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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사 이야기] 모든 것에 ‘트라우마’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문화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모든 것에 '트라우마'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문화에 대한 비판.”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 엘리자베스 가우프버그가 애비게일 슈라이어의 책 ‘부서지는 아이들’에 대해 남긴 한 줄 평이다.

 

이 책의 부제는 ‘다정한 양육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이다. 원제는 ‘Bad Therapy: Why the Kids Aren’t Growing Up‘으로, 직역하면 ’나쁜 치료: 왜 아이들은 자라지 않는가?‘쯤 될 것이다.

 

제목과 부제 모두 요즘 세태를 날카롭게 겨냥한다. 그래서일까.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 리처드 맥널리는 이 책을 “교사를 위한 필독서”라고 평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죄‘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든 감정과 경험을 ‘치료해야 할 증상과 그렇지 않은 증상’으로 보는 시선에는 분명히 질문이 필요하다.

 

교사는 아이들과 만나는 직업인 터라, 그 질문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일례로 필자는 지난번, ‘모든 나쁜 기억이 트라우마는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아이들이 “아~ PTSD 와요!, 아~ 저 그거 트라우마예요!!”라고 외치는 학교 현장을 묘사하며, 성장 마인드셋을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7세 고시’뿐 아니라 ‘7세 검진’도 유행이라고?


어느 날, 주변 50대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희창쌤, 요즘은 18개월인데 말을 안 한다고 치료받으러 가나요? 조카가 언어치료를 예약했다고 해서요.”

 

솔직히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괜히 조바심이 나고, 몰래 비교도 해 볼 것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요즘 부모들이 작은 지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말이 늦는다’, ‘눈을 잘 안 마주친다.’, ‘잘 안 먹는다’=병원에 간다.

 

이것이 요즘 자리 잡은 매커니즘이다.

 

상담을 받고, 검사하고, 보고서를 받는다. 아이는 진료대 위에 눕고, 부모는 심리 전문가와 상담을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진심’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동시에 묻고 싶다.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불안을 덜고 싶은 어른을 위한 것일까?”

 

몇 마디 오가는 사이, 머릿속에서 앞서 말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옆에 계신 선생님께서 한마디 덧붙이신다.

 

“요즘 7세 검진도 유행이에요.”

 

일명 ‘7세 고시’만큼이나 열풍인 ‘7세 종합검진.’ 그 결론은 대개 ‘키 크는 주사’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검진은 겉으로는 종합검진의 성격을 띠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잠재적인 키를 위한 클리닉의 일환이다. 사실 몇몇 특정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빼고는 이 검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검진 과정에서는 아이의 팔에서 피를 뽑고, 뼈 나이를 측정하며, 성장호르몬 주사를 논의한다. 참고로 이 주사는 어릴 때 맞출수록 더 저렴하다고 한다.

 

아까 대화의 물꼬를 텄던 50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 애들은 군대 가서도 다 키 컸어요!”

 

필자는 괜히 세대에 대한 배반인가 싶어 대답을 삼키고, 속으로만 ‘제 주변에도 많아요’ 하고 넘겼다.

 


심리치료 중심 문화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부서지는 아이들’에서 이 같은 치료 중심 문화의 확산이 아이들의 자율성과 회복력을 침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벼운 우울감,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 그리고 성장기 불안 모두 ‘치료 대상’이 되어버린다.

 

원래는 부모의 품 안에서, 교사의 관심 속에서 이겨내야 할 감정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심리 및 의료 전문가의 방으로 직행한다.

 

책에서는 ‘병리화(pathologization)’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자연스러운 감정도 진단명이 붙는다. 잠깐 외로운 것도 ‘사회불안’, 친구랑 싸운 것도 ‘관계 트라우마’, 시험에 긴장하는 것도 ‘불안 장애’, 모든 게 치료의 언어로 해석될 때,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복원하는 능력,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상실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도 주도권을 잃는다.

 

또한, ‘부모가 점점 특정 전문가의 말에 기대게 되면서, 전통적인 양육 방식(경험, 실수, 훈육, 사랑 기반의 인내)을 잃어버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부모는 상담 결과를 토대로 아이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우리 아이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서요.”, “ADHD 경향이 좀 있어서요.”

 

부모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결국 아이도 자기 자신을 진단의 언어로 설명하게 된다. 이쯤 되면 치료는 ‘해결’이 아닌 ‘프레이밍’이 된다.

 

만약, 아이가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를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교육은 더욱 어려워진다. 유감스럽게도, 진단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자기소개를 하던 반 아이와 학부모 상담 자리에서 그 아이를 소개하던 학부모가 문득 떠오른다.

 

“선생님, 전 ADHD가 있는 ㅇㅇㅇ이에요.”, “우리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까치발을 들고 다녔어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식의 소개가 한 반에서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특히, 그 해에 아이를 “어렸을 적부터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라고 소개한 같은 반 학부모가 10명이 넘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오 박사님의 방송에서 금쪽이가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는 사례가 방영되던 때였다.


문제의 증폭: 왜 우리 아이를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나요?


이러한 현상이 공식적인 교육기관인 학교와 만나면 부정적인 효과가 증폭된다.

