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송미나] "교원 보호 아닌 책임 전가"...학교민원처리법, 학폭법 따라가나

  • 등록 2025.06.16 1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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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행정에 갇힌 교실: 반(反)교육적 전환의 경고

 

더에듀 |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민원처리 지원법’(학교민원처리법)이 오는 21일부터 시행된다. 이는 「초·중등교육법」 제30조의10 신설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증가하는 민원에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도입됐다.

 

교육부는 민원 처리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감은 지역 실정에 맞는 지원 계획을 마련하며, 학교장은 민원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또한 전자적 민원 처리 시스템과 교직원 보호 방안도 포함되었다.


교원 보호?...실질적 책임 전가


입법 취지만 보면 교원과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고 전자 시스템 도입을 통해 학교의 행정 부담을 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법이 실제 작동하게 될 방식은, 과거 ‘학교폭력예방 및 처벌에 관한 법(학교폭력법)’이 보여준 실패 구조를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법의 형식과 명분은 보호이지만, 실질은 책임 전가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처음 도입부터 ‘예방은 학교가, 조사는 경찰이, 처벌은 사법기관’이 맡는 기능적 분담 체계를 전제로 설계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 앞에 ‘학교’라는 수식어를 붙인 ‘학교폭력’이라는 용어 조합은, 제도의 근본 취지를 왜곡시켰다. 그 결과, 학교폭력법의 실제 운영은 폭력 예방 교육부터 조사, 사실 확인(대응), 조치(판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가 학교에 집중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 조사 권한도, 법적 판단 능력도 없는 교원에게 폭력 여부의 판단, 사실 조사, 징계 절차까지 전가되면서,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준사법적 대응자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 간 갈등을 교육적으로 조정하기보다는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학교의 사법화’를 촉진하는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이번 학교민원처리법 역시 동일한 구조적 한계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민원 처리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청은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민원 접수와 응대, 설명, 회신, 후속 조치 등의 실무는 여전히 학교가 직접 감당해야 한다.

 

특히 법조항에서 ‘학교장이 처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만큼, 이 법은 학교민원으로부터 교원을 보호하는 법이라기 보다는 법조항 그대로 ‘학교민원처리 절차와 그에 대한 법적 응답 책임을 학교 내부로 귀속’하는 법에 가깝다. 교육활동과 교원 보호는 선언에 그칠 뿐, 책임은 현장에 집중되는 구조다. ‘보호’를 말하지만 법조항에 등장하는 보호는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교직원이 유일하다.

 

법 조항 어디에도 민원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교원과 학생 교육활동 보호라는 문구는 없다. 민원의 법적 전문지식이 없는 학교와 교원에게 민원 하나하나에 법적 책임을 지우고, 처리계획을 수립하라는 조항을 교육법에 끼워 넣는 행위는 학교를 학교가 아니게 만드는 위헌적 입법 폭력에 가깝다.

 

더욱이 이 법은 시행령 위임 조항조차 두고 있지 않아, 법률 자체의 개념적 모순과 집행의 왜곡이 하위 법령에서 조정되거나 완화될 여지조차 없다. 그 결과, 교원의 자격과 역할을 행정책무 중심으로 재편하는 왜곡된 법 구조가 그대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학교의 교육적 정체성과 교원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침식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예방교육, 대응, 처벌이라는 서로 다른 고유 전문영역을 학교에 일괄적으로 전가했던 실패 구조를 반복하는 셈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용어가 마치 폭력의 주체가 학교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듯이, ‘학교민원’이라는 표현도 학교를 행정 민원 처리 기관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교육기관이라는 학교의 정체성을 흐리고, 교원을 행정 절차의 담당자로 전락시키는 언어적 왜곡이기도 하다.


학교를 행정기관으로 취급하는 오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헌법상 교육기관의 지위와 행정기관의 기능을 혼동한 법 설계에 있다. 초중등학교에 민원처리계획 수립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초·중등교육법」 제30조의10은, 교육기관을 행정기관처럼 취급하는 입법적 오류를 그대로 드러낸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으며, 학교는 국민의 학습권을 실현하고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기관이다. 반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은 본래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을 대상으로 하며, 행정적 인허가·신청·처분 등 법률상 요구사항을 수용·조정하는 절차적 기제로 설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민원처리계획을 스스로 수립·시행하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비행정기관인 학교에 본래 행정기관에만 부여된 계획 수립 권한을 부당하게 귀속시키는 것으로, 이는 행정 기능의 귀속은 행정기관에 한정된다는 ‘기능 귀속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학교의 본질적 정체성과 독립성을 침해한다.

