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사 이야기] 책임지는 행동, 아이 스스로 정하는 건 가능한가

  • 등록 2026.01.06 15: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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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며 단호한 초등학생 생활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⑥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게 가장 좋다


아이가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할 수 있을까요? 정할 수야 있겠지요. 문제는 ‘제대로’ 정할 수 있느냐겠죠.

 

아이들에 대해 불신을 갖는 사람들, 아이들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대로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맞습니다.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턱대고 ‘아이들은 믿어주면 다 한다’고 말하는 것에 찜찜함을 느낍니다. 제 경험상 믿어준다고 아이들은 다 알아서 잘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그렇다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부정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런데 그 잠재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믿어주는 건 너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믿어주기만 하면 나오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이들을 끌어주고 안내하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얼마나 섬세하게 안내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잠재력은 빛을 발하기도 하고 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교사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한 겁니다.

 

‘아이들은 믿어주면 다 한다’는 말은 사실 믿어주는 건 기본이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끌어주고 도와주는 모든것들이 전제된 후에야 사실이 되는 겁니다.

 

이상적 아동관을 갖고 계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믿어주기만 한다고 다 잘하는 아이는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있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영재 혹은 천재라 부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아이들은 교사의 도움 아래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고,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는 가능합니다. 아이와 아래와 같은 대화가 가능할 겁니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를 멈춰 세우며) 잠깐 멈출게요. 뭐가 잘못됐을까요?”

“복도에서 뛰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도에서 뛰지 않아요.”

 

여기까지의 대화, 별것 아닌 것 같은가요? 그럴 수 있겠죠. 그렇지만 “누가 복도에서 뛰래? 여기에 너네만 있어? 또 뛸 거야?” 식으로 다그치는 것보다 저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첫째, 질문의 형태로 물어보는 건 상대방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둘째, 무엇보다 자기 잘못과 앞으로의 행동을 자기 입으로 얘기했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모범답안을 얘기한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혼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안까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여기까지만 하면 사실 별 효과가 없는 건 매한가지긴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 같습니다.

 

“복도에서 뛴 것에 대한 책임지는 행동을 해 볼게요. 어떤 걸 하면 될까요?”

“……”

 

네, 사실 아이는 얘기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아이는 알아서 다 잘하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책임지는 행동인지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평소에 학급에서 책임지는 행동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하고 실제로 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라면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럴 때 교사가 대안을 제시해 주고 동의를 거치는 과정을 거치면 좋습니다.

 

“책임지는 행동으로 여기서 저쪽 복도 끝까지 뛰지 않고 걸어오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할 수 있을까요?”

 

거의 대부분의 아이는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이때, 대안을 더 다양하게 제시하면 좋습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끼면 아이는 더 존중받는다고 느끼며, 자발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임지는 행동으로 여기서 저쪽 복도 끝까지 걸어오는 연습을 하거나 ‘복도에서 걸어다니기’ 캠페인을 쉬는 시간에 하면 어떨까 싶어요. 둘 중에 어떤 걸 해볼래요?”

 

그런데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선택을 강요한 거 아니냐고요. 아이 스스로 정한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교사가 유도해서 그거 아니면 안 되게 한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항상 선택권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답정너’같은 선택권만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고 제안한 적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문화가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의 아이들도 이런 식의 질문과 선택, 대안 제시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고로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보단 그냥 선생님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고 할 것 빨리 하고 대충 끝내버리고 싶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중요한 건,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마음가짐입니다. 정말로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게 실제로 있겠어, 하고 회의적으로 다가가는 분들도 많다는 것 압니다. 항상 오해는, ‘존중’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모든 의견을 들어주고 받아들여 그 의견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강박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존중한다는 건


복도에서 뛴 아이에게 어떤 책임지는 행동을 할 건지 물어본 건 진심이어야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물어본 건 아니어야 합니다. 그게 존중의 첫걸음입니다.

