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
달팽이집에 달팽이가 있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보건실에는 응급처치와 건강관리를 담당할 보건교사가 상주할 것이라고 누구나 기대합니다. 법률로 모든 학교에 보건실을 설치하도록 했고(학교보건법 제3조), 보건교사를 두도록 했으니(제15조) 당연한 기대입니다.
그러나 달팽이집이 없는 '민달팽이'도 흔하고, 달팽이가 살지 않는 텅 빈 '껍데기'도 우리는 달팽이집이라 부릅니다. 지금 학교 현장이 꼭 그와 같습니다.
법률은 보건실의 '설치 기준'은 정했지만, '운영 기준'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보건교사가 반드시 보건실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고 법으로 명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치명적인 '디테일의 공백' 속에서 보건실은 그 기능을 잃은 텅 빈 껍데기가 되었고, 보건교사는 의료 전문성이라는 집을 잃은 채 교실을 떠도는 민달팽이가 되었습니다.
정책의 역주행: 보건실에 교실을 짓겠다는 교육부
지난 수십 년간 교육 당국은 이 텅 빈 껍데기를 채울 생각은커녕, 오히려 보건실의 자원을 훼손하고 의료인력(보건교사)을 교육인력(수업교사)으로 전환하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기막힌 역주행은 2025년 교육부 『학생건강증진 분야 주요정책 방향』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교육부는 '보건교사 수업 전문성 향상'을 위해 연수와 교재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간호사 면허라는 의료 전문성을 바탕으로 채용한 교원에게, 왜 굳이 '수업 전문성'을 길러 교실로 투입하려 하는 것입니까?
심지어 ‘학교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보건실 내 또는 인근에 보건교육실을 설치’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응급의료법 제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발상입니다. 응급처치를 위한 보건 시설에 교실을 짓겠다는 것은, 응급실 병상을 빼서 강의실로 쓰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응급의료 방해 행위'입니다.
법의 한 줄이 아이들의 생명을 지킵니다
법령에는 보건실 설치기준도, 보건교사 배치기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을 연결하는 '한 줄'이 빠져있습니다. 이 공백으로 인해 보건교사는 직무 정체성을 잃고 헤매고, 아이들은 응급 상황에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비극적인 분리를 끝내야 합니다. 텅 빈 껍데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민달팽이에게 제 집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학교보건법의 두 가지 개정을 절실히 촉구합니다.
첫째, 학교보건법 제15조 제2항을 '보건실 운영과 학생의 건강을 담당하는 보건교사'로 개정해야 합니다. 보건교사의 직무를 '보건실 운영'과 법적으로 명확히 일치시켜야 합니다.
둘째, 법 제3조의2를 신설하여 '보건실 운영기준'을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연재를 마치며
서양 속담에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마뿐만 아니라 신도 디테일 속에 존재합니다.(God is in the details)
보건실에 방문한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례는 알려진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많습니다.
이번 연재 기획에서 전국보건교사노조는 왜곡된 보건실 운영으로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말하고 개선을 호소하고자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설득하기에 부족한 언어들을 관심 있게 읽어준 독자와 지면을 할애해 준 <더에듀> 편집국에 감사드립니다.<끝>








































