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아이들 성장 기록Ⅱ] 유태리 학생 "학교에 만든 클라이밍장, 모두의 운동으로 태어나"

  • 등록 2025.12.15 1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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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지난해에 이어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 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여러분 모두 3학년 교실 옆에 있는 클라이밍 벽 한 번씩 보셨죠? 네, 바로 제가 만든 벽이에요.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지금부터 제가 클라이밍을 진심으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 온 과정들을 이야기 해드릴게요.

 


내가 진심으로 즐기고 싶었던 운동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에요. 혹시 여러분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때가 있었나요? 저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그것을 조금씩 느꼈어요. 4년 동안 클라이밍을 꾸준히 다녔지만 처음 클라이밍을 접했을 때의 그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죠.

 

제가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4년 전이예요. 6학년 때 하기로 한 클라이밍 체험을 못 하게 된 게 한이 맺혀서 집 근처 클라이밍장을 다니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도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높은 난도를 금방금방 쉽게 풀어내면서 ‘아!! 이 운동은 오래 하겠다’ 라는 감이 딱 왔거든요.

 

도전 과제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각자의 장점과 방식을 이용해서 풀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 점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줘서 실력이 느는 속도를 더 붙여 주었죠.

 

하지만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하는 시간에 비례해 실력이 함께 늘지 않고 정체기가 오는 것을 느꼈어요.

 

금산간디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같이 수업을 듣는 또래 친구들과 같은 시간대에 만나서 놀고 헤어지는 걸 반복해서 클라이밍장을 갈 때마다 어색할 일이 없었죠. 그런데 금산간디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는 클라이밍장을 갈 시간이 없다 보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주말에 가끔 가거나 방학에만 회원권을 끊어서 다녔는데 예전에 같이 놀던 애들은 전부 학원다니느라 잘 나오는 일이 없었고, 갈 때마다 어색한 사람들과 수업을 듣다 보니 같이 재밌게 수업하기보다는 남들의 클라이밍 실력을 자꾸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초보자로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도 늘 새로웠고 누가 잘하든 못하든 다 같이 고민도 해 보면서 문제를 풀었는데 자주 나오지 않으니까 문제보다 문제를 푸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어요. 그만큼 제가 느끼는 주변 시선들도 점점 많아졌고, 이런 방식으로 클라이밍장을 다니다 보니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혼자서 운동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친구랑 함께 클라이밍장을 다녀왔어요. 평소 편하게 지내던 친구와 같이 클라이밍을 하니 주변의 시선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 취미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는 운동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왔어요. 제가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으로 모두와 같은 마음을 느끼고 싶었죠.

 

더 나아가서 아예 학교에 클라이밍 벽을 만들어서 친구나 후배들과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클라이밍은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벽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클라이밍 문화를 자리 잡게 하고 싶었죠. 그 바람은 곧 1년간의 장기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무모하기도 한 도전이었지만 다 같이 클라이밍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힘차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죠.

 


등산학교에서의 인연


벽을 만드는 작업을 설명하기 이전에 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큰 동력을 불어넣어 준 경험을 하나 소개할게요.

 

바로 방학에 다녀온 코오롱등산학교예요. 6박 7일 동안 산 위의 깎아지른 바위를 등반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고 많은 인연을 맺었어요.

 

바위를 오르는 동안 의지하고 매달릴 줄을 묶는 매듭법, 먼저 올라가는 선등자와 뒤따라 올라가는 후등자 간의 신호법, 중간중간 쉬는 포인트에서 안전하게 쉬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 등 안전을 위한 기술을 배웠어요. 모두 처음 해 보는 생소한 기술들이었지만 매일 벽을 타면서 기술을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정말 새롭고 재미있었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높은 산에서 진행하는 만큼 낙석 같은 위험한 변수도 많았고,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 낯설기도 했지만 이런 점들은 같이 등반하는 사람들과의 동질감을 단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같은 목표를 보고 오른다는 것에서 클라이밍이 팀 스포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속감과 동질감을 많이 느꼈고요. 어색한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벽을 타는 건데도 혼자 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혼자 허허벌판을 돌아다니다가 마을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바위를 오르다 보면 가장 많이 듣고, 또 외치는 말이 있었어요. 먼저 올라간 선등자가 줄을 당겨주면서 바위를 올라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늘을 보고 ‘줄당겨’라고 하면 위에서 듣고 줄을 당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발 딛는 자리가 불안하거나 손을 놓치기 직전이라면 너나 할 거 없이 ‘줄당겨! 줄당겨!!’하고 다급하게 외치게 되어서 꽤 진풍경이 펼쳐졌죠. 이제 왜 사람들이 다 같이 산에 다니고 함께 클라이밍을 하러 가는지 깊이 실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어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점인지 모르겠는데, 등산학교 사람들 모두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인연이 되어 있었어요. 같은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분들과 같은 방을 함께 썼던 분들, 그리고 강사님들까지 연락처를 교환하고 서로 아쉬워하며 다음 등산학교 때 보자는 말을 남겼어요.

