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사 이야기] 아이돌 논란에 슬퍼하는 아이들에게

  • 등록 2025.10.21 16: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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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아이돌 논란에 참 민감하다. 누군가 좋아하는 가수가 구설수에 오르면, 단순히 실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설마 아직도 걔네 노래 듣는 거 아니지?”, “너 아직도 걔네 팬이야?”라며 친구끼리 시비를 걸고 다투는 경우까지 있다.

 

좋아하던 존재가 무너질 때 느끼는 혼란과 상실감은 교실에서의 사건들로 배가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차라리 논란이 없는 가상의 아이돌이나 게임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물론 요즘 작품들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논란에서 안전하다라는 이유로도 학생들은 이른바 3D보다 2D를 선호한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매이션 영화에 나오는 헌트릭스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과 사자 보이즈라는 남자아이돌 그룹이 유행이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쉬운 교육 기회가 숨어 있다. 바로 ‘사람과 작품을 구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사실 성인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내가 사랑하는 유명인이 사실은 알고보니 좋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확인했을 때, 기분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고백컨대, 나 역시 좋아하던 배우, 축구선수, 심지어 정치인이 논란에 휩싸이는 걸 여러 번 지켜봤다. 그럴 때마다 작품과 사람을 따로 떼어내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느낀 감동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감정을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넘어 부당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작품이 내게 와닿은 순간, 그것은 이미 내 것이 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는 이를 “저자의 죽음”이라 불렀다. 작품의 의미는 이미 출시된 순간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읽히는가’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이 자신의 시가 출제된 수능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해도 특별히 이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부도덕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작품만큼은 좋아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세 가지 숙제는 남는다.

 

첫 번째는 그 사람이 논란 이후에 새로 내놓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 작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이 여전히 그 사람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용서이다. 유명인은 때로는 너무 가혹하게 비판받고 때로는 아주 가볍게 용서받기도 한다. 이상은 추가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종합하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논란 앞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작품과 사람을 분리해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경험은 누가 강제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특성이 작품과 만나서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예술과 유명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의 논란이 해소되지 않아 실의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지금의 고민을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희창 경기 옥길산들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지원팀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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