 

설령 학교를 ‘준행정기관’으로 간주하더라도, 보건소·우체국·주민센터 등 행정서비스 기관 중 어느 곳도 ‘기관명 + 민원’을 조합해 별도 조항으로 법에 명시하지 않는다. 실제로 「보건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률 어디에도 ‘보건소민원처리계획’, ‘우체국민원처리계획’과 같은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유독 교육기관인 학교에만 ‘학교민원’이라는 용어를 명시하고, 이를 법적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 원칙에도 반한다.

 

교육기관이 민원 행정의 책임 주체가 될 수 없음에도 이를 전제로 한 입법은, 학교를 일반 행정기관과 동일한 책임 구조 안에 편입하고, 교원에게 과도한 행정책무를 부여하는 차별적 입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학교민원처리법이 실질적으로 교원을 보호하는 제도로 작동할지, 아니면 학교를 민원처리 행정기관으로 기능화시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유치원이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며, 이는 법적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명확한 구조적 한계다. 교원과 교육활동을 보호하겠다는 선한 의도의 입법이 실제 현장에서는 취지와 다르게 역기능으로 활성화되어 오히려 교권침해를 가속화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학교, 교육 언어 아닌 행정 언어의 장으로?


현재 교권 침해의 다수는 교원의 교육적 지도 언어가 사법적 개념으로 치환되면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학교민원처리법 시행을 앞둔 지금, 현장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컨대 학교폭력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학교폭력법 이후, 학교에서는 ‘갈등’, ‘조정’, ‘회복’이라는 교육의 언어는 사라지고, 오히려 ‘신고’, ‘피해자’, ‘가해자’, ‘처벌’이라는 사법 언어가 학교 현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학교민원처리법이 시행되면 ‘상담’, ‘피드백’, ‘교육적 의견 제시’ 같은 본래의 교육적 소통 용어들이 ‘민원’, ‘특이민원’, ‘처리계획’ 등 행정 절차 중심의 언어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변화가 아니라, 학교의 역할과 정체성, 교원의 권한 구조 자체를 행정 중심으로 전환하는 체계 변화이며, 학교가 교육의 언어로 작동하지 못하고 행정 언어에 종속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특이민원’과 ‘민원상담’이라는 교육부의 용어 사용은 법 개념의 중대한 오남용이다. ‘특이민원’ 범주에는 무고, 명예훼손, 성희롱, 협박 등 민원이 아닌 형사범죄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학교가 자체 분류하고 대응하게 한 것은, 사법 판단을 교육기관이 대리하도록 하는 구조적 오류다. 이러한 법 개념의 왜곡은 피해 교원이 형사적 범죄 피해를 입고도 민원 절차로만 대응하게 되어 이중 피해를 야기한다.

 

‘민원상담’ 역시 상담을 행정 민원과 결합함으로써 교사를 민원 담당자로 위치시키는 언어적 왜곡을 발생시킨다. 이는 교사의 수업지도, 생활지도, 상담, 교육과정 운영 등 전문성과 자율성 기반의 교육활동 전반을 행정 절차에 종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학교민원처리법은 학부모나 학생의 교육활동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조차도 ‘교육적 피드백’이 아닌 ‘민원’으로 간주하게 만들며, 그 처리 역시 행정 절차의 대상이 된다.

 

이로 인해 학교는 교육적 소통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관계가 단절되고, 교원은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민원 처리자가 되는 기형적인 역할 구조에 놓이게 된다.

 

‘민원’이라는 행정 언어가 ‘교육’이라는 본질 언어를 대체하는 흐름은, 교육의 정체성과 철학을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전환이며, 지금 시점에서 반드시 재고해야 할 입법 방향이다.

 


잘못된 교육부의 ‘학교민원 응대 안내서’


2024년 교육부의 「학교민원 응대 안내서」에 제시된 ‘민원 분류·처리 체계’는 용어 정의의 부재와 법적 개념의 오용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안내서는 민원을 교무업무와 행정업무로 나누고, 교(원)감과 행정실장을 각기 책임자로 명시하였으나, 이는 교무업무가 행정사무라는 잘못된 전제를 전제로 한다. 교육과정 운영, 생활지도, 성적평가, 학부모 상담 등은 교육전문성이 요구되는 교육 고유의 영역으로, 행정처분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를 민원으로 분류하는 것은 교원의 자율성을 행정절차에 종속시키는 위험한 시도이며,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민원 대응기관’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이, 교육부는 교감을 ‘교권보호책임관’으로 지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교권보호책임관’이란 용어는 「초·중등교육법」, 「교육공무원법」, 「교원지위법」 등 주요 법률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비법률적 직책이며, 현재 교육청 내부 매뉴얼 등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행정편의에 따른 일종의 관행적 명칭에 불과하다.