 

전 솔직히 이렇게 깊이 몰입하더라도 다시 집으로 오면 금방 잊힐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제가 먼저 다시 만나고 싶었던 강사님에게 같이 산에 가자고 연락하고 있었죠. 그렇게 새삼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이렇게 반가운 일인지 몰랐어요. 어떤 선생님은 나중에 직장을 다니게 되더라도 산에 가게 되면 꼭 연락해달라는 말도 해주셨고 등산학교를 주최한 코오롱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해 주셨죠. 제가 보고 느끼던 클라이밍에서의 세상이 한층 넓어졌다는 것을 오래 여운이 남도록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업


등산학교를 다녀온 뒤 방학부터는 벽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어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합판을 전부 붙인 뒤에는 얼추 벽의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벌써 완성된 것 같은 겉모양에 신나서 바로 홀드 몇 개를 합판에 붙여 봤어요. 매달려 보니 클라이밍장에서 홀드를 잡고 매달릴 때와 똑같은 그립감에 저는 환호를 질렀어요. 먼 길을 달리고 있는 도중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죠.

 

이제 드디어 학교에서도 클라이밍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되니 텐션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한동안 흥분한 상태로 매달려 있다가 다른 홀드도 붙여 보고 하면서 한동안 들떠 있었어요. 그동안 작업 중간에 힘 빠지는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벽이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게 위로되는 느낌이었죠. 클라이밍이 단순히 혼자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닌 함께할 때 진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만들어지는 학교 문화


벽을 만드는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면 클라이밍 문화를 학교에 스며들게 하는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어요.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업을 개설하고 목요일 동아리에도 클라이밍 동아리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해야 했죠.

 

학생 개설 수업은 그런 제 활동의 중심이 되는 활동이었어요. 예준이와 함께 복싱과 클라이밍 수업 ‘오르락 때리락’을 열기로 하고 수업을 준비했어요. 수업할 때 서로의 수업을 보조 해주고, 앞으로 6차시 동안 진행할 수업의 세부 계획을 함께 짰어요.

 

학습분기가 시작된 뒤 수요일 건강교과에서 바로 첫 수업을 진행했어요. 3학년 교실에 모여 그날 할 수업 내용을 알려주고 예준이의 복싱 수업을 먼저 보조교사로 같이 진행했어요. 복싱 수업이 순조롭게 끝난 뒤로는 쉬는 시간을 가지고 바로 제 수업을 진행했죠.

 

먼저 클라이밍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삼지점을 알려주고 쉬운 문제를 중심으로 레벨테스트를 했어요. 특히 삼지점은 다른 동작으로 나아갈 때도 잘 활용해야 해서 한 번씩 삼지점을 이용한 문제를 풀어본 뒤에 자유롭게 문제를 풀게 했어요.

 

한 명씩 벽에 붙어서 문제를 풀면 제가 뒤에서 자세를 봐주는 방식으로 쭉 진행했어요. 중간중간 긴 문제인 지구력 문제도 만들어 주면서 각자 난이도에 맞게 문제를 풀었어요. 애들한테 잘 설명하다가 저도 잘 모르겠어서 막히는 부분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 잘 알아들어 주었고 재밌게 수업이 진행됐어요.

 

수업계획서를 쓸 때만 해도 제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막상 수업을 진행해 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동안 줄곧 저 혼자만 진심이었던 클라이밍에 다른 사람도 점점 진심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죠. 쉬는 시간 틈틈이, 심지어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밤에도 열정적으로 벽을 타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또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제 수업을 들은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 주는 등 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많이 보였고 덕분에 절로 뿌듯함이 들었어요.

 

벽이 완성되고 문제를 몇 개 만들어 놓자마자 와서 문제를 풀어보는 애들이 많았던 만큼 이미 클라이밍에 감을 잡은 친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쉬는 시간마다 벽에 모여서 이것저것 해 보고 벽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며 벌써 목표가 이루어진 것 같아서 저도 계속 들떴고요.

 

점심을 먹고 벽으로 가보면 항상 애들이 있었고, 저도 신나서 암벽화를 가지고 애들한테 달려갔어요. 문제 푸는 법을 알려주다가 수업에서 진행할 내용을 먼저 알려주기도 하면서 제가 설치한 벽이 만든 변화를 기쁘게 느꼈어요.

 


내가 주는 영향들


저는 서로 간의 갈등으로 관계를 외면하고 싶더라도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것에 이끌려 금방 돌아오고 마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예민하게 느끼는 것도 많았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 힘들어하기도 하죠. 얼마 전까지는 제가 이뤄낸 것들의 주축이 저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벽을 만들고 수업과 동아리를 진행하면서 제가 주변에서 받은 영향만큼 제가 주는 영향도 얼마나 컸는지 체감할 수 있었어요. 벽을 만들기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벽이 완성되자마자 찾아와서 벽을 탔던 친구들과 제가 연 수업에 들어와 준 친구들까지 넘치는 관심을 받으며 깨달은 것이었어요.

 

많은 깨달음 중에서 가장 기쁜 점은 어떤 것이 되었든 제가 한 만큼의 보답이 저에게 돌아왔다는 것이에요. 3년 동안 제게 많은 안정을 준 것은 저희의 공동체였기에 더 좋게 만들고 싶었고, 더 오랫동안 따듯했으면 했어요. 그 바람이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공동체에 더 열정을 기울이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보답 덕분에 저는 다시 무엇이든 할 힘이 생겨나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는 동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하나의 취미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운동을 논문으로 거쳐서 저에게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내었으니까요.

 

논문 작업을 하면서 힘들고 싫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변화한 만큼 앞으로도 도움이 될 밑거름을 남겨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더 많이 들어요. 그동안 했던 작업의 마무리도 잘 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벽이 단지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유태리 금산간디학교 학생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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