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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지난해에 이어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 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
시작하며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을 접할 일이 많았어요. 덕분에 그림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죠. 그림책에서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이 가득했고, 저에게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유로운 공간이었어요.
그런 그림책을 1학년 때 수업에서 만들어 보았어요. 저는 원하는 대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연결됨을 느꼈어요.
이 경험을 떠올리며 또다시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어 논문으로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어요. 예전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보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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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작업 순서: 1년 동안 꾸준히 해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작업 순서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 작업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1) 전하고픈 메시지와 주제를 정하고, (2) 주제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요. (3) 그리고 스토리보드로 만들죠. 스토리보드는 페이지마다 그림과 글을 배치해 보는 작업이에요. (4) 출판하기 전 대략적인 느낌을 알기 위해 더미북을 만들어요. (5) 마지막으로 원화를 그리고 (6) 편집 후 출판사에 보내 출판해요. |
그림책을 만들다 : 감정 방울
제가 구상했던 그림책의 첫 번째 주제는 ‘감정 방울’이에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했던 저는 감정을 말하는 걸 어려워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저의 힘든 감정을 짊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죠.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은 끝내 눈물과 함께 새어 나왔고, 결국 저는 부모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았어요.
그전까지 저는 부모님께도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어요. 한 번 용기를 내어 말하니 마음이 후련해졌고,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졌어요.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런 저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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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만 갇혀 비눗방울을 불지 않던 나 주변에 날아다니는 방울들이 내게 날아와 터지며 색깔들이 묻어난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내가 분 비눗방울로 얼룩지진 않을까 불지 못한다. 망설인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늘 보고만 있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답답해” 친구들이 부럽다. 용기 내어 천천히 불어본다. 크게 크게 멀리 더 멀리 올라가 터진다. 물감이 알록달록 튀고 내 안에 무언가가 같이 터진다. 어디선가 비눗방울들이 나한테 날아와 터지며 물든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친구들이 장난을 친다. 어느새 모두가 알록달록하다. 다채롭고 예쁘게 모두의 색이 묻어난다. |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늘 보고만 있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답답해” 이 말은 어떤 친구가 제게 해준 말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에요. 평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제가 이 말을 계기로 제 모습을 인지하게 되었죠.
문득 떠오른 비눗방울이란 소재를 사용해 비눗방울에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실어 터트린다는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이것이 감정 방울이 되었죠.
하지만 ‘감정 방울’은 계속 이어가지 못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노트를 펼쳤을 땐 감흥이 없었거든요. 그림과 글도 어색했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과감하게 내려놓기를 택했어요.
하지만 이 그림책을 만들던 시간은 제게 있어 큰 전환점을 가져온 경험으로 남았어요. 혼자 안고 있던 화, 짜증, 슬픔, 힘듦 그리고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미워하는 감정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고요. 이 과정이 있었기에 한층 성장한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죠.
시선과 기대와 눈: “너는 분명 잘하겠지. 기대하고 있을게~”
저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부담을 느꼈어요. 저를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에게는 잘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죠. 논문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 쓰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만든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했어요. 무작정 잘해야 한다며 압박했어요. ‘잘’의 기준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면서 말이죠.
두 번째 주제는 시선과 기대예요.
첫 번째 주제를 접고, 처음부터 다시 주제를 잡아야 했던 때. 제게는 여러 가지 주제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어요. 하지만 스쳐 갈 뿐 남아있는 건 없었죠.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던 저는 스토리를 잡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내가 주제를 쉽게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지’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가만히 사색하다 보니 제 마음 한구석에 잘하고 싶다는, 아니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기대에서 비롯되었죠. 저는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고, 마음은 무겁고 힘들어져 갔어요. 그때의 심정을 그림책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눈동자라는 소재를 사용해 타인의 시선과 스스로의 기준 속에 갇혀버린 저를 표현했어요. 등 뒤에 맨 상자는 기대로 인한 부담인데 제가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짐이 되어버린 것이에요.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고, 오히려 꽁꽁 싸매버리죠.
현실로 돌아왔을 땐 자신을 바라보던 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수많은 눈동자는 사실 자신이 압박감으로부터 만들어 낸 착각일 뿐이었던 것이죠.