 

교감은 교원의 자격을 가진 교육전문가로서 학교장의 교육활동을 보조하는 교육책임자이지, 행정민원을 처리하거나 행정적 분쟁을 조정하는 사법적 지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무업무를 민원으로 뷴류해 이에 대한 민원 접수 및 응대 책임을 교감에게 지우고, 교감의 직무를 ‘민원 대응 관리자’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구조는 교원자격의 지위와 업무를 왜곡하며, 교육 전문성과 학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러한 안내서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율성과 교원의 권한 구조를 행정 편의 논리로 축소하는 방식이며, 즉각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교장을 행정기관의 장으로 오인


마찬가지로 교장을 교육전문가가 아닌 행정기관의 장으로 간주해 민원계획 수립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도 교원의 자격 취지를 혼동한 입법이다. 이는 교장을 행정책임자, 교사를 교육 실행자로 이분화하며 교원 정체성을 분열시키고 있다.

 

제주 사건에서 만약 희생자가 교사가 아닌 교장이었다면, 학교민원 책임의 귀속은 더욱 심각한 법적·제도적 부조리를 드러냈을 것이다. 교원 조직은 자격별 고유 역할이 분명한 수평적 구조이며, 교장은 행정공무원이 아니라 교사·수석교사·교감과 동일한 교원 자격군에 속한다. 따라서 교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사 민원에 대한 전적인 법적 책임을 지는 구조는 정당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학교장의 행정적 책임이 ‘교장’이라는 교원 자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교장’이라는 직무 명칭에 따라 부여되지만, 정작 그에 상응하는 법적 권한이나 집행 권한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학교장은 명목상의 대표성만을 지닌 채 실질적 권한 없이 책임만을 지도록 설계된 이중적 지위 구조에 놓여 있다. 이처럼 교장과 학교장 사이의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하는 구조는 전면적인 법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민원 처리는 본래 행정기관의 고유한 책무이며, 교원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교장이 학교장으로서 형식적 명의자가 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 민원 처리의 책임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현 제도는 교장을 행정업무 전담 자격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으며, 이는 특정 교원 자격을 민원 책임의 희생양으로 삼는 ‘교원 갈라치기’식 입법 관행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안 중 행정업무는 행정직이, 교육적 피드백은 교원이 담당해야 하며, 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사안은 외부 사법기관이 개입해야 한다.


용어가 바꾼 학교 현장, 용어가 바꿀 학교 현장


‘학교민원’이라는 단일 범주로 모든 요청을 포괄하는 현 입법용어는 민원 이라는 용어에 대한 현장교원과 입법자 간의 개념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드러내며, 교원을 행정과 사법 사이에서 구조적으로 압박받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학교민원’은 교육기관의 성격과 맞지 않는 언어이며, 피드백·상담·소통·의견제시 등 본래 교육적 행위는 ‘교육과정 피드백’이나 ‘학교공동체 소통체계’ 같은 교육기관 중심의 권한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교무업무와 교육활동이 행정의 언어인 ‘민원’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되며,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은 교육의 언어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법 도입 이후 교육의 언어는 사법의 언어로 전환되었고, 이제 학교민원처리법은 교육의 권한 언어마저 행정의 언어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교육기관의 본질을 행정과 사법의 절차로 환원하는 반교육적 흐름으로, 교육활동 전반을 민원과 형사책임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구조적 왜곡이며, 결국 교육의 자주성과 고유성을 침해하는 제도적 퇴행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교권 침해가 제도적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악화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모호하고 정합성이 부족한 법적 용어가 무비판적으로 입법에 반영되고, 그에 기반한 제도가 오히려 해당 용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교무행정업무’, ‘학교민원’, ‘특이민원’, ‘민원상담’ 등은 그러한 언어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용어들은 교육기관의 본질적 기능과 교원의 직무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결국 교실을 교육의 장이 아닌 행정과 사법의 절차로 전락시키는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학교나 교원은 언제 존중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도 학교와 교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나 교육전문가로서 교원을 존중한 적이 없었다.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비본질적 행정업무의 분리와 이관 요구조차 ‘행정업무 주체와의 권한 갈등’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으로 치환해 묵살해 왔다.

