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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사 이야기] 학교의 마무리 투수를 아시나요?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야구에서 불펜 투수는 경기를 뒤집는 중책을 맡지만, 경기 흐름과 상관없이 늘 대기해야 한다. ‘불이 났다’고 판단되면, 즉시 호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펜 투수를 ‘소방수’라 부른다. 경기 흐름에 따라 소모되며, 언제 불려나갈지 알 수 없는 그 자리는 야구 선수들 사이에서도 기피 포지션이다.

 

그런 불펜 투수와 학교폭력 담당교사 사이엔 닮은 점이 많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르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방학식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교실에 혼자 남아 학교폭력 행정절차를 처리하던 날, 나는 문득 모든 책임을 어깨에 맨 마무리 투수의 감정을 느꼈다.

 

현대야구는 불펜의 전문화를 통해 투수의 자리를 세분화했다. 삼진 능력이 뛰어난 투수는 마무리로, 그 직전은 셋업맨으로, 왼손 원포인트, 롱릴리프 등 정교한 전략이 생겼다. 이를 ‘라루사이즘(-ism)’이라 부른다.

 

그러나 학교폭력 담당교사의 현실은 아직도 ‘만능’을 요구받는다. 교육적 접근, 법률 이해, 행정 처리, 민원 대응까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마무리 투수를 전문화하지 못한 사회 속에 있다.


90년대 중무리 투수 같은 학폭 담당교사


학교폭력 업무는 매우 법률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인지 즉시 신고 의무가 있고, 절차는 매뉴얼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은 지나치게 두껍고, 실제 학교현장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많다.

 

담당교사들은 17개 시도교육청의 서로 다른 지침을 비교해 가며 셀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전국의 담당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톡방’은 마치 외딴 섬들이 모여 만들어낸 군도처럼 존재한다. 이곳에서 교사들은 매일 질문하고, 답을 얻으며, 자기 학교에 맞게 해석해 다시 적용한다. 시스템이 주지 않는 것을, 개인들이 메우고 있다.


교사의 본질, 가치와 현실 사이


일부 지역에선 학교폭력 담당교사의 수업시수를 줄여주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논쟁거리이다. ‘교사는 수업이 본업이므로, 수업을 줄이는 건 본질 훼손이다’라는 반론과 ‘수업을 유지하면서 학폭 업무까지 맡기는 건 과잉 요구’라는 현실 인식이 충돌한다.

 

이 와중에 학교폭력 업무는 경험 없는 저경력 교사나 전입 교사에게 ‘자연스럽게’ 대물림되곤 한다.

 

일부 교사들은 업무 스트레스로 PTSD를 호소하며 기피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헌신’을 전제로 만들어진 자리고, 그 헌신은 곧 소진으로 이어진다.

 


감정노동과 정서적 소진


학교폭력 신고는 대부분 강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피해자의 보호자가 분노하고, 가해자의 보호자는 억울해한다. 담당교사는 규정에 따라 안내하고 절차대로 처리하지만, 이는 “왜 빨리 알려주지 않았냐”, “학교가 숨기려 한다”는 불신으로 돌아온다. 절차상 비밀유지를 요구받은 담임교사의 태도는 ‘무책임’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 사이 담당교사는 민원 대응, 감정 조율, 법률 해석, 행정 처리까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 담당 민원이기 때문에 학교 민원 대응팀에게 넘기기도 어렵고, 상담 업무이지만 전문 상담교사가 도와줄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결국 가장 힘든 감정의 불꽃은 담당교사에게 쏟아진다.

 

알래스카에서 벌어진 사안도 교사가 조사해야 한다는 부당함이 논란이 되어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도 경찰과 학교 사이에서 절충한 ‘타협’일 뿐이다. 경찰에 넘기자니 교육적 해결이 어렵고, 교사가 맡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또 다른 시스템 하나를 교사 위에 얹었을 뿐이다.

 

“이 법을 만든 사람은 지금 잘 자고 있을까.”

 

채팅방에는 오늘도 누군가가 푸념처럼 올린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선의로 출발한 제도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절차에 얽매여 감정을 관리하고, 말을 조심해야 하는 교사는 어느새 학교의 가장 외로운 사람으로 남는다.



야근을 할 때 나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응원가인 ‘Bella Ciao(원곡 이탈리아 민중가요)’를 듣는다. ‘해가 지고 달이 차올라 파검의 날 발견해 나도 모르게’라는 구절에서, 나는 해진 학교에 홀로 남은 내 모습을 본다. 그건 어쩌면 내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이게 교사의 운명이어야 할까?’

 

학교폭력 제도는 이제 ‘전문화된 분업’이 필요하다.

 

마무리 투수처럼 누군가가 맡아야 하는 자리라면, 그 자리를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서적 노동, 법률적 책임, 민원 응대까지 한 사람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교사는 수업이 본업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본업을 온전히 수행하게 하려면, 학교폭력을 제도와 조직이 책임져야 한다. 화재신고가 들어왔는데 소방관 한 명 보내는 일이 어디있는가? 소방차도 보내고 응급차도 보내는 법이다.

 

애당초 학교폭력 대응팀이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사안은 ‘스크리닝(Screening)’ 해야 한다.

 

전담기구를 통한 자체종결도 아직 무거운 제도이다. 스크리닝을 통과한 경미하지 않은 학교폭력 신고에 대해서는 팀단위 대응을 해야 한다.

 

불난 곳에 계속 교사를 투입하면서 헌신적인 교사들을 소진시킬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공동체에도, 조직에도 불행한 일이다.

 

이제는, 불을 끄는 사람도 함께 지켜야 한다.

 

* 이 글은 실천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을 일부 재가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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