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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2022년 기준 학업중단학생이 매년 5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중단 학생들은 대안교육기관을 통해 기초·기본 교육을 받으며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력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기관에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또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더에듀>는 지난해에 이어 금산간디학교 아이들이 작성한 자신의 성장 기록을 통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
마음을 돌보는 음악, 볕뉘
‘마음을 돌보는 음악 만들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내 이야기를 담아 곡을 만들며 느끼는 여러 긍정적인 감정과 뿌듯함으로 나를 돌보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의 심신을 돌봐주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죠.
볕뉘는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이에요. 어려운 시간에도 추억과 사랑의 존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저와 잘 맞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요동치는 희망을 담은 세 곡을 이어주는 단어가 볕뉘입니다.
나에게 영감을 준, 가사 없는 음악
저는 가사가 있는 노래보다 OST 장르를 즐겨 들었어요. 특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에 나오는 오케스트라 삽입곡들은 들을수록 신비로워서, 제 가슴 속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했죠.
가사 없이 선율만으로도 상당한 울림을 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이런 종류의 음악은 예민한 제가 불안하거나 힘들 때, 여기저기로 퍼진 감각들을 모아 안정되게 해 주었어요.
피아노와 만나다
8살 때 친구를 따라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그곳에서 기초를 배웠고, 집에 피아노를 들여 심심할 때마다 쳤어요. 피아노는 금세 저의 취미로 깊게 자리 잡았죠.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떠났을 때도 피아노가 좋아서 개의치 않고 계속 다녔어요. 늘 친구가 하는 것을 따라 해야 마음이 편했던 제가 처음으로 혼자서 계속했던 것이 피아노였죠.
선율을 만드는 즐거움
저는 학원에서 배우는 곡들을 연주하는 것보다 선율을 만들어 치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피아노를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선율이 떠올라 손으로 연주하고 있었죠.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까먹어 버렸지만, 멜로디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그것을 생각하여 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어요.
저는 시나 글 등으로 제 생각을 형상화하여 바라보면 문제가 저에게서 분리되어 정리된 것 같이 느껴지고, 여러 가지 해결책들이 떠오르기도 해요. 마찬가지로 곡에 저의 고난 또는 소소한 기쁨들을 담아내면, 작품으로서 저의 상황을 바라보며 아픔을 치유하고, 행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첫 번째 곡, ‘산 비‘
저의 첫 번째 곡은 산을 생각하며 만든 ‘산 비’입니다.
산은 저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어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는 커다랗고 울창한 산, 그리고 모험 이야기가 주를 이뤄요.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커다랗고 고즈넉한 산속을 탐험하며 살고 싶었어요.
하늘 높이 낀 안개와 커다란 산을 보면 제 존재가 너무 작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이 곡에는 커다란 산에 압도되어 무력해지기 보단 기쁜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담았어요. 그래서 잔잔하면서도 슬프지는 않은 느낌이죠.
이 곡은 산을 볼 때의 설렘과 긴장되는 모험심을 여러 동양적인 선율과 음의 높낮이로 표현했어요.
곡의 시작 부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산속 숲을, 중반 부분에는 비가 내려 기뻐하는 풀과 나무, 그리고 동물들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마지막 부분엔 내리던 비가 서서히 멈추듯 소리가 점점 작고 느려져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비 내린 후 햇빛이 드는 숲이 떠올라요. 듣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느낌대로 이야기를 상상하길 바라요.
두 번째 곡, ‘빈집‘
저의 두 번째 곡은 빈집이에요.
곡에 저의 어떤 마음을 담아낼지 고민하며 산책을 하다 주위를 보니 폐가 한 채가 있었어요. 문득 이 곡이 누군가 머물다 떠난 집의 외로움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그 외로움은 따뜻함이 떠나고, 상실감이 남은 제 마음과 닮아 보였어요.
5학년 겨울에 집을 리모델링했어요. 노란 나무 바닥과 책장, 지저분했던 텔레비전 밑 서랍장은 사라지고, 하얀 바닥이 깔렸죠. 새롭게 바뀐 집이 신기하고 좋은 동시에 아쉽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6학년이 되었어요.
