무원인 교원의 본질적 직무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귀속이다.

 

교육을 살리는 국가는 법이 정한 교원의 특정직무를 보호한다. 교원이 책임질 수 없는 전담을 남발하지 않는다. 국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교원의 전담업무를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교원에게 떠넘긴 국가의 책임을 회수하는 일이다.

송미나 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소장
Copyright Ⓒ 2024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2명
100%
싫어요
0명
0%

총 2명 참여




12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대표전화 : 02-850-3300 | 팩스 : 0504-360-3000 | 이메일 : te@te.co.kr CopyrightⒸ 2024-25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