 

학부모는 자신이 지닌 불안과 걱정을 학교에서 알아주길 바라고, 함께 해소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불안에 대해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다. 이는 점차 학교와 교사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부정적 시선과 평가는 다시 ‘특별히 배려받아야 할 우리 아이의 특성’과 결합하여 불어난다.

 

이제 학교와 교사는 특별한 주의와 상호작용이 필요한 아이에게 ‘적절한 요법을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한 곳’이거나 ‘그것을 제공할 의지가 부족한 공간’으로 간주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학교는 ‘무가치한 곳’으로 낙인찍힌다. 이처럼 부당한 낙인은 학교에서 하는 일을 하찮게 매도하고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감시하게끔 만든다.

 

정리하자면, 학교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는 특별해요, 그러니 특별히 대우해 주세요”라는 말이 “우리 아이는 잘났어요, 그러니 특별히 대우해 주세요”로 잘못 해석되곤 한다.

 

이런 오해는 과거에 유행했던 하나의 흐름일 뿐,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유행은 이렇다.

 

“우리 아이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증상이 있어요. 그러니 특별히 대우해 주세요.”

 

그리고 이 유행은 들불처럼 번져 자그마치 한 학급의 1/3 이상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교사를 학생 곁에서 더 소극적인 존재로 만든다. ‘특별한 신경을 써달라’는 학부모의 부탁 앞에서 학생들에게 도전이 필요한 활동보다 기존에 하던 활동을 제안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없는 활동을 새로 구안하거나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나가는 진취적인 수업은 혹여나 상처받을 수 있는 아이들 앞에서는 결국 접어두게 된다.

 

그렇게 교사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점차 배제된다. 슈라이어는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있으니,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 보다.

 

내가 인터뷰한 모든 교사가 “‘학생의 짜증과 폭력적 태도’, ‘교사한테 소리 지르기’, ‘교실에 있는 물건 집어 던지기’, ‘문 쾅 닫고 나가기’, ‘성희롱’ 등이 최근 10년 사이에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문제의 상당 부분은 학교의 방침에서 기인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학교 측은 학생에게 절제력과 자기 훈련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판단하며, 그 요구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사에게 ‘아이의 과제 미제출을 그냥 넘어가달라는 부탁한다’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탈락한 스포츠팀에 아이를 다시 들여보내 달라’고 감독에게 간곡히 부탁했으며, 감독이 팀에 바로 받아주지 않으면 교장에게는 법적 조치를 암시하는 메일까지 보냈다.

 

하지만 잠시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친구를 때리고도 벌을 받지 않는 아이가 있었고, 그 행동을 교정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약을 먹기 시작했다.

 

또 다른 아이는 오전 내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다른 학생에게도 방해가 되어, 우리는 그 아이에게도 약을 먹였다.

 

‘안심’이라는 단어는 부모가 의사에게 아이의 진단명을 듣고 처방을 받을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

 

“문제의 원인이 뭔지 알게 돼서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몰라요.”

 

많은 부모가 그렇게 말했다.

 


치료라는 관점이 만들어내는 상처: ‘나는 고장 났다’라는 자기 정체성


이러한 양상은 결국 학생들의 심리에도 부정적 상흔을 남긴다.

 

슈라이어는 일부 감정 중심 치료가 아이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트라우마를 각인시키는 과정을 밟는다고 경고한다. 기억 회복, 감정 재구성, “너 안에 억눌린 감정이 있어”라는 식의 질문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 감정을 과잉 해석하게 된다.

 

집단 상담에서 아이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기도 한다. 그 결과, 아이는 ‘나는 뭔가 고장 났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심리상담실이나 심리치료실로 향한 아이가 치료가 끝나고 나올 때 더 아프게 되는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슈라이어는 치료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심리치료는 분명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상담을 받아야만 건강해지는 문화’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트라우마로 읽고, 너무 적게 회복을 믿는다. 너무 빨리 개입하고, 너무 늦게 자율성을 준다.

 

아이들은 자란다. 가끔은 넘어지고, 울고, 실수하면서도 스스로 회복할 힘을 배워야 한다. 그걸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도 그런 공간으로서 자리해야 한다.

 

저자는 “도우려는 마음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과는 다르며, 치료는 무해한 민간요법이 아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에 안정을 줄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해를 끼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와 학교를 믿는 교육 문화가 정착되길 간곡히 바라는 의미에서 책 속의 한 문단을 공유하며 마친다.

 

“불안을 긍정해 주고 배려하는 것은 아이에게서 힘든 문제를 극복할 기회를 빼앗으며, ‘실제로 뭔가를 해내지 못하는 아이’로 만든다고 오르티스는 말한다. 아이들을 코 고는 소리나 창밖의 요란한 바람 소리, 삐걱대는 마룻바닥 소리 같은 평범한 소음으로 가득한 집에서 아이를 억지로 자게 해 보라, 결국 잠에 들기 마련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이 그런 환경에서도 ‘잠들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참고 자료:  ‘모든 나쁜 기억이 트라우마는 아니다.’ (한희창)

(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3956)

 

# 위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의 실천아레나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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