그 무렵 이전과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저는 관계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함께한다는 안정감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느꼈죠. 앞에선 친했지만 뒤에선 서로의 안 좋은 이야기를 했고, 다투는 일도 잦았어요.
6학년 겨울, 친구와 다투다 머리를 많이 맞았어요. 누군가 도와주길 바랐지만 모두 그저 보고만 있었죠. 맞았다는 충격과 의지했던 친구들에게 느낀 상실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어요.
예전 친구들과도 이미 멀어진 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말투와 행동이 과격해진 자신을 인지하니 순수했던 옛날, 그리고 옛날 집이 너무나도 그리워졌어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중학교에서도 계속됐어요. 저는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극도로 회피했어요. 반응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았죠. 친구의 미운 행동이 반복되었을 땐, 내가 말을 제때 안 한 탓에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어요. 어느새 불안이 심해진 저는 친구들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를 놀리면 제가 싫어서라고 생각했고, 아예 장난을 걸지 않아도 제가 친구가 아니기 때문으로 여겼어요. 얼른 친구들과 친해져서 이런 걱정을 종결시키고, 아니라는 걸 입증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별로 달갑지 않은 장난도 웃으며 받아줬죠. 뭐든 타인에게 맞추는 제가 한심했어요.
내 모습이 부끄럽고 모자라 보였던 저는 서투르게 말을 걸며 친구들 곁을 맴돌았어요. 학교가 편안하다고 느낄 수 없었고, 마음에 먹구름이 낀 듯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고 다녔어요.
기억을 되짚어 보며, 이제는 덤덤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제 마음을 곡에 투영해 연주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말로 털어놓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같았습니다.
세 번째 곡, ‘단잠‘
마지막 곡은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단단해져 가는 저를 격려하는 곡이에요. 타인의 시선을 걱정했다가 타인의 한마디에 안도하며 두 가지 감정에 허우적대는 하루를 보냈던 제가, 더 다양하고 건강한 감정을 느끼려 노력한 여정을 표현했어요.
또한 이 곡에는 누군가가 잘 자길 바라는 사랑을 담았어요. 저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에 들기 어려우면 잔잔한 수면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곤 했어요. 저도 그 음악처럼 복잡한 마음을 토닥여주는 편안한 선율을 만들고 싶었죠.
잠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옛날과 달리 난 슬프고, 여긴 불편한 금산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어느 순간 이 생각이 스스로에게 거는 저주의 말처럼 다가왔어요. 오늘 하루 나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데 스스로가 마음을 닫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침에는 그저 잠들었던 몸을 깨우고, 오늘도 눈을 뜬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누군가의 말로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일 뿐, 누구도 감정의 뿌리는 바꿀 수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어요. 저는 어릴 때와 큰 변화 없이 살아가고 있고, 금산은 장소일 뿐이라며 자신을 다독였어요. 마음속에 자리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늙고, 그리운 시절을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도 큰 위안이 됐어요.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던 내가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로 힘이 났어요.
관계에서도 바뀌고 싶었어요. 친구들의 반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마음을 표현했어요. 친구들은 말하는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편해진 저를 친구들도 더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죠.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늘 지니고 있지만, 추억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날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시선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더 이상 과소평가하지 않아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걸 느꼈어요.
시간이 가져다 준 변화는 컸어요. 회오리치던 머릿속이 차츰 정리되었고, 여유가 생기면서 바뀌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어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며,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잠에 들기를 바라요.
이 세 곡은 저의 마음을 채워줘요. 창작을 하면 마음이 뿌듯함으로 차올라요. 시간이 지나도 내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각 곡에 제가 가진 환상과 역경, 그리고 치유된 나를 담으며 나를 자유롭게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즐거웠어요. 누군가가 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아서 슬퍼하기보다는, 그저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 잠시 복잡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마련해주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제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담아낸 곡들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