스토리를 짜며 찜찜한 기분이 들었어요.
| 마침내 돌아온 세상은 그곳과 달랐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엇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어떻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6기 |
이 문장에서 주어진 일을 회피하려는 제가 보였거든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포장하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논문에 대한 책임감에서 도망치고 싶은 저를 합리화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기엔 그동안 한 것들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제 그림책을 ‘기대’라는 키워드로 밀고 나가기로 했어요.
선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림책으로 완성된 저의 마지막 주제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아 만들었어요. 여름방학에 꽃자리 그림책 상생학교를 다녀온 뒤 ‘기대는 선물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에요.
사람들이 기대와 응원을 하는 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기대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죠. 받은 선물이 매번 마음에 들 수만은 없을 테니까요.
저도 선물을 받듯이 기대를 고맙게 받고 싶었어요. 만일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저의 결과물이 실망스럽다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시선에 얽매여 회피하려던 저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자신을 마주했어요. 저는 스스로에게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고, 기대한다는 말과 잘할 거라는 말에 걱정부터 했어요. 그럴 때마다 더욱 자신을 옭아매기만 했던 저는 한없이 작아지기를 번복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이 저를 갉아먹기만 한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지금까지의 내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담을 느끼며 자신을 더 조이는 게 아닌 ‘고마워’라고 응원으로 받고 싶었어요. 만약 다음에도 어떤 말들을 듣게 된다면 그게 무엇이든 자신을 압박하지 않고 “할 수 있어”라고 의지할 수 있는 내가 되려 해요.
나에게: 그런 마음을 담아낸 그림책 <나에게>를 읽어드릴게요
어느 날,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분명 잘해 내겠지. 기대하고 있을게~”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대한 결과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잘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옭아맸다.
다음날, 나는 ‘내 안에’ 갇혔다. 어둠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그 애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내가 묶은 밧줄 때문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미안해. 네가 힘들길 바란 건 아니었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몰아세웠어.”
그 애가 답했다. “나는 너인데, 네가 너를 옭아맬 때마다 나도 힘들었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내가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그곳을 빠져 나왔다.
“너는 분명 잘할 거야. 기대할게~”
이제 그 말이 응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 선물을 기쁘게 받았다.
“기대해줘서 고마워~”라고.
마지막 : 나를 읽다
저는 그림책 한 장면 장면마다 작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 그렸어요. 첫 장면에서 보인 밧줄의 색깔은 어둡고 진한 색이에요. 그렇지만 사건이 해결되고 난 후에는 밝고 다채로운 계열로 바뀌어 있죠.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저를 담아냈어요. 이 장면은 마음속에 따스함이 충족되어 가고 있는 것을 표현했어요.
선생님들 앞에서 제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었던 날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죠. 그날 저는 아무 글 없이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떠올려 설명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제 목소리를 타고 들려왔어요. 정말 저 자신에게 해주는 말 같아 와닿았죠. 글을 읽는 게 아닌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의 울림을 이 그림에 표현하려 했어요.
마지막 장면에 선물 상자는 앞서 밧줄을 만들 때 사용했던 콜라주 종이를 그대로 사용했어요. 전에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부담으로 받아들이고 압박했다면, 지금의 나는 선물로서 응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해요. 같은 말이지만, 저의 태도에서부터 그 말이 지닌 의미가 달라지겠죠.
선물 상자에 뚜껑이 열려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그대로 마주한 것을 나타내고요.
마무리하며: 시행착오가 만든 단단함
논문을 시작하기 전, 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봐왔던 그림책들 모두 제 일인 것처럼 공감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1년간 작가가 되어보면서 독자의 시선에 맞추려 하는 그림책은 이야기가 단단하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림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 싶은지’였죠. 저의 그림책을 보며 좋게 봐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개의치 않고 제가 전하고 싶은 그대로 해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저는 전보다 좀 더 가볍게 기대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보살피고 있어요. 가끔 예전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해요. 앞이 막막할 때 미리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림책을 한 권밖에 만들지 못했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한 권이나 만들었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한 권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오랜 시간을 들였기에 지금의 그림책이 나올 수 있었어요.
감정을 쌓아두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하던 나를 내려놓았고, 마음 깊이 있던 ‘나’와 마주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한층 더 몸과 마음이 단단하고 가벼워졌고요. 제 고유의 섬세한 성격은 변함없겠지만, 하나둘씩 안 좋은 습관들은 내려놓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고 싶어요.
온전한 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림책 한 권을 만들었던 것처럼 또다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만들어 갈 것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