 

학교가 요청한 것은 단순한 행정업무 분리가 아니라, 교육기관으로서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보장이었지만, 정책과 행정은 교원과 행정직원 간 갈등 문제로 축소하며 오히려 교원에게 책임을 추가해 왔다. 비본질적 업무의 이관은커녕, 오히려 입법과 정책은 교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전제로 한 사법적 업무까지 강제하며, 학교는 교육의 본질이 아닌 갈등관리의 장으로 재편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전통적인 비본질 업무에 ‘민원’이라는 행정 프레임을 입혀 교육활동마저 공공행정의 절차 대상으로 보겠다는 시도를 법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발상이다.

 

학교의 모든 교원은 민원과 폭력으로부터 국가의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 교육전문가이며, 행정기관의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행정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시행되는 학교민원처리법은 민원을 ‘시스템’으로 해결하겠다는 명분 아래, 민원 대응의 책임을 학교에 일방적으로 전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학교와 교원에게 실질적인 부담만을 지우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행정공무원이 아닌 교원은 민원을 담당할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이 법에 의해 책임을 떠안게 되는 부당한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계획 수립’이 아니라, 민원 업무에 법적 책임이 없는 교원을 누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해법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도 그 운용 주체가 학교이고 책임이 교원이라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책임 전가일 뿐이다.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민원 시스템의 확대나 정비가 아니라, 교사의 교육활동을 형사법적 위험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의 마련이다. 수업, 평가, 생활지도, 상담 등 교사의 교육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 실현의 정당한 작용이며, 그 고유성과 정당성은 법적으로 명확히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적 행위가 위법성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헌법상 교육권의 침해이자 교육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제도적으로 원천 차단되어야 한다. 이제는 기존의 입법 관성과 정책 인식을 전환하는, 근본적인 입법·정책 패러다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교육 선진국들처럼 교육활동을 형사법 체계로부터 명확히 분리하고, 형법에 ‘교육 목적 행위에 대한 위법성 조각’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이는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처럼 추상적 개념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법성 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하고 실질적인 해법이다.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에도 교원의 적법한 직무 수행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단서 조항을 두어야 한다. 의료인·법조인처럼 교원도 전문직으로서의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며, 정당한 교육활동이 형사법 체계의 해석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적 진입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교원지위법』에는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를 교육권 침해로 간주하고 명문화해야 한다. 사후 무혐의 처분만으로는 교원을 보호하지 못한다. 교원의 교육행위가 형사법 영역에 진입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차단하지 않는 한, 어떤 민원 시스템도 실질적인 보호가 될 수 없다. 학교민원처리법이 정당하다면, 국회의 민원은 국회의원이 직접 처리하고, 그 책임은 국회의장이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민원처리법 역시 정당하지 않다.

 

교육은 행정이 아니다. 법령에 담긴 단어 하나가 교육의 성격을 바꾸고, 잘못된 용어 하나가 왜곡된 제도를 정당화한다. 법은 정의로운 문제 정의 위에서만 기능을 다한다. 정의롭지 않은 법은 아무리 선의로 포장돼도 교육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교원은 교육 전문가다. 교사의 교육활동 실천은 결과와 더불어 ‘행위 자체’에 교육적 가치가 있다. 수업, 생활지도, 상담, 기록, 징계 등 모든 활동이 형사 위험에 노출된 현 구조는, 결국 누구도 교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게 만든다.

 

교원들은 수년간 비본질적 행정업무의 이관을 요구해 왔다. 학생의 학습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은 사법과 행정기반의 권한 언어로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육기관, 교원의 업무는 학생교육활동이라는 대원칙이 무력화된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교원이 교육활동의 질 보장을 위한 본연의 교육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교무업무 외의 민원·폭력·행정 대응은 법적 정체성에 부합하는 별도의 외부 전문기구가 맡아야 한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헌법이 보장한 공공성과 전문성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를 지속해서 민원이나 형사책임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현재의 법 제도는 교육법의 외형을 갖춘 반교육적 체계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원 보호 계획’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권 회복을 위한 입법’이다. 이러한 조건 없이 시행되는 법은, 폐지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송미나 광주 하남중앙초 수석교사/ 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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