 

실제로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해 너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요구이며, 스스로 내린 결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진정 고민하여 스스로 얘기하면 사실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은 그런 고민을 해본 적도 없고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교사로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도움을 주는 것뿐입니다. 교사는 실제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가 제시한 대안, 즉 ‘복도 걷기 연습’과 ‘복도 걷기 캠페인’ 모두를 아이가 거부하면 어떡할까요?

 

일단 우리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 이상 아이가 ‘거부할 권리’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거부하는 걸 버르장머리 없다고 나무랄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돌아가, 정말로 아이가 거부하면 어떡할까요?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못 해서 대안을 제시한 것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다시금 아이에게 대안을 요구하면 됩니다.

 

“선생님, 저 두 개 다 쑥스럽고 하기 싫어요.”

“그래? 쑥스럽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네가 다시 생각해서 얘기해줘. 만약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저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해.”

 

아이에게 당장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적당히 주는 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책임지는 행동을 얘기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대안 중 선택해야 합니다.

 

아이를 존중한다고 하여 아이에게 무제한의 선택권을 주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정해 하게끔 하는 건 이상적인 방법이며,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지만 아이가 책임지는 행동 자체를 회피할 권리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따윈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본인 스스로 정한다고 정했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걸 정했다면요?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면요.

 

“선생님, 저는 그럼 제가 잘못했으니 쉬는 시간 동안 복도에서 손 들고 서 있을게요.”

 

이렇게 말한 의도가 반항이든 그냥 엉뚱함의 발현이든 뭐든, 아이의 의견이라고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니,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라면서 또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 아이의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여 실행하라는 걸 의미한다면, 교실은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화가 나면 친구를 때려도 된다는 의견이 있을 때, 아이의 의견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면 교실은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겁니다.

 

의견을 존중한다는 건 사실 ‘말할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이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일단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로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차적으로는 그게 존중입니다. 그리하여 쉬는 시간 손 들고 서 있겠다는 말도 다소 터무니없지만, 그 말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를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지난 글에서 제가 말한 ‘3R1H’의 원칙이 다시 필요합니다. 존중하는 방식(Respectful)인지, 연관성(Related)이 있는지, 합리적(Reasonable)인지, 도움을 주는 방식(Helpful)인지 말이죠.

 

일단 누가 보더라도 손 들고 서 있는 것은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닐 뿐더러, 아이가 복도에서 뛴 것과 전혀 연관성도 없습니다.

 

사실 이 3R1H의 원칙은 다소 어렵더라도 아이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책임지는 행동’은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다소 엉뚱한 방식을 얘기한다면 이 원칙을 들이밀면 됩니다.

 


모두 함께 정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대안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다가 3R1H인지 뭔지 이상한 기준까지 맞춰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나 보구나. 그럼 우리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함께 정해보자. 그리고 그 중 괜찮은 게 있으면 골라서 해 보자.”

 

그러고선 실제 반 친구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함께 정할 때도 3R1H의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친구들이 얘기한 대안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거기서 골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대안을 잘 얘기할까요? 다소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이 얘기하지만, 분명한 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겁니다. 은근히 그럴듯한 대안을 얘기하는 친구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사가 어떻게 질문을 하는지, 아이들의 대답을 어떻게 다듬으며 정리하는지에 따라 아이들 답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열심히 함께 논의했음에도 친구들이 얘기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요? 네, 앞에서와 같이, 그렇다면 본인이 대안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좋든 싫든 제시된 대안 중 골라야 합니다. ‘책임’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요. 내가 싫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실 많은 아이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문제행동은 미리 함께 머리를 맞대 책임지는 행동을 정하면 좋습니다. 이른바 ‘학급회의’를 통해 규칙을 정하는 거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규칙을 정하는 것.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 해 보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요.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또 한가득인데,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친절하며 단호한 초등학생생활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 연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연재의 수명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이 누군가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과 함께 한 연재 ‘실천교사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의미 있는 글을 보내 주신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원 분들과 애독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곽노근 경기 문산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지